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인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의 진보는 지금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완전히 주변세력으로 몰릴 대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진보의 위기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과거 진보세력의 생각과 행동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위기에 처했다고 할 수 있다.
    진보가 재생하기 위해서는 구 진보의 오류를 시정하고 그 편향을 극복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새 진보의 길로 가야 한다. 지난 28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좋은정책포럼 창립 2주년 심포지엄에서 필자가 했던 기조발제를 중심으로 새 진보가 지향해야 할 사고와 실천의 준칙(準則)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기업은 사회발전 원동력"

    첫째, 이념에서 출발하지 말고 실생활에서 출발하자. 실생활보다 이념에서 출발한 경향이 강했던 구 진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 진보는 철저하게 실생활에서 출발하는 실사구시의 진보, 실용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이상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자. 실현불가능한 대안을 추구하는 이상주의,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배격하는 근본주의는 한국의 진보를 주변적 정치세력으로 밀려나게 만든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므로 새 진보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하려는 중도진보 입장을 취한다면 이러한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셋째,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지 말자. 국민의 평균적 정서에서 진일보(進一步)한 정책을 제시하여 국민의 신뢰와 협력 속에 정책을 성공시키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넷째, 반시장경제, 반기업 이미지를 탈각하자. 새 진보는 시장경제를 토대로 한 국민경제를 생각하며 노동자의 일터이기도 한 기업을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중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다섯째, 민주주의라는 단일 차원만으로 사고하지 말자. 민중의 실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민주주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혁신의 결합을 통한 기업과 경제의 성장 없이는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자. 여섯째, 민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말자. 이미 글로벌 경제로 이행한 시대에 기존의 민족경제론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되며 다문화 사회로 급격히 이행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기존의 민족문화론에 고착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국가안보를 중시하자. 국가안보 담론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진보세력을 국민들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새 진보는 당면한 안보불안 요인인 북한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가안보 정책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여덟째,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자.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진보가 북한의 인권탄압과 독재에 대해 침묵해왔기 때문에 진보가 국민으로부터 큰 불신을 받아왔다. 새 진보는 햇볕정책 지속을 지지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중시 하자 

    아홉째, 노동의 권리와 윤리를 함께 주장하자. 노동의 권리 신장에 상응하는 노동의 윤리가 실천되지 않아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당하고 있다.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작업장 참가, 시민·소비자·하청기업에 대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완수,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양보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 등과 같은 노동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타협을 지향하자. 새 진보는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타협에 이르는 것이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위상을 강화하고 나라발전, 지역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준칙들을 일관되게 지켜서 구 진보에서 새 진보로 환골탈태할 때 비로소 진보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