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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연장, 부동산 정책,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주요 정책을 놓고 극으로까지 치달았던 열린우리당 내 노선갈등이 일단 최대 위기상황은 넘겼다. 그러나 정면출동을 피하기 위한 ‘시간벌기’일 뿐, 이들 정책을 둘러싼 당내 노선갈등은 여전한 모습이다. 당내에선 당장 “이렇게밖에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가까스로 고비고비를 넘기고 있는 모습인데, ‘이미 당 분열은 시작됐다’는 게 당내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들 정책을 둘러싼 당내 노선갈등의 폭발은 ‘시간문제’라는 설명이다.
열린당은 23일 오전 120여명의 소속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 문제들에 대한 당내 의견 마련을 위해 정책의원총회를 열었다. 격한 논쟁과 더불어 당내 강경․개혁파와 실용파간의 갈등폭발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차분하고 침착한 분위기였다. 특히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철군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기로 하는데, 참석 의원 다수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당론으로 확정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당내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에 일임하고 특위는 12월 9일까지 잠정보고서를 작성해 의총에서 보고하고 최종적으로는 12월말까지 부동산대책과 관련한 보고서를 만들어 원내토론과 당정협의 과정을 거쳐나가기로 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문제는 보완책을 마련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날 의총에선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의 파병연장 여부와 관련해 즉각 철군이냐 단계적 철군이냐 등을 놓고 참석자들간 적잖은 논쟁이 있었지만 대체로 차분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은 “소속 의원들의 현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면서 “아마 표결을 통해 무난하게 처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한다”면서 의총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날 의총이 논란이 일고 있는 이들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논의한다’식의 미봉책 수준이어서 당내 강경․개혁파와 실용파간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잠복해 있는 모습이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노선대결의 시작’이라는 당 안팎의 설명이다. 이들 정책을 도화선으로 한 당내 노선갈등의 폭발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라크파병 연장 문제와 관련, 철군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것, 이 자체만을 당론으로 정한 것이지 정부의 파병 연장안에 대한 찬반 입장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때문에 정부가 철군계획서와 함께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그 때 가서 정부의 파병연장안에 대한 찬반은 따로 의총을 열어 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즉각철군이냐 단계적 철군이냐 하는 문제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내 강경․개혁파와 강봉균 당 정책위의장으로 대변되는 당 정책위원회간의 이들 정책 문제 등을 놓고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언사도 나왔었던 만큼 이미 봉합의 수준은 넘어섰다는게 당 안팎의 설명이다. 지난 22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선 당내 강경․개혁진영의 “정책 혼선으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며 정책위를 공개비판한데 대해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길래 어려운 시기에 기자회견까지 해가면서 정책위를 비판하느냐"고 하자, 이목희 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정책위의장이) 강령에 맞지 않는걸 발표하지 않았느냐"고 맞받아치면서 설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근 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책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분히 청와대를 염두에 둔, ‘청와대와 대립각 세우기’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특히 이날 당론으로 채택한 정부에 철군계획서 요구 방침은 사실상 정부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설명이다.
한 의원은 “철군계획서 요구는 정부를 압박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이나 철군계획서 관련 당정협의시 당이 주도권을 쥐고 나갈 수가 있다”면서 사실상 당정관계의 주도권 문제까지 염두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방법이 없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마감시한인 오는 29일에도 해결이 안 되면 또다시 처리를 야당과 합의해 연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렇게 계속 미룰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전효숙 사태건에 대한 청와대의 결단을 주문하면서 압박에 나선 모습이다.
정책 현안을 둘러싼 당내 강경․개혁파와 실용파간의 갈등에 이은 당과 청와대의 ‘각 세우기’, 그리고 여기에 정계개편 논의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면서 여당내 분열이 초읽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