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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여의춘추'에 이 신문 이홍우 논설위원이 쓴 '68 대 31 대 24'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내일은 투표하는 날이다. 1인 2표 를 통해 18대 국회의원 299명(지역구 245명·비례대표 54명)이 선출된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을 뽑는 245개 선거구 가운데 5분의 2는 사실상 당선자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영남 68개, 호남 31개 선거구다.
영남의 경우 지금까지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대로라면 민주노동당이 선전하고 있는 1∼2개 선거구를 제외하고 한나라당 압승이 예상된다.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일부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 후보들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니다, 아니다 해도 결국엔 한나라당 의원이 될 테니 말이다. 한나라당 아니면 짝퉁 한나라당이라도 돼야 영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호남은 모든 선거구가 통합민주당판이다. 혼전 지역이 있다고 해 봐야 민주당 후보와 친민주당 무소속 후보가 대결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무대와 출연진이 호남과 민주당으로 바뀌었을 뿐 극(劇) 흐름은 섬진강 너머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영·호남에서 국회의원이 되려면 정치 이념과 노선이 맞지 않아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간판을 내걸어야 하는 수십년째 계속돼온 비슷한 결말의 드라마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것 같다.
이젠 그것도 모자라 24석이 걸려 있는 충청권 틈새시장을 노리고 자유선진당이 가세하면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가 영남과 호남, 충청을 분할했던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회창 선진당 총재는 부족한 세를 지역주의로 만회하려는 속내를 선거운동 기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총재는 "선진당은 충청에서 형제자매들 가운데 탄생한 정당이자 충청인과 함께 가는 정당"이라고 지역정서에 기댔다.
3김시대 종식과 함께 지역주의도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이 우세한 때가 있었다. 거기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지역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당위와 국민의 소망이 담겨있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가 영남에서 '의미있는' 득표를 한 데 이어,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자민련이 몰락하고 '반한나라당' 후보들이 영남 몇 개 선거구에서 당선되면서 '망국적 지역주의 해소라는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기대가 잇따랐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비영남 출신이었더라도 영남권에서 18.52%∼34.98%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을까. 영남지역 17대 총선 결과 역시 탄핵역풍과 노무현 후광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이었다. 한나라당은 소선거구제가 부활된 이후 호남에서 여전히 단 한 명의 지역구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각각 중앙당 차원의 영·호남 지원유세를 포기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선진당이 충청에 올인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영·호남은 물론 충청에서도 투표 자체가 자칫 요식행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당 지역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에 맹목적으로 표를 던지는 거수기 역할에 머무는 한 그럴 가능성은 커진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245개 선거구 중 절반이 넘는 123개에서 특정 정당 공천을 받기만 하면 당선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나아지겠지, 차차 나아지겠지…' 하며 수수방관한 결과다. 박정희 정권 때 나타난 지역주의 망국병은 3김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러 자연치유가 불가능한 최악의 증세로 악화됐다. 국민 판단에 맡기자는 정치권의 상투적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또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아무리 여론이 나빠도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점하는 공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망국병을 치료할 수 없다. 싹쓸이 당선은 막을 수 있는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 그래서 필요하다. 제도개선과 함께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를 없애는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 행정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지역의 노예가 돼버린 국민을 해방시킬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