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나온 『정치의 미래』란 책이 있다. 테드 할스테드(Ted Halstead)와 마이클 린드(Michael Lind)라는 미국인들이 쓴 책이다. 한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공공정책 기관인 뉴 아메리카 파운데이션의 회장이자 설립자이며 다른 한 사람은 그 기관의 선임연구원이다. ‘디지털 시대의 신 정치 선언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미국은 민주·공화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42%에 이르며, 따라서 민주·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정치 구도는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들은 ‘혁신적 중도주의 정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면서 선거 제도, 조세 제도, 교육 제도 등에 걸쳐 많은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혁신적 중도주의 정치’는 말하자면 민주·공화 양당을 절충하는 가운데 길(middle way)이라기보다는 불교식 어법으로서의 새로운 길(new way)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세세한 내용의 시비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옳다고 본다. 이 복잡한 세상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틀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그 틀이 지나치게 고정관념에 얽매어 있거나 극단에 치우쳐 있으면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할 수가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른바 작금의 복합·다원 시대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유동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저자들도 비슷한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이슈들이 다양해서 개개인의 제 가치들을 획일적으로 ‘진보’ ‘보수’라는 규정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예컨대 나 같은 경우는 사회·경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적인 문제의식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거나 고개를 끄덕일 경우도 있고, 미국·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대체로 한나라당 노선에 가깝다. 그리고 사형 제도를 존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 반면에 나는 유신 정권과 5공화국 정권에 대해서는 ‘태어나서는 안 될 정권’이라는 역사 인식을 갖고 있으며, 진보·보수 일각의 극단적인 한국 근·현대사 해석들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현 여권 정치인들의 과거 갖고 득 보는 정치, 낙인찍기 식 정치에 대해서도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보편적인지 특수한 경우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십 년을 살다 보면 다양한 역사적 체험과 실존적인 우여곡절을 겪기 마련이라 단일한 색깔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여론조사들을 보면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이를 떠나 과거와 같이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정치 세력은 거의 없는 현실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정통의 잣대로 보면 ‘좌파’라고 하기도 어려운 정당이며, 한나라당도 과거 민정당과는 다르다.

    각 정치 세력들이 역사적 연원과 지지 기반이 다르고, 지향하는 목표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색깔의 농도들이 옅어질 수밖에 없고, 더욱이 그 기준도 점차 급변하는 사회의 새로운 수요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와 실사구시적인 문제 해결 능력일 터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보내는 높은 지지는 이런 기대감의 표출이 아닐까? 그래서 이 후보가 당선 일성(一聲)으로 ‘당 개혁’을 주문한 것 같다. 시점과 상황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용 자체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당이 스스로 해야 하겠지만, 이명박 후보도 비단 한나라당 개혁뿐만 아니라 정치 개혁(특히 아날로그 정치·정부를 디지털 정치·정부로 바꾸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한나라당에 10년 가까이 몸담으면서 느낀 것이 참 많은데,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아직도 낡고 극단적인 사고체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캠페인 기법 때문에 단순 명쾌한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기에 매혹될 만큼 우리 국민들이 어리석지 않다. 어쩌면 평균의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있고, 더 많이 공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선거에 지고 나서는 ‘우리가 반성하고 있다’ ‘당을 변화 시키겠다’는 말들을 하면서도 제대로 실천이 안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당 체질 개선 방안을 맡겼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은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무조건 이긴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를 방조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긴다고 큰소리친 근거였다. ‘보·혁 구도’로 가면 이긴다고 했다. 노무현 후보가 급진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회창 후보는 나중에는 수정했지만, 선거기간 첫날 그렇게 주장했다. 이런 낡은 어법이 적어도 2002년 대선에서는 통할 리가 만무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사고에 젖어 있다. ‘좌파 정권 10년을 종식하자’. 더 적절하고 효과적인 다른 말들이 많은데, 이제 제발 ‘좌파’라는 말은 쓰지 말자. 노무현 정권이 전혀 좌파가 아니기도 하고, 그런 식의 규정은 오히려 노무현 정권에게 면죄부를 주고 한나라당이 낡은 세력으로 매도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많은 개혁과 중도 지향의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