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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차기 대권주자 중 한명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직까지 떼지 못한 꼬리표 중 하나가 바로 ‘콘텐츠 부족’이다. 경쟁자인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이 대선 공약 제1호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내놓은 것에 비해 박 전 대표는 대표상품이 없다는 점이 최근 지지율 격차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서두르지 않겠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설익은 공약으로 혼란을 주기 보다는 내실 있게 준비해서 발표하겠다” 상징적인 공약이 없다는 비판을 이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박 전 대표다. 박 전 대표는 오히려 ‘한반도 대운하’ ‘민심대장정’ 등 이슈를 던져 대는 당내 경쟁자 이 전 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신중함’을 선택한 듯하다. 이는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 중인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가벼움’과도 차별화된다.
박 전 대표는 9일 KBS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지금은) 대선후보 공약을 내놓은 단계는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국가 재창조에 가장 중요한 요체는 ‘무엇(What)’과 ‘어떻게(How)’다. 꿈만 그럴 듯하고 실천력이 없으면 백일몽일 뿐이다”고 한 이 전 시장의 발언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
“나라를 이끌 지도자는 신중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선진국이 되려면 현 정부가 실패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기업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거나 수십조원을 쏟아 붓는 개발 사업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며 “국정운영 시스템이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나는 대한민국 선진화라는 국가발전 비전을 강조해 왔다. 이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경제·외교·안보·교육·부동산·과학기술 등 국정운영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라며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작은 정부를 만들어서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이고 민간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겠다. 그렇게 하면 큰 시장이 되는데 그렇게 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동안 주장해 왔던 국가발전 정책을 계속 간직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 그 정책을 지킬 것이고 우리가 집권했을 때도 일관되게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신중함’을 강조하며 이 전 시장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에 비해 대권행보가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라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 지도자는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모든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신중하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명박 ‘박정희 이미지’ 선점 시도에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대통령 한명 없다고 하더니” 일침
‘박정희 리더십’을 강조하고 한반도 대운하를 제2경부고속도로에 비유하는 등 ‘박정희 이미지’ 선점을 위한 이 전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아버지 이미지와 이 전 시장이 어떻게 비교되는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일관되게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대통령이 한명도 없다고 한다고 해 놓고 이렇게 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에 대해서도 “내가 압도적으로 앞설 때도 있었다.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다”며 “아직 대선후보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보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기국회가 열려 있기 때문에 국회 활동에 주력,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 활동에 충실했다. 그렇게 노력해 나가면 국민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줄 것이다”고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열린당 후보 확실해지면 이명박 지지 빠진다’ 지지율 회복에 자신
그는 오히려 “열린우리당 후보가 확실하게 나타나면 (이 전 시장을 지지하고 있는) 열린당 지지자들은 그쪽(열린당 후보)을 지지할 가능성이 많다”며 지지율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7일 인터넷신문 기자간담회에서 “열린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전 시장을 지지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 분야에도 목소리를 키웠다. 박 전 대표는 정부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고 비판하면서 “대규모 국책 사업보다 국정운영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고쳐야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이 규제위주 반(反)시장 정책이 많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근본적인 진단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정책도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규제와 무거운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된 이상 신도시·강북 개발 뿐 아니라 재건축·재개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며 “단순히 공급확대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문화·복지 같은 주거환경도 개선해 강남보다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야 집값이 안정된다”고 말했다.
호남민심을 잡으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박 전 대표는 이날 호남지역민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직접 사과 요구에 대해 “아버지 시대에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본의아니게 피해 입은 분들에게 딸로서 여러 차례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고 지금도 변함없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그런 진심을 말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