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3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초기이행조치 합의서' 채택에 이어 위싱턴에서 3월 5일과 6일 양일 동안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2·13 합의를 계기로 북미관계가 대결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향해 순항할 것인지는 아직 의문부호를 붙일 수밖에 없다.

    2·13 합의는 영변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과 5만 톤 상당의 에너지 지원이라는 초기조치 이외에는 어떠한 명확한 합의도 없는 것으로서 상황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압박에 몰리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전술적 타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해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이며 북한이 핵 포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문제로서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한 두 가지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결국 북한의 모든 핵시설과 핵 프로그램의 제거라는 기술적 문제와 북미관계의 정상화라는 정치적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기술적 문제 차원에서 2·13 합의는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즉 초기조치를 제외한 모든 합의가 '원칙적 합의'가 아니면 해석상의 차이가 수반되는 합의들로서 이로 인해 순조로운 이행이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단계 의무인 이미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 및 봉인한다고 하더라도 2단계 의무인 불능화 및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과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불투명하다.

    이들 문제는 대상과 절차가 아주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의 진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결국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정한 고비는 2·13 합의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영변 핵시설 이외에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시설과 핵 프로그램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문제 차원에서 북미관계의 정상화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산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북한은 핵물질 생산시설은 포기하더라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과 핵무기는 대남 전략상 절대 포기하기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1993년∼1994년 핵위기 당시에도 과거 핵활동의 결과로 확보했던 소량의 핵물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미국은 현재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비핵화 실현,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로 이어지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반면 북한은 역으로 비핵화에 앞서 평화협정과 수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평화협정에 참여하는 국가도 남북한과 미국만을 거론하고 있다.

    이상의 두 가지 문제가 보여주듯이 미국이나 북한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진전의 관건은 북한의 결단과 조치에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대남 전략적 수단이자 체제 유지 수단으로 여기는 북한이 핵 포기라는 결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피터 브룩스 미국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해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지 의도를 시험해보기 위한 틀을 짠 것"이라면서 "북한에게 핵은 협상용 카드일 뿐 아니라 체제 유지 수단이기 때문에 핵무기까지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2006. 3. 8, 조선일보) 점과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2월 18일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외교적 노력이 소진되면 군사조치를 통해 북한의 핵시설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미국이 협상으로 전환했다고 해서 이를 대북 양보론이나 온건론으로 판단하는 것이 무리임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성의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13 합의대로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을 자초하는 상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북미대화는 시작되었지만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북미대화는 바람직한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이다. 이제까지 논의된 것은 언어(言語)의 성찬(盛饌)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재 북미대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사태를 낙관적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단계별로 차근차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세이다.

    상황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서두르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현재 미국이 견지하고 있는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수교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일관되게 견지하도록 해야 한다. 북미관계의 진전을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12월 대선을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집착하여 무리하게 앞서 나가는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은커녕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우(愚)를 범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