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러리맨의 신화, 청계천의 신화를 넘어 이제 대한민국의 신화를 만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신화를 일군 인물이다. 1941년 지독한 가난 속에 태어나 풀빵장수, 막노동을 하며 고학했으며 신입사원에서 출발해 30대 CEO로서 현대건설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내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다. 14, 15대 국회의원을 거친 후 2002년 민선 3기 서울특별시장에 당선, 청계천 복원과 교통개혁으로 또 한번의 신화를 이끌어냈다.

    이 당선자는 또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관통하며 21세기 선진화를 주도할 지도자다. 사실상 1년 넘게 이어진 대선레이스에서 그는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강조하며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다. 지난 87년 직선제가 부활된 이래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지역과 세대를 넘어선 폭넓은 지지를 받음으로써 명실상부 정통성과 정당성을 갖춘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 "내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

    1941년 12월19일 가난한 목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 당선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생활전선에 나섰다. 김밥과 풀빵, 뻥튀기, 과일, 생선, 옷감 등을 팔며 고학으로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며 고등학교에 가길 독려한 스승을 이 당선자는 틈날 때마다 소개한다.

    여학교 앞에서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장사하던 그에게 "뭐가 부끄러우냐. 남을 속이지 않고 사는 자신에게 당당하라"고 호통 쳤던 어머니를 이 당선자는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한다. 이 당선자는 "가난했지만 정직한 삶을 살았으며, 자식들에게 이러한 삶을 가르친 분"이라며 올 4월 저서 '어머니'를 발간했다.

    이 당선자는 59년 12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동생과 함께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부모님은 이태원 판자촌에 단칸방을 얻어놓고 이태원 시장에서 노점을 하던 시절, 이 당선자는 달동네 합숙소에서 일당노동자 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이 당선자는 "매일 출근할 수 있고,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30대 CEO, 샐러리맨의 신화를 쓰다

    무작정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한 책으로 대입공부를 시작한 그는 한 재수생을 따라나서 입학원서를 낸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합격한다. "가난의 대를 끊기 위해 없는 집 아이들에게도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져야한다"는 그의 신념은 여기에 기반한다.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던 그를 위해 어머니가 행상을 하던 이태원 재래시장 상인들은 환경미화원 자리를 줘 학비를 마련케 했다. 이 당선자는 매일 새벽 4시경 시장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하며 학업을 이엇다. 그는 상과대학 학생회장 시절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 운동을 주도했다가 대법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했다.

    대학 졸업 후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이유로 취직을 할 수 없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청와대와 담판 끝에 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다. 현대건설 면접에서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정주영 회장의 질문에 "건설은 창조입니다"라고 했던 이 당선자는 "그 이후 여러 장소에서 정 회장이 '건설은 창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뿌듯해했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입사 5년만에 이사, 12년만인 77년 만35세의 나이에 현대건설의 CEO자리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간다. 세계 각지에서 벌인 그의 기업 활동은 '글로벌 리더'로서 자질을 갖추게 되는 큰 경험이 됐다. 특히 목숨을 걸고 현장 폭도로부터 끝까지 금고를 지켰던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사건이나 살벌했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상대로 피눈물을 흘려가며 현대자동차를 지켰던 일화는 방송 드라마에서도 소개되면서 그의 집념과 투지, 위기에서 발휘되는 특유의 도전의식을 보여줬다.

    ◆ 서울을 세계적 명품도시로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96년 15대 총선에서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4선인 이종찬, 노무현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됐다. 2002년에는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서 '서울 경영'에 나선다. 그는 기업에서 배운 경영 마인드를 공공 행정에 도입해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계천 복원사업', '대중교통체계개편'을 차질 없이 성공시켜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서울의 변화와 이명박의 리더십은 타임즈,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타임즈 등 국제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당선자는 정치공세가 극심했던 선거운동 기간 중 "나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대접받는 것 같다"면서 "기업 시절, 서울시장시 절 신뢰받고 사랑 받았었는데 정치권에서 만신창이를 만들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명박을 설명하며 빼놓을 수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히트상품,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시행자상 수상 등 국내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물이 됐다. 특히 타임지는 2007년 10월 이 당선자를 '올해의 환경영웅'으로 선정했다. 서울시장을 지내며 다진 업적은 대통령 후보로서의 그에게 큰 자산이 됐다.

    ◆ 이제, 대한민국의 신화를 이끈다

    지난해 6월말 시장 퇴임 후 한반도 대운하, 대한민국 747을 내세운 그는 대통령 후보로서 전국에 '이명박 열풍'을 불러왔다. 지지율 3위에서 지난해 가을 추석을 기점으로 선두를 차지한 이 당선자는 이후 단 한 차례도 타 경쟁자에게 '지지율 1위'를 허락하지 않으며 국민적 신뢰를 쌓아왔다. 1년 이상 진행된 대선레이스에서 이 당선자는 당내 경쟁자, 타당 경쟁자들이 격렬한 정치공세를 펼치는 동안 수차례 외국을 탐방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정책구상에 몰입, 차별성을 나타냈다. 그는 유럽의 운하, 일본 과학도시, 두바이의 기적, 인도의 BT‧IT 산업 등을 탐사하며 대한민국의 미래지도를 그렸다.

    지난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궜던 한나라당 경선에서 그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아웃사이더'였던 이 당선자는 당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온 박근혜 전 대표와 힘든 싸움을 벌이면서도 포지티브 선거를 치르며 당당히 승리했다. 아쉽게 무릎을 꿇은 박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승리를 축하한다"며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나타냈다.

    경선을 통과한 이 당선자를 기다린 것은 여권의 본격적인 'BBK' 공세였다.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경준의 귀국, 소위 '이명박 국감'을 통한 파상적 공세, 급기야 청와대의 개입까지 갖은 공격에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꺾이지 않았다. 지난 5일 검찰의 '무혐의' 수사 발표로 이 당선자의 결백이 밝혀졌지만, 대선일까지 여권의 공격은 계속됐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갑자기 대선판에 끼어든 이회창씨도 골칫거리였다. 이씨는 '불안한 후보'라며 이명박 당선자를 괴롭혔지만, 결국 미풍에 그쳤다.

    이명박 당선자는 선거운동 내내 "경제 하나는 반드시 살리겠다"고 역설했다. 국민들의 기대역시 '경제 살릴 이명박'이다. 이 당선자는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 능력 있는 지도자와 만나 서로 신뢰를 통해 힘을 모으면, 대한민국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천하는 대통령' 이명박 당선자는 어느 대선보다 높은 득표율에 힘입어 '이명박표 경제살리기'에 탄력을 붙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