• 여야의 미디어법 대치 정국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가 19일 또다시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소집과 관련,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친박 의원이 연합뉴스에 전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 발언은 박 전 대표가 직권상정을 통한 미디어법의 강행 처리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그의 발언은 여야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을 재점거한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이 "오늘 중 20일 본회의 의사일정 협의를 완료해달라"고 여야에 주문하고,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21일 직권상정을 건의키로 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박 전 대표의 이러한 입장 표명에 따라 한나라당이 21일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건의하더라도 김 의장이 이를 당장 수용할지는 불투명해졌다.

    의장실 주변에서는 김 의장이 여야에 협상을 요청하는 등 중재 모습을 보이며 회기가 종료되는 25일까지 시간벌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직권상정을 통한 본회의장 표결까지 이뤄지더라도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에 이어 60명에 가까운 친박(친 박근혜) 의원들이 반대투표에 가세할 경우 미디어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는 분석이다. 지난 3월 미디어법 대치시에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이 그동안 많은 양보를 했다"고 밝힌 뒤 여야가 6월 표결처리라는 극적 합의가 나와 그의 파워가 증명된 바 있다.

    이날 여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중대국면을 맞아 현 정권 최대입법의 강행처리에 대해 반대 메시지를 던진 배경에 촉각을 세우며 무성한 관측을 내놓았다. 우선 박 전 대표가 민주당 측이 '언론 악법'으로 규정한 미디어법에 대해 여권의 설득과 설명 과정이 기본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법의 처리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국익과 원칙에 맞지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러한 입장은 지난 15일 "미디어법은 가능한 한 여야가 합의하는게 좋다는게 저의 생각", "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 이내로 인정한다면 여론 다양성이 보호되고, 시장 독과점에 대한 우려도 사라진다"는 언급에서 이미 피력된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이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정 운영에 적극 협력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미디어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밝혔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표가 친박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의 원내대표 카드에 반대한 것과 친박 인사의 입각설에 대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알아서 할 일로, 선택받은 분이 개인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지만 이는 친박 진영의 대표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는 국정동반자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권이 친박인사 입각설을 흘리며 친박 쪼개기 내지는 의원 빼내기를 하려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개각을 앞두고 '충청 총리 임명'을 매개로 박 전 대표가 빠진 채 흘러다니는 '한나라-선진당' 연대론과 9월 조기 전당대회론 등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내심 불편한 심경이라는 소문도 있어 이 관련성도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주 미디어법 처리가 어떻게 굴러갈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자칫 처리가 실패할 경우 친이(친 이명박)-친박간 갈등이 지금까지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내놓고 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논평에서 "박 전 대표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며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한 친박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직권상정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내심 그럴 수 있다는 짐작은 했지만 이런 뜻을 공개 표명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