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누구냐고 몇 번을 반복해서 묻고 몽골 상인이 반복해서 손가락 지적을 해주고 나서야, 우리는 몽골 상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한 십여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주위 사람들과 얘기를 나무며 걸어오고 있는, 청바지에 철이른 회색 털잠바를 입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곧 우리가 있는 몽골 타운 입구를 지나쳤고, 타운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저 사람이 자르만이라고, 저희 몽골 타운의 마당발입니다. 서울 주재 몽골인들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구요. 잘르만에게 물어보면 혹시 그 여자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나와 있는 우리 몽골인들에 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만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우리는 몽골 상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몽골 상인이 언급한 잘르만이라는 사람을 찾아 타운 안으로 들어갔다. 황급히 갔다.

    잘르만이 몽골 사람들의 서울 주재 몽골인 회합의 회장을 맡고 있고,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 사람들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라면, 진짜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 오르그뜨에 대하여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잘르만이라는 사람도 성규의 도망간 아내, 오르그뜨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한참을 유심히 살피고 난 그가 내어뱉어놓은 소리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라는 것이었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는 몽골서 온 지 얼마 안 돼서인지는 몰라도 몽골인들의 회합에 아직 참여하고 있지 않거나, 참여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활동이 소극적이고 미미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한 탓 같았다.

    "처음 보는 여자인데요. 헌데, 왜 이 여자를 찾는 건데요."

    사진을 보고 난 잘르만은 몽골 상인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잘르만이 몽골 상인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는 게, 낯설었다.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한다는 건 참 재미없고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몽골 상인에게 한 번 설명했으면, 잘르만이든 누구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만이가 나서 아까와 동일한 설명을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까와 동일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몽골 상인에게서 들었던 몽골인들의 커뮤니티에 대한 얘기를 했고, 한 번 이를 통해 여자의 존재를 확인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 명함을 건넸고, 확인이 되면 연락을 해 달라고 다소 저자세로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찾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몽골 사람들이 대체로 몽골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웬만하면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담을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어, 저거, 저거..."

    잘르만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규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 들으라고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선도 잘르만이나 우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보고 놀라움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내지르는 소리였다. 음가만 있고 의미는 없는, 짐승의 소리였다는 것이었다.

    물어볼 겨를도, 확인해 볼 겨를도 없었다. 성규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런 엉뚱한 짐승의소리를 연발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성규가 갑자기 내닫기 시작했다. 몽골 타운의 정문, 입구를 향해서였다.

    성규가 몽골 타운의 정문을 향해 내닫는 모습을 황망히 지켜보다, 문득 우리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성규가 무언가를 본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규가 저리도 허겁지겁 정신없이 몽골 타운의 정문을 향해 내달려갈 리가 없는 일이었다. 성규가 무언가를 보고 놀라 저리 황망히 내닫는 거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우리, 나와 지만이도 성규의 뒤를 쫓아 몽골 타운의 정문을 향해 황망히 내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성규가 황망히 내닫는 이유가 감이 잡혀오는 까닭이었다.

    성규는 쏜살같이 몽골 타운의 정문을 향해 달려갔고, 몽골 타운의 정문에 도착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을 때 다행히 성규는 멀리 가 있지 않았다. 정문 앞 한 십여미터쯤 앞에서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성규를 따라잡은 나와 지만이가,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다짜고짜 묻고 있었다. 성규가 다짜고짜 달려나간 것처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밖으로 달려나온 거야."
    "봤어. 분명히 봤어."
    "뭘 봤다는 거야?"
    "오르그뜨 말이야. 오르그뜨를 봤어."
    "뭐야. 그게 정말이야? 확실해?"
    "분명 오르그뜨였어. 머리를 짧게 깎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늘 익숙한 오르그뜨였어."

    성규가 황급히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짐작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성규가 저리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니까. 그러나 우리, 나나 지만이나 성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성규는 봤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보지 못했고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어디 갔어."
    "모르겠어. 나와 보니까 아무데도 없었어."
    "확실한 거야? 그게 네 와이프였다는 게. 잘못 본 게 아니고 말이야."
    "내가 내 와이프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건 분명히 내 와이프, 오르그뜨였다구요."

    우리는 성규의 와이프가 달아났을 것 같은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성규의 와이프가 달아났을 것 같은 방향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원망과 아쉬움과 기다림으로 가득한 시선이었다.

    성규의 와이프가 달아났을 것 같은 방향은, 물론 지하철역이 있는 동대문운동장 방향이었다. 성규의 와이프가 지하철을 이용해 사라졌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이용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은 성규가 진짜 그의 달아난 와이프를 보았는지, 보았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다시 몽골 타운 안으로 돌아왔다. 성규가 그의 와이프를 본 게 사실이라면, 몽골 타운 안에 그녀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게 거의 틀림없는 일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다면, 성규가 그녀를 본 것처럼, 그녀를 본 사람이나마 있을 것이었다. 성규의 와이프는 대단한 미인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은 끌만한 미인형의 얼굴임에 틀림없었으므로, 누구든 그녀를 눈여겨 본 사람이 없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우리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마주치는 몽골인 세 명 중 한 명 꼴로 성규의 도망간 아내의 사진을 들이밀며 이 여자를 아느냐고 물어보며 다녔다. 우리가 생각해도 다소 무리한 행동이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의 사진을 들이밀었을 때 안다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안다는 사람은 고사하고 보았다고 하는 사람조차 하나 없었다. 우리는 크게 낙담했다. 성규는 거기서 훨씬 더 나아갔을 것이었다. 분명 자기는 자기 와이프를 보았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성규의 도망간 아내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나긴 했다. 그러나 좀 애석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성규의 도망간 와이프를 보았다고 하는데, 시기상의 차이가 있었다.

    성규가 그의 도망간 아내를 본 것은 오늘인데, 그 사람이 본 것은 장소는 여기 몽골 타운이 맞지만, 시기가 지난주였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와이프를 보았다는 성규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성규의 주장이 확인되든 확인되지 않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성규의 도망간 아내의 흔적이 이 곳 몽골 타운에서 언뜻언뜻 내비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한 걸음, 아니 몇 걸음은 그녀 곁에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성규가 자기 와이프를 보았다고 하고, 지난주에도 어떤 사람이 그녀를 보았다고 하니까. 성규의 말이나 그 사람의 말이나 확인되지 않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깔리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오래 기다렸다. 기디리고 또 기다렸다. 우리가 기다린 건 물론,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였다.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큰 기대를 갖고 그리 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지만이는 그렇게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다. 별반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이었다. 성규는, 좀 다르긴 했다. 성규는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도망간 아내를 보았다고 확신하는 성규는, 그녀가 다시 이 곳을 찾을 수도 있다는 그럼직하고도 큰 기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그 곳에 죽치고 앉아 그녀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지만이의 기대 때문은 아니고 성규의 그 큰 기대 때문이었다. 나와 지만이의 기대 밖에 없었다면, 우리는 그렇게까지 오래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기대의 크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 나와 지만이의 기다림은 충족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규의 기다림은 충족되었다. 성규의 도망간 아내가 다시 이곳에 나타났고, 성규는 다시 나타난 그녀를 보았고, 나와 지만이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오후 세 시 반을 넘어서면서였다. 갑자기 성규가 어딘가 먼 곳에 시선을 갖다 놓으며, 작은 소리로 오르그뜨가 나타났어 라고 소리쳤다. 딱히 나와 지만이 보고 들으라고 내어뱉은 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와 지만이는 성규가 내어뱉는 소리를 들었고, 그건 예사로운 소리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성규의 시선이 가 머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점을 향해 눈길을 돌려 살폈다.

    우리는 오르그뜨,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폈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나와 지만이는 성규가 무엇을 보고 그의 와이프, 오르그뜨가 나타났다고 하는지 의문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성규에게 물을 참이었다. 도대체 그녀가 어디에 있느냐 고. 그러나 성규는 우리에게 물을 틈을 허락지 않았다.

    어느새 성규가 어딘가를 향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벽에 부딪히곤 그 발걸음이 수시로 방해를 받고 있었지만, 성규의 나아감을 멈추지 못했고, 성규는 거기에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성규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와 지만이는 황망히 성규의 뒤를 따랐다. '오르그뜨가 나타났다'고 하였으므로 지금 성규가 향하고 있는 발걸음은 오르그뜨가 있는 지점이 될 것이었다. 성규가 무심코 내어뱉은 그 말이 맞다면 말이다.

    나와 지만이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 오르그뜨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며 성규의 뒤를 쫓는데 여념이 없었다.

    성규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몽골 남자였다.

    성규가 오른손으로 강하게 남자의 팔뚝을 잡아채었고, 그리고는 다짜고짜 이렇게 다그쳤다.

    "어따 숨겼어."
    "숨기다니요. 뭘 숨겼다는 겁니까."

    남자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팔뚝을 성규에게 잡히고 심문 하듯한 추궁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성규를 그 순간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온 순경쯤으로 착각했을런지도 몰랐다.

    남자의 목소리가 약간 떨려 나오고 있었다.

    "오르그뜨 말이야. 내 와이프 오르그뜨 말이야."
    "당신 와이프를 내가 왜 숨긴단 말입니까."
    "거짓말하지 말아. 방금전에 네 놈이 오르그뜨 하고 들어오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오르그뜨를 어따 숨겼어."
    "이거 도대체 뭐라고 하는 소리야?"

    드디어 남자가 짜증이 났거나 아니면 화가 난 듯 했다. 처음 성규가 다짜고짜 달겨들었을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나 의심을 해 보고 그래 당황한 듯도 하나, 성규의 말이 영 요령부득이자 성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화가 나기 시작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