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데일리는 자유주의연대가 발간한 <권력 저널리즘의 꽃, '코드방송 괴물 포털'>을 연재합니다. 9부 '2007년 대선은 포털이 결정한다-정체불명 인터넷 여론의 실체'입니다.
     

    인터넷 여론은 여전히 진보와 개혁 또는 좌파의 입김이 드세다. 영향력이 크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좌파의 경험적 특징과 인터넷의 속성이 결합하여 소수의 드센 입김이 막무가내로 전체 인터넷 여론을 좌우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입김이 드세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특히 정치여론의 경우를 볼 때,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과 2004년 4․15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압승에 미친 그들의 입김의 크기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현상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정권이 사망선고를 받은 이후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소수의 드센 입김’은 전후좌우가 없고 실체가 분명치 않은 순간의 명분을 긴박하게 포획한다. 특정하고 우연한 매개를 포착해 간단히 대중의 공분을 조작하고 이를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분출시킨다. 때로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우중이 되고, 국민들은 지난 후회를 또다시 망각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인터넷 여론의 깊은 심중에 완강하게 잠재되어 있다. 2002년 12월 대선의 코앞에서 김기보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신분을 속인 채 미국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고 촛불시위를 제안하고 이를 보도했었다. 대선이 끝난 후 김기보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오마이뉴스는 그를 200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었다. 촛불시위가 대선에 끼친 결정적 영향과 어이없이 확장된 반미여론의 포퓰리즘은 정체불명 인터넷 여론의 대표적인 경우다.

    평당원 홍위병의 출현

    열린우리당의 창당과정에서 그리고 국회 과반수 최대 정당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인터넷 여론의 힘은 실로 막대하고 막중했다. 당내에서 네티즌 비례대표까지 검토했으며 이 방면의 달인인 유시민 의원을 e-party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풍부하게 자금도 지원했었다. 그리고 인터넷 홍보에 최대한 힘을 기울이고 온라인상의 지지자를 결속하는 데 큰 역량을 투입했다. 당 지도부는 정례적으로 e-party(당 홈페이지, 나중에 u-party로 변경)의 당원게시판(이하 당게) 여론을 보고받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주요 임무에 속했다. 그 입장에서 보자면 그만큼 유용하고 정치적으로 온당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인터넷 정치의 선구자인 열린우리당이 인터넷 여론으로부터 역공을 당하게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2004년 6월 말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점하는 17대 국회 개원 직후 본회의 무기명 투표로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e-party는 폭발했다. 당게 주요 멤버 246명이 서명한 찬반 고해성사 질의서가 당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되고 당게는 이들의 주도로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었다. 당시 질의서를 들고 국회 의원회관을 험악하게 몰려다니던 이들의 모습은 홍위병 이외의 다른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무기명 비밀투표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체포반대 의사표시도 소신이 있었을 텐데, 50명이 넘는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며 무기력하게 굴복했고 반대한 의원은 대부분 끝까지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곱고 미안한 표정으로, 반대의 소신을 씩씩하게 피력하는 이 없이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소위 인터넷 여론, 인터넷 정치의 기막힌 단면이다.

    당게낭인(黨揭浪人) 열린 e-party를 휩쓴 12인의 당게낭인(黨揭浪人) 정당의 홈페이지에 연속적으로 글을 올려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

    그로부터 1년 후 2005년 6월, 이번에는 당원 아이디 ‘달그림자’가 보름 동안 당게 게시글 데이터 분석결과를 올리면서 이른바 당게낭인 시비로 인터넷 저급문화와 매카시즘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당시 당게에 오른 2,201건의 글 중 22%에 해당하는 485건이 12명의 ‘당게낭인’이 올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이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심혈을 기울이며 당론에 반영했던 당게의 인터넷 여론이 사실상 12인의 낭인에 독점당한 여론이었다면 - 당시에는 당원이 40만 심지어는 70만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새삼 인터넷 여론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당론과 당의 정책 자체뿐 아니라 당원의 민주주의까지도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뜻이다. 당내에서는 “146명의 의원이 12명의 당게낭인에 휘둘리고 게시판 정치가 당론까지 뒤흔든다.”는 자조와 탄식이 흘렀고 언론에서는 “인터넷 즐기던 輿, 이젠 인터넷 덫에(한국일보, 2005년 5월 19일자)”라고 조롱을 당했다.

    열린우리당을 살찌워주던 당게와 인터넷 여론이 언제부터인가 무법천지 황야로 돌변해 12인의 당게낭인에게 농락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인터넷 여론으로 촉발된 왜곡된 민심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결과적인 우려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문제는 당게낭인들이 오히려 이를 자랑스러워했으며, 당게의 지지를 받아 카페를 만들고 당 지도부에 해명을 요구한 데 대해 당 지도부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송년회가 기획되었다. 정세균 대표와 의원 십여 명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당게낭인 번개 송년회는 그해 연말의 사학법 정국으로 성사되지는 않은 듯하지만, 이는 정체불명 인터넷 여론으로 재미 보다가 그 독하고 질긴 덫에 걸려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 열린우리당의 슬픈 자화상이다. 
     
    참여자 5%가 포털 정치게시판 싹쓸이
    정치 및 온라인 리서치에 높은 권위를 가진 메트릭스(대표 조일상)의 2006년 지방선거 기간 포털의 정치 게시판 분석결과에 따르면, 참여자 5%가 게시판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4월 3일부터 6월 1일(야후는 5월 6일)까지 네이버, 다음, 야후의 세 개 정치게시판에 오른 글 수는 전체 7만 6000여 건이며 하루 평균 1800개 정도가 된다. 또한 방문자 수 대비 게시자 비율은 거의 1% 수준에 그치며, 이는 글을 올리면서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이용자가 아주 극소수라는 뜻이다. 더구나 전체 글의 72.3%에 해당하는 54693건을 활동상위 5%가 올린 글이라는 점은 더 놀랍다. 결국 방문자 수 대비 0.05%의 극소수가 정치 게시판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가 조직적으로 결집하여 게시판을 점령하고 특정한 여론을 주도해 나간다면 속수무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진보개혁 좌파의 인터넷 여론 주도력

    글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이 우세한데, 당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선거결과를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게시판의 글 수는 늘어나지만, 주 단위로 글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 날짜를 살펴보면 특징적인 현상이 보인다. 예를 들어 4월 첫째 주에는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9일에 786건의 글이 올라온 반면,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5일에는 1287건이 올라와 최고 글 수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한나라당이 자체적으로 공천비리 수사를 의뢰한 날과 박계동 의원 동영상 파문이 터진 날 올라온 글의 수가 주 단위 최고의 건수를 보였다. 자연스러운 여론도 상황에 따라서는 정체불명의 인터넷 여론으로 번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나라당과 우파는 항상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공격을 당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박계동 의원 동영상의 경우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경우 게시판을 통한 네거티브 공격의 악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터넷의 인기는 오세훈 < 강금실

    글 내용에 서울시장 후보가 언급된 글 수를 분석한 결과, 선거결과나 지지율과는 반대로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에 대한 언급이 2238건이었던 데 비해,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 언급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3211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강금실 후보의 이미지 전략과 좌파적인 여론주도 네티즌들의 주도성이 결합된 현상으로 판단된다.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성을 강조하고 인터넷 전략이 강한 범여권의 대선후보가 등장한다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2007년 대선에서 2002년과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저자소개
    최홍재
    1968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조통위원장 대행,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과 뉴라이트은평연대 대표로 활동 중이다.

    김배균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민중연대사업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치웹진 뉴라이트폴리젠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