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을 남겨둔 대선에서 10년이나 집권한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한 한나라당 대선주자 빅3 중 이명박의 지지율이 검증 안 된 대세론적 기현상을 보이고 있어 한나라당의 집권은 지극히 예측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선의 운명은 항상 급작스러운 변수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어왔던 것이 통상 예다. 실제로 이명박에 관하여 시중에 흘러 다니는 소문들이 명백한 후보검증을 통하여 해소된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물론 한나라당 후보들의 검증작업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한나라당의 반응은 별무인 것 같다.

    노무현 정권의 인기하락으로 인하여 반사이익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고 있는 예비후보가 바로 한나라당의 이명박이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하자 반사적으로 이득을 보는 측이 과거 고(故)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발탁되어 젊은 나이에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던 이명박이 갑자기 경제전문가로 인식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한마디로 운이 좋다면 운이 좋고, 운이 나쁘다면 운이 나쁠 수 있는 소인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 보건데 15대 대선 1년 전인 1996년 12월에는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급작스러운 밀실야합을 통하여 김영삼 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서 DJP공조론이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그 결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기하여 볼 것은 2001년 12월 당시 지지율을 살펴볼 때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을 2배 이상 앞섬으로써 대세론적 후보로 급부상 했고, 그의 당선은 필연적이라는 생각들이 국민들의 뇌리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은 반드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심지어는 반대당 후보의 지지자들조차도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운명적인 부분을 일견 받아들이고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2년 전에 대통령 선호도로서 제 1위를 차지했던 이회창 후보가 1%대를 오르내렸던 노무현 후보에게 예상을 뒤엎고 참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시사점이 있다.

    이명박의 압도적인 대세론 굳히기 현상은 결국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대명제를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인자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명박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앞서도 얘기했지만 1960년대인 젊은 나이에 고(故) 정주영 현대회장에게 픽업되어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고, 서울시장이 된 후 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개편이력이다. 그러나 청계천과 교통체계개편이 대통령이 되는 길목의 필요충분조건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하여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앞으로 청계천 복원에 대한 문제가 틀림없이 제기될 것이며, 근본적인 교통체계의 혁신적 개편이 아닌 현상론적 교통체계개편에 대한 문제도 제기될 수가 있다.

    이명박이 산업화시대에 건설역군으로서 행한 추진력은 한마디로 고(故) 정주영 회장의 배경을 따라서 발마추어나간 개발독재시대의 CEO개념이다. 개발독재시대의 CEO개념과 현대사회의 CEO개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개발독재산업화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후자인 현대사회CEO 개념은 완벽한 자유 시장경제에 의한 글로벌 CEO개념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범여권의 정계개편이 일어나게 되면 이명박의 버블이 빠질 지도 모르고, 아울러 이명박의 개인적인 병역문제, 재산형성 문제 등 그의 사적인 도덕성 검증작업이 시작되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급변하는 민심 아래 최고의 절정에 이르른 지지율이 예상외의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추정을 배제할 수 없다.

    대선의 이슈는 의외의 변수로서 돌출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비록 군(軍) 의무복무를 정당한 사유로 인하여 이행을 못했다손 치더라도, 국민의 마인드가 ‘국방부장관이나 국군 통수권자가 되려면 최소한 군(軍) 생활 3년 이상은 복무했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이슈가 제기된다면 그것도 커다란 민심의 폭풍의 핵이 될 수도 있다.

    대선의 흐름은 대선정서에 따르는 것이고, 감성적인 문제에 많은 의존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반면에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는 전천후의 논리적 상황은 그리 흔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2002년에 제기되었던 김대업 관련 네거티브 선거 전략은 그 사실 내용의 진실성 여부가 당시 문제 해결의 키가 될 수 없었다. 오로지 감성적인 김대중의 선거 전략이 논리적 사고를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또한 이회창 후보의 아들은 명백하게 체중미달로 인하여 합법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합리적 정당성을 분명히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이상이나 북괴침략으로 인한 남북분단의 산물로 생성되어 있는 국민의 국가 안보관 그래서 대한민국 사나이라면 스스로 나라를 지켜야할 의무가 대한민국 사나이의 두 어께에 놓여있다는 국민들의 성스러운 국가안보에 대한 애국심과 가치관이 두 아들이 군(軍)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되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될 유권자의 명백한 국가관이다.

    그 시대, 시대에, 적합한 가치관이 불쑥 대선변수로 나타나 커다란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지칠 줄 모르고, 꺼질 줄 모르는 이명박 지지율의 수직상승은 어떠한 변수로 인하여 수직하강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대세론에 잠복된 돌출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재오와 같은 좌파운동권이 지니는 탁월한 조직 응집능력으로 인하여 유사성향의 의원들이 이명박 캠프의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 다니고 있다. 이명박의 강점은 선거 전략의 중심에 이재오라는 보이지 않는 조직의 명수를 둠으로써 가장 먼저 조직적이고 활성화된 캠프를 형성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적절한 언론 플레이와 언론의 호의적 보도가 대세론을 굳히는데 기여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사실상 이명박은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에 직격탄을 시의 적절하게 날린 적이 결코 없다. 항상 시간이 흐른 후 가벼운 논평정도가 고작이었다. 언젠가는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이회창보다 인간적”이라고 쑥스러운 말도 서슴지 않은 적도 있고, 그래서 노 정권으로부터 화살을 받지 않으려는 예비 장벽을 치고 있다는 짙은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나, 북한의 핵실험 발표 때도 즉각 반응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은 대권을 의식한 눈치 보기가 아니냐 라는 의구심도 세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지금 이명박의 대세론은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대명제를 추락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시간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이명박! 하고 연호를 외쳐대는 대세론 굳히기 작업은 곧바로 한나라당의 분열과 우파의 분열로 이어져 좌파정권의 또 다른 생성(生成)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명박의 대세론 굳히기와 줄 세우기는 정권교체라는 절체 절명한 이 시대의 명제에 가장 큰 도전이며, 한나라당의 예상치 않은 비극을 몰아올 수도 있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