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란에 이 신문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가 쓴 '성매매 특별법 예정된 실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며칠 전 일이다. 편집국 동료들에게 "성매매 특별법의 문제점을 칼럼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여성전문기자는 걱정을 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다른 기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거 안 쓰는 게 좋을거야."

    집에 가서 물어봤다. "오늘 신문 봤지? 강남에 있는 안마시술소 세 군데가 2년 동안 영업하면서 400억을 벌었대. 이용자가 20만 명이었다는군. 성매매 특별법 때문에 상황이 더 복잡해졌어. 그걸 지적하려는데 어떨까."

    아내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런 데 가는 남자들이 문제지 뭘…. 참 근데 그걸 왜 써. 혹시 당신도 거길 갔다는 사람 명단에 있는 거 아냐?" 그 다음 대화는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밝히지 않겠다. 아무튼 그날 밤 늦게까지 아내와 상당한 토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성매매 특별법은 일종의 탈레반식 입법이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을 때 기막힌 일이 많았다. 남자 어른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으면 태형에 처하고, 여자 아이들은 교육을 받거나 맨얼굴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등이다. 그게 알라의 뜻이고 정의라는데 누가 감히 저항을 하겠는가.

    성매매 특별법은 2004년 9월부터 시행됐다. 노무현 정부의 첫 여성부 장관인 지은희씨가 주도했다. 국회 공청회를 취재했던 편집국 동료는 "국회의원들이 입도 벙긋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해줬다. 왜냐고? "문제가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당신은 매춘에 찬성해? 딸도 안 키워?'라고 몰릴 판인데 어떻게 해." 그 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할 때 현장에 있었던 인사로부터 훗날 들은 얘기다. 참 무책임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초반기였다. 무슨 '여성'이니 '단체'니 '연대'니 하는 이름이 붙은 단체와 조직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던 때였다. 따지고 보면 언론도 그들의 명분과 서슬에 눌려 입을 다물었으니 할 말도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그 법의 취지에 따라, 성매매는 반드시 뿌리 뽑는다는 그 높은 이상에 근거해 이른바 집창촌은 된서리를 맞았다. "하수처리장을 없애면 결국 강물 전체가 오염된다"는 지적도 나오긴 했다. 하지만 아주 조그맣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는 '풍선 효과'란 단어도 등장했지만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2년6개월이 흘렀다. 이제 되돌아보자. 어떻게 됐나?

    회사 근처에서 동료들과 술 한잔 하고 있으면 짧은 치마 차림의 아가씨들이 수시로 찾아와 "한번 들러줘요"라며 명함을 돌린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여기저기서 호객꾼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동네방네에 안마시술소, 스포츠 마사지, 대딸방…. 아무튼 정신이 없다. 집창촌에서 나온 업주와 여성들이 아예 주택가로 들어가 매매춘을 한다는 보도도 심심찮다. 어찌된 일인지 성병 환자는 늘어난다고 한다.

    자, 그러니 이제는 사실을 말하자. 성매매 특별법은 실패했다. 그것도 아주 기념비적으로. 이젠 사방으로 침투해 들어간 매춘산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난다. 대체 누가 이걸 책임져야 하는가.

    청교도식 높은 이상으로 모든 미국인은 술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마시지도 못하며 수출입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1919년의 금주법이 떠오른다. 그 법 때문에 밀주가 성행하면서 마피아가 탄생했다. 미국 역사에서 '광란의 1920년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세상의 큰 비극들은 상당수가 확신범에 의해 저질러진다. '나는 옳고 나를 반대하는 자들은 나쁜 X들'이라는 그릇된 신념은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나는 옳다"는 인사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확신이 만들어낸 법도 적지 않았다.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