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획재정부가 정부 부처 산하 302개 공공기관의 지난해 경영정보를 분석한 결과 임원을 제외한 공공기관 직원의 1인당 평균 연봉이 5340만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임금 3220만원보다 66%가 많았고, 국내 기업 가운데 순익(純益)을 가장 많이 내고 있는 삼성전자의 1인당 6021만원보다 연봉이 더 많은 기관이 92곳이나 됐다.

    공기업·공공기관 직원들이 이런 고액 연봉을 받아야 할 만큼 전문성과 능력이 뛰어난 것일까. 연봉 1위를 기록한 증권예탁결제원 직원 평균 연봉은 9677만원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은 저리 가라 할 소득이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증권시장에서 일어나는 매매 거래에 대한 결제업무와 투자자들이 사들인 주식과 채권을 보관해주는 유가증권 실물(實物) 예탁 업무를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할 때마다 내는 수수료와 증권 예탁 수수료 등으로 지난해 1479억원을 벌었다. 한마디로 그냥 앉아서 수수료만 챙기는 땅 짚고 헤엄치면서 번 돈이다. 이렇게 번 돈 가운데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기타 경비로 펑펑 쓰고도 남은 영업이익이 651억원이나 됐다.

    평균 연봉 9185만원으로 3위에 오른 코스콤도 증권시장과 관련된 전산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독점이 아니어서 경쟁체제에 의해 수수료가 인하(引下)만 됐더라면 민간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보다 월급을 더 받는 배부른 신세가 되지는 못했을 공기업이다. 공기업들 대부분은 정부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경쟁자 없이 손쉽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 민간기업에 비해 업무부담은 적고 월급은 많고 경제에 무슨 태풍이 들이쳐도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머니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기업·공공기관들은 노무현정부 5년 동안 민영화와 구조개혁의 압력이 없었던 틈을 이용해 몸집을 한껏 키웠다. 302개 공공기관의 전체 임직원 수는 2003년 19만2686명에서 2007년 25만8982명으로 6만6000여명이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취업자 가운데 공공기관 임직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0.87%에서 1.11%로 높아졌다. 생산성 낮은 공공부문 비중이 이처럼 커졌으니 한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전체 부채(負債)는 2003년 245조원에서 2007년 276조원으로 31조원이 늘었다. 반면 당기순이익은 31조1000억원에서 17조4000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됐다. 이렇게 빚은 늘고 이익은 줄었는데도 직원 평균 연봉은 4350만원에서 5340만원으로 연평균 5.3%씩 늘었다.

    기관장들의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에서 1억5400만원으로 연평균 6.5%씩 늘어났다. 사원 봉급 증가율보다 더 높은 것이다. 이익은 줄고 부채는 늘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오르고 해마다 사람을 더 뽑아 일은 갈수록 편해지는 이런 '월급쟁이 천국'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공기업 사장 자리는 대부분 관련 부처 혹은 감독 부처의 퇴직 공무원들이나 대통령 선거 때 무슨 특보(特補)니 하는 명함을 새겨 다니던 정치 한량(閑良)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 3년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그만인 이들은 굳이 욕 먹어가며 구조개혁하겠다고 나설 생각이 없다. 더구나 '낙하산'이라는 약점 때문에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경영'이란 이름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사장 월급도 올리고 사원들 월급도 함께 올리는 짓을 거듭 한다.

    또 회사 내부를 감사해야 할 감사 자리는 회계(會計)의 '회'자(會字)도 모르는 정치 건달 몫이다. 이런 감사들은 경영 감시는커녕 자기는 제쳐놓고 사장 월급만 올리는 것이 아니냐는 데만 신경이 곤두서 있다. 사장과 사원들이 끼리끼리 해먹는 그들만의 공존공영(共存共榮)에 회사도 멍들고 나라도 멍들고 국민도 멍들어 간다.

    국민을 대신해 공기업 경영을 감시·감독해야 할 정부도 공기업과 한통속이다. 연봉 4억원이 넘는 10대 공기업 기관장 가운데 8명이 관료 출신이다. 공직 생활을 마친 뒤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고액 연봉을 챙길 궁리를 하고 있는 공무원들로선 공기업 직원들의 연봉에 칼을 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공기업·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고액 연봉 문제를 풀려면 '주인'을 찾아주는 것, 결국 민영화하는 것만이 확실한 방법이다. 이명박정부가 임기 5년 동안 공기업 민영화 하나만이라도 딱 부러지게 해내면 국민을 위했던 정부라는 이름을 얻고 역사에도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