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를 집어탔다. 미아리에서 남양주까지, 달리 가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는 없었다. 우리는 마음이 몹시 급했다. 달아난 몽골 아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처럼 몹시 급한 사람들은 택시를 타야 했다. 일반적으로 대중교통 수단 중에서 가장 빠르고 편안한 것이 택시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서울같은 대도심에선 그 상식이 안 통한다는 게 막상 택시를 집어타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이 급한 사람은 번번이 그 사실을 까먹는 것이었다.   성규와 지만이는 뒷좌석에 앉고 나는 앞좌석 운전사의 옆에 앉았다. 남양주 몽골문화촌에 가자고 앞에 앉은 내가 그랬고, 택시운전사가 아 축령산 가는 길에 있는 공연장 말하는 거지요, 라고 되물어왔다. 축령산이 어디 있는 어떤 산인지 몰랐으므로 나는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남양주에 있는 몽골문화촌으로 가자고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차가 출발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택시운전사가 이와같이 물어왔다.

    "몽골문화촌에 공연을 보러 가시는 모양이지요?"
    "몽골문화촌에서 공연 같은 걸 하는 모양이지요?" 내가 되물었다.
    "그럼요. 공연장이 있고, 몽골기예단이 거기에 상주하면서 공연을 하는 걸요. 공연, 아주 볼 만 합니다. 얼마전에 한번 봤는데, 노래도 좋고 춤도 좋고, 무엇보다도 서커스가 좋지요. 그러고보니까, 손님들은 공연을 보러 몽골문화촌에 가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
    "네,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그곳에 가는 겁니다."
    "사람을 찾으러요? 몽골 사람입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몽골문화촌에 가는 거군요. 왜, 공장에서 일할 몽골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건가요. 만일 그런 거라면, 몽골문화촌보다는 동대문운동장 옆이지요, 거기 몽골타운이 있는데, 거기가 더 몽골 사람 구하기가 좋을 텐데요."

    나는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으러 몽골문화촌으로 가는 거라고 택시운전사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것이긴 했지만, 뒷좌석에 앉아있는 성규를 생각해서였다. 아내가 도망갔다는 사실은 자랑처럼 떠들고 다닐 만한 얘기가 아니었고, 아내가 몽골 여자였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뒤에서 성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도망간 아내를 찾으러 가는 겁니다."
    "도망간 아내요?"

    택시운전사가 좀 의외인 듯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고, 잠시 택시안에 고요가 흘렀다.

    "몽골 여자도 도망을 가는 모양이군요. 제 듣기로는 중국 여자들이 잘 도망간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중국 여자는 되도록 피하라고. 베트남과 몽골 여자가 도망을 안가고 진국이어서, 외국여자와 기왕 결혼을 할 작정이면 베트남이나 몽골 여자를 취하는 게 낫다고 말이지요."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거겠지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요."

    내가 토를 달았다.

    "그야 그렇지요. 당연히 그렇겠지요. 사람마다 다 자기 색깔이란 게 있는 건데, 몽골 여자라고 해서 그렇지 않을 리가 있겠나요. 몽골 여자도 마찬가지 사람일 텐데...."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옆에 있는 택시운전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택시운전사는 검은 선글라스에 어깨에 모범택시 마크가 달린 노오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어느모로보나, 누가 보아도 택시운전사였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영락없는 택시운전사가 몽골 여자에 대해 좀 얕잡아보는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몽골 여자라고 해서 그렇지 않을 리가 있겠나요 라는 말에서 그런 인상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건 나의 오해일 수도 있었다. 택시운전사는 전혀 몽골 여자에 대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런 늬앙스를 담아서 한 얘기는 더더욱 아닐 수도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택시의 주인인 택시운전사였다.

    "저도 조만간에 사람을 찾으러 갑니다. 중국으로 말이지요."
    "...."
    "이런 얘긴 웬만해선 안하는데, 손님들도 사람을 찾으러 간다고 하니까, 손님들한테는 한번 얘기를 해 보고 싶군요.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 잘 이해하실 것 같으니까요."
    "누굴 찾으러 가는 건데요. 설마 택시운전사 양반도 우리처럼 도망간 아내를 찾으러 중국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아닙니다. 제 아내는 집에 잘 있습니다. 내가 중국에 가서 찾아올 사람은 작은 아버집니다."
    "......."
    "난 월남 가족입니다. 아버님이 1.4후퇴 때 월남 하셨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친척들이 북한에 남아 있습니다. 헌데, 요 근자에 작은아버님이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나오셨다고 합니다. 작은아버지가 저에게 연락을 취해오셨더군요.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여의칠 않다고요. 도와줬음 좋겠다고요. 당연히 도와야지요. 얼마만에 연결된 작은아버님인데요. 그래서 작은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중국에 나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어서 빨리 중국으로 가셔야겠네요. 한시가 급하지 않겠나요."
    "네, 이번 주말에 중국으로 나갑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손님들도 행운을 빌겠습니다. 도망간 몽골 아내를 꼭 찾으시라고요."
    "그럼요."
    "당연히, 꼭, 찾아야지요."

    사실 나는 택시운전사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택시운전사가 자신의 작은아버지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나와 있고, 중국에 나와 있는 그 작은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조만간 중국으로 나갈 참이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탈북자에 대한 소설을 구상 중이었다. 지난 오년 동안 그와 같았다. 오년 내내 구상 중이고 쓰지는 못하고 있다는 건 좀 창피스러운 일이긴 하였지만, 그 바람에 탈북자에 관한 얘기는 예사롭게 들려오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택시운전사는 자신의 작은아버지를 모셔오러 중국에 나간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우선은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고 웬만해선 한국행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 한국영사관 역시 매우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행운을 빈다는 말이 나왔던 것이었다.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올 수 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진짜 행운을 빌어주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이 한국행에 성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수년이 걸리기도 하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게는 그 꿈이 좌절되고 마는 일이었다. 택시운전사의 작은아버지도 한국행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미아리에서 남양주의 몽공문화촌까지 약 한시간 반이 걸렸다. 택시에서 내릴 때 택시운전사가 덕담을 해주었다. 아니, 그건 덕담이라고 하기 보다 유용한 정보였다고 하는 게 맞겠다. 여기 몽골문화촌에서 도망간 중국 아내를 찾지 못한다면 주말에 동대문운동장 옆 몽골타운 거리를 찾아가보라고. 거기가 몽골 사람들의 한국 내 아지트요 사교장이니까.

    우리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반사적으로 무심코 한 응대였지만, 나중에 그 말은 틀림없이 실행에 옮겨졌다. 당장에는 건성으로 흘려듣고 건성으로 대답한 거지만, 나중에 동대문운동장 옆 몽골타운 거리를 찾았을 때에는 택시운전사가 준 그 정보에 마음속으로 아주 고맙게 여기게 되었다.

    몽골문화촌에 성규의 도망간 몽골 여자는 없었다. 몽골문화촌에는 몽골박물관과 공연장과 경마장 뿐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몽골문화촌은 유원지였지, 몽골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몽골박물관을 둘러보았고, 경마장에서 달리지 않는 말들을 구경했고, 공연장에서 몽골기예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장장 두 세시간에 걸쳐.

    아니, 공연장에서는 단지 몽골기예단의 공연을 관람만 하진 않았다.

    몽골기예단이 우리가 몽골문화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몽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혹시 성규의 도망간 몽골 여자, 오르그뜨의 행방을 이들이 알지 않을까 싶어 몽골기예단을 찾아 무대 뒤로 갔었다.

    우리가 몽골기예단을 찾아 무대 뒤로 간 것은 몽골문화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몽골인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럴만한 일이었지만, 공연 중에 찾아간 것은 잘못이었다.

    나와 성규와 지만이가 무대 뒤로 가 제일 먼저 마주친 몽골기예단원에게 말을 걸려고 하였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오히려 우리와 마주친 그 몽골기예단원이었다. 그는 우리를 자기들 기예단원의 일원으로 착각했거나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 몽골기예단원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우리에게 공연복을 입히고 무대 위로 떠다밀어 내보냈을 때 그가 그와같은 착각에 빠져있다는 걸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떨결에 무대로 밀려나온 우리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시 무대 뒤로 돌아가 우리는 몽골기예단원의 일원이 아니고, 우리는 한국사람들이고, 우리가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그 몽골기예단원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때가 늦어 있었다.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리 많지 않은 관객들이 우리를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고 있었고, 우리 뒤의 대부분이 몽골 악기로 이루어진 몽골기예단 반주단이 반주를 넣기 시작하고 있었다.

    만일 몽골기예단 반주단이 넣은 반주가 우리가 전혀 모르는 몽골 노래나 다른 어디의 노래였다면, 우리는 그 공연을 파토내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흘러나온 반주는 다행히도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적어도 나는 잘 아는, 우리 노래 '사랑해'였다.

    나는 반주에 맞춰 '사랑해'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만이도 열심히 따라불렀다. 그러나 성규는 부르지 않았다. 입만 뻥끗, 부르는 시늉만 했다. 나중에 성규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랬다. 성규는 당연히 '사랑해'라는 노래를 잘 알지만, 부르고 싶지 않아서 입만 뻥끗 거렸다고 했다.

    우리들이 노래를 끝마쳤을 때, 정확히는 나와 지만이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뜨거운 편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누군가는 앵콜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그 순간에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중에 곰곰 따져보니 이해가 될 만한 일이었다.

    몽골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으로,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노래를 불러제꼈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관객들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몽골기예단원의 일원인 줄로만 알고 있었을 테니까.

    앵콜 요청이 들어왔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곧 무대 뒤로 들어가야만 했다. 실수로 우리를 무대로 내보내기는 했지만, 우리가 기예단원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챈 몽골기예단의 단장이 당장 우리를 무대에서 내려오도록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실상 무대 뒤에서는 우리 때문에 난리가 나 있었다. 우리를 멋도 모르고 무대로 내보낸 그 기예단원은 단장의 질책과 추궁으로 거의 반죽음 상태에 놓여 있기까지 했다. 다행히 우리가 펑크를 안내고 오히려 관객들의 좋은 반응까지 얻어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몽골기예단은 오늘 공연 종치고 씻기 어려운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을 것이었다.

    우리가 무대 뒤로 돌아왔을 때, 몽골기예단의 단장과 통역이 우리를 기다리다 맞이했다. 통역은 이십대 후반의 몽골 여자였는데, 작달막한 키에 둥그런 얼굴이 전형적인 몽골리안이었다.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을 때, 통역하러 나온 모습을 이미 본 여자였었다.

    몽골 통역은 우리말을 정말이지 우리나라 사람처럼 잘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몽골 사람이라는 사전 인지 없이 만난다면 한국 사람이라고 당연히 착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몽골 통역이 매우 불만섞인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어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남의 공연을 망치려고 그러는 건가요? 누가 시킨 건가요?"

    내가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사람을 찾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오르그뜨라는 몽골 여자 말입니다. 우리가 무대에 나서게 된 건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를 단원으로 잘못 착각한 당신네 멤버 중의 한 분이 우리를 강제로 무대 위로 떠다미는 바람에 그리 되었던 것 뿐입니다. 공연을 망치러 왔냐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사람을 찾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오르그뜨라는 몽골 여자 말이지요."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이구 말구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여기에 왜 왔겠습니까."

    몽골 통역이 단장에게 몽골말로 무슨 말인가를 했다. 우리말을 단장에게 전하는 것 같았다.

    "찾는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요?"
    "오르그뜨라구요, 스물 두 살 난 젊은 몽골 여자입니다."
    "우리 단원 중에 오르그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아, 알고 있습니다. 오르그뜨라는 여자는 여기 몽골기예단원 멤버 중의 한사람이 아닙니다. 몽골기예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여자지요."
    "예? 그럼 왜 여기를 찾아온 건가요. 저희 멤버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건 저, 답답해서인 거지요. 여기 가면 혹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여기가 몽골문화촌이고, 오르그뜨는 몽골 사람이고 하니까..."

    미아리의 점쟁이 처녀보살이 이곳으로 가 보라고 해서 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같이 점잖은(?), 아니 성규와 지만이는 아니라면, 나같이 점잖은(?) 사람이 점쟁이의 말만 믿고 이런 데까지 온다는 게 아무래도 드러내놓고 밝힐만한 일은 못된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때문이었다. 또 미아리 처녀보살이 똑 집어서 남양주 몽골문화촌으로 가 보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애매모호하게, 북남동쪽으로 가면 찾을 수 있으리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북남동쪽을 몽골문화촌으로 해석한 건, 전적으로 우리였다. 나와 지만이었다. 처녀보살 얘기는 안 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몽골문화촌이라고 해서 여기서 몽골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요. 한국에 온 몽골 사람들이 모두 몽골문화촌에서 사는 게 아니지 않나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몽골문화촌에는 저희같은 기예단원을 빼면, 오히려 몽골사람들은 없습니다. 여긴 한국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공연장 겸 유원지이니까요."
    "와서 보니까 그렇다는 걸 알겠더군요. 그래서 섭섭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나 섭섭했으면 예까지 와서 오르그뜨란 여자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봐야겠단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도대체 그 오르그뜨란 여자를 왜 찾는 거지요. 여러분하고 무슨 상관이 있길래요."

    "큰 상관이 있지요. 여기 이 친구의 아내입니다."

    내가 성규를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근데 도망갔습니다.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결혼서약을 어기고, 아무말 없이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찾고 있는 겁니다."
    "?......." 몽골 통역이 미세하나마 좀 충격을 받는 듯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는 이곳에 없었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아는 사람은 이곳에는 없었다. 그게 확인되었으므로 돌아가야 했다.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더 머물면, 실망만 깊어갈 일이었다.

    "같은 몽골 여자로서, 몽골 아내가 한국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아서려는 마당에 지만이 몽골 통역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나는 지만이 몽골 통역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몽골 통역은 전혀 주저함없이 답변을 주었다. 내 예상과는 크게 빗나간 반응이었다.

    "몽골 여자든 어디 여자든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는 건 잘하는 짓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내가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는 데에는 남편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요. 도망간 몽골 여자만을 탓할 게 아니라 말이지요."
    "?......"

    나는 힐끗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빛이 다소 빨갛게 상기되는 것까지를 숨기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