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국제적 망신을 산 '폭력 국회'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높은 비판이 2월 국회에서 민생·개혁 법안 처리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12일 새해 첫 라디오 연설에서 "당면한 '경제 위기'만큼이나 심각한 '정치 위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국회를 겨냥, 포문을 열었다.

    약 8분에 걸친 이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지난해말 폭력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을 그대로 옮긴 듯 직설적 어법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 "정말 앞이 캄캄했다" 등 폭력사태를 지켜본 심경이 그대로 나타났다.

    청와대 참모들은 라디오 연설 원고가 너무 강해 순화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동안 할 말이 없어서 안한 게 아니다"며 경제위기 극복 노력에 '걸림돌'로 비쳐진 국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정치가 오히려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있지 않나"며 개탄한 뒤 "혹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외국인들이 보면 어쩌나 마음 졸인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직격했다. 이 대통령은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법치주의가 바로설 수 있겠느냐"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서민은 일 때문에 잠시 가게 앞에 세워놓은 차도 딱지를 떼고 반복하면 면허정지까지 당하지 않느냐"고 '불법 국회'를 호되게 몰아세웠다.

    국회를 겨냥한 이 대통령의 강도높은 '경고 메시지'는 경제살리기로 귀결됐다. 국회의 법안처리 지연이 이 대통령과 정부의 경제살리기 '속도전'에 엄청난 차질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무슨 정책을 내놔도 계속 반대만 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토로하면서 "사실 정부가 작년 말에 1분기 앞서 업무보고를 받고 예산 집행도 서두르고 있지만 여야 대립으로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그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선진일류국가가 되기 위해 정치 선진화는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 국민적 공감 아니냐"며 "거기에 안타까움을 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정치 개혁을 강하게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폭력 국회에 대해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작심발언'이 2월 국회로 미뤄진 주요 법안 처리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 주목된다. 폭력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여전한 가운데 이날 박영선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해외골프 추태가 발각된 것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연설에 바짝 긴장,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날 오전 박희태 대표 주재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폭력 국회에 대한 성토와 함께 재발방지책 마련에 분주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만약 이 상태를 그대로 지속하면 2월 국회에도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것이고 정기국회까지 국회가 폭력의 장으로 계속 변질될 수 있다"며 "전기톱 국회, 해머 국회는 이번 국회로 종식시키기 위해 국회폭력방지법을 당론으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법안 처리를 위해 지난해 부족했던 대국민 홍보전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