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최근 정가에선 여러 말들이 쏟아진다. 경쟁자인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의 지지율은 상승하는 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주춤하기 때문이다. 1%P 안팎이던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추석연휴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오차범위 밖으로 벌어졌다. 특히 북핵이 박 전 대표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북핵사태 이후 뒤쳐지자 여론조사기관과 언론들은 여러 분석을 내놨다. 이들은 원인으로 박 전 대표의 ▲위기관리능력 부족 ▲리더십 부족 ▲국가지도자로서의 콘텐츠 부족 ▲여성이 갖는 한계 등을 꼽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이런 분석에 억울하다고 한다. 특히 대표재임시절 부터 '안보'를 강조해오던 박 전 대표에게 북핵사태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거론되는 여야 차기 대선주자 중 가장 '보수적'이란 평을 받아왔고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에 정치생명까지 걸었던 박 전 대표이기 때문이다. 

    28일 뉴데일리는 박 전 대표의 이정현 공보특보를 찾았다. 이 특보는 박 전 대표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인물이다. 27개월, 총 816일의 대표 재임 기간 동안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기도 하다. 

    이 특보는 각종 여론조사와 언론을 통해 국민들 뇌리 속에 투영된 '대선주자 박근혜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잘못됐고 왜곡된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리더십 부족'과 '위기관리능력부족'이란 지적에 대해선 "납득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이날 이 특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대표재임시절 부터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두 가지 지적을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문제점이 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특보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1.리더십이 부족하다?]
    "7%의 존립 위태롭던 정당을 가장 집권가능성 높은 당으로 만들었다"

    뉴데일리 =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는 박 전 대표가 대표재임 시절 몇몇 측근들에 의존해 당을 운영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높다.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비판 역시 이런 이유에서 제기됐는데.

    이 특보 =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를 맡았을 당시 한나라당 지지율은 7%에 아성이라고 하던 경남 창원에서조차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이 3위였다. 존립이 위태로웠고 풍전등화였다. 여당은 과반수가 넘어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단 한 명도 당을 이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보선마다 이겨 의원 수가 늘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다른 당들은 다 없어질 위기다. 한나라당만 건재하다. 당을 살린 박 전 대표가 리더십이 없는 것인가. 박 전 대표에게 선거마다 지고 현안마다 밀리고 없어질 위기에 처한 그 당 지도자들이 리더십이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당원들에게 백전백승의 기쁨을 안겨준 엄연한 실적이 리더십이 아니고 무엇이 리더십인가. 박 전 대표는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 대표를 맡으면서 '열 아이 거두어 먹이고 입히고 학교까지 다 보내는 홀어미의 각오와 인내로 당을 반드시 살리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훌륭히 지켰다.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니고 온갖 음해와 비난과 비협조 속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들이다. 단호하고 결연한 태도로 결단해 왔고 때로는 대통령과 맞짱 회담도 마다 않고, 때로는 여당 대표와 손가락 걸고 상생협약도 하면서 얻어낸 성과들이고 이런 것이 박 전 대표 리더십의 산물이다. 

    스킨십 역시 박 전 대표 이상의 지도자가 있었는지 한번 말해 봐라. 얼마나 많은 국민과 악수 하고, 얼마나 많은 행사에서 웃고과 박수를 쳤으며, 얼마나 많은 네티즌들의 방문을 받았는가. 누구와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의원들은 스킨십을 투정하기 이전에 당을 살린 박 전 대표를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밀어 줬어야 옳았다. 측근이라고 하는데 박 전 대표는 계보정치를 하지 않았다. 자기 사람을 만들지도 않았다. 당직인선에서 수도권 비주류 소장파를 많이 발탁했다며 탕평인사라고 극찬한 사람도 많다.

    [2.이미지만 있고 콘텐츠는 없다?]
    "당과 나라 위해 자신 버리는 헌신과 희생정신이 박근혜 콘텐츠"

    뉴데일리 = 박 전 대표를 두고 연예인 같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성이 뛰어나다는 얘기지만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박정희 육영수의 딸'이란 점이 이런 대중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콘텐츠를 채워야 국가지도자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지적도 여기서 비롯됐는데.

    이 특보 = 전 세계 어느 지도자도 모든 것을 다 알만큼 콘텐츠가 꽉 찬 지도자는 없다. 루스벨트가 경제전문가였는가 토목업자였는가. 대처가 노동전문가였는가 외교전문가였는가. 링컨이 노예전문가였는가 인권시민운동가였는가. 북핵위기를 극복하는 데 꼭 핵물리학자여야 하는가.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꼭 장사나 사업을 해 본 사람이어야 하는가. 교육을 바로 세우는 데 꼭 선생님 출신이어야 하는가. 절대 아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아이디어는 해당 분야 훌륭한 관료를 등용하면 된다. 추진력은 지도자가 의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올바른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느냐와 얼마만큼 애국심과 국민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돼 있느냐다. 이것이 콘텐츠다.

    박 전 대표의 콘텐츠는 당과 나라를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는 헌신과 희생 정신이다. 붕대를 감고 반창고를 붙이고 당과 동지들을 위해 열정을 다 쏟아 선거지원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전방은요?'라고 물었고 피습당하고 나서도 첫 당무 보고를 받으면서 '대전은요?'라고 물었다.

    이러한 강한 책임감이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콘텐츠는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념이다. 수도이전도 그랬고 탄핵도 그랬고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도 국가간의 약속이라면서 시류 편승을 거부하고 소신껏 약속을 이행했다. 박 전 대표의 콘텐츠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용기다. 나서야 할 곳에서 몸사리지 않았고 인생 고비마다 심약하지도 우유부단하지도 않았다. 단호한 투지로 항상 난국을 정면돌파해 나갔다. 탄핵철회 요구, 수도이전, 국가정체성 파괴,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날치기, 과거사 진상조사 때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용기있게 정도를 걸었다.

    지켜야 할 가치는 목숨을 걸고 사수하는 것도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나라 선진화에 대한 신앙 같은 신념도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야당 외교로서는 최고 수준인 각국 지도자들과의 친분외교도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이데올로기 보다 국익을 위해 과감하게 유연성을 발휘하는 철저하게 현실에 맞게 모든 변화를 수용하는 것도 박 전 대표의 뛰어난 콘텐츠다. 올바른 이념을 가진 지도자가 이끌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도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비결은 진정한 화합의 시대를 열어서 모두 자신감을 갖고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도 박 전 대표의 콘텐츠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콘텐츠들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 지도자의 소양이라고 본다.

    [3.이명박의 '청계천 복원' 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나폴레옹도 (선거에서 박근혜가 한것만큼) 이기지는 못 했을 것이다"

    뉴데일리 =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버스중앙차로 개편처럼 특별히 국민들에게 내세울 만한 결과물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않다. 이 전 시장의 추진력이 결국 국민들의 뇌리엔 '리더십'으로 자리잡았는데 박 전 대표는 이처럼 국민들에게 내세울 결과물이 없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과 현대건설을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서게 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이명박 신화'라고 하는데 박 전 대표는.

    이 특보 = 박 전 대표는 12가지의 한나라당 기적을 만들었다. 첫째, 당을 살렸다. 탄핵직후 한나라당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없어질 위기였다. 2년3개월만에 확고부동한 수권정당으로 변화시켰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나머지 즉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자민련은 지금 사라질 위기이거나 사라졌다.

    둘째. 당 지지율 최고를 만들었다. 7%이던 지지율은 5·31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 53.8%가 됐다. 이것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생긴 이후 최고의 득표율이다. 셋째, 선거마다 이겼다. 최악의 경우 2석, 잘해야 50석도 어렵다던 4·15총선에서 121석을 얻어냈고 6·5 재보선은 '16 : 3', 4·30 재보선은 '23 : 0', 10·26 재보선은 '4 :0', 5·31 지방선거에선 수도권 단체장 '69 : 0'의 승리를 거뒀다. 나폴레옹도 이렇게 이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넷째, 여당 당의장 8명을 갈아치웠다. 당내 최고의 혁신주도세력과 민주투사임을 자처하는 노무현 정권 최고의 실세 8명을 여당 의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선거 뿐만 아니라 정책 전략 이미지 조직관리는 물론, 당의 존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결에서 그들은 졌고 박 전 대표는 이겼다. 박 전 대표는 씨름판으로 말하면 '천하장사'라고 불러야 옳다.

    다섯째, 한나라당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중앙당이 해먹은 것이 없으니 부정부패당도 아니다. 꼴통짓 한 것이 없으니 수구꼴통당이란 비난은 옳지 않다. 수도권과 충청, 강원을 이겼으니 영남당도 아니다. 당내 민주화가 타당의 추종을 불허하니 반개혁당도 아니다. 한나라당 행사에 군중이 몰려들었고 미, 중, 일, 독 지도자를 다 만나는 야당 외교에 새 장을 썼다.

    여섯째, 범보수세력을 결집시켰다. 이 정권이 보안법 폐지, 사학법 날치기, 강정구 비호, 간첩 민주화 인사 미화를 시킬 때 국가정체성 수호를 위해 온 몸을 던졌고 그 결과 보수세력이 결집했고 적극적인 논리를 전개해 마침내 행동화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매미의 작은 소리로 시작해 온 산의 매미가 다 울게 된 것이다.

    일곱째, 디지털 혁명을 가져왔다. 개인미니홈피 방문객이 500만명을 넘었다. 156명의 국회의원 홈피 방문자 보다 많은 숫자다. 한나라당 홈피가 거의 모든 기록에서 타 정당을 앞섰다. 우호적 네티즌들이 많아 노사모에게 밀리기는커녕 압도하고 있다. 여덟째, 새로운 야당상을 만들었다. 3김과 다른 야당상을 만들었다. 야당이 상생정치, 민생정치를 먼저 주도했고 극단적인 대여투쟁 대신 대안을 갖고 정책대결을 벌였다. 4대 입법, 수도이전 등 여당이 정략적으로 추진하려던 법안과 정책을 대안으로 승부해 전부 무력화 시켰다.

    아홉째, 공천혁명을 했다. 비례대표 공천부터 시작해 모든 재보궐선거 공천은 그 때 마다 구성되는 공천심사위원회에 전권을 넘겼다. 5·31 지방선거는 사상 처음으로 시도 당에 공천권을 이양했고 혁명적인 정치실험이었으며 성공적이었다. 열 번째, 계보정치를 한나라당 사전에서 지워버렸다. 줄 세우기 정치, 계보정치가 사라졌고 '제왕적 대표'라는 말이 적어도 한나라당에서는 없어졌다. 공천권도 전부 이양하고 디지털 위원장, 장애인 위원장, 청년 여성 차세대 위원장까지 전부 선출한다. 재정권도 이양했다. 대표 비서실에 특보 한 명 없었다. 철저히 공조직 위주였다.

    열 한 번째, 신뢰받는 당을 만들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정치를 했고 공약 이행백서를 발행했다. 수도이전은 우리가 다수당 때 처리해준 법이라면서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대안을 제시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당내에서조차 탄핵철회를 요구했지만 표결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 본 후 국민께 정중하게 사과했다.

    열 두 번째, 국민통합의 정치를 했다. 호남 민심이 변화하고 수도권 호남 출신들이 상당수 한나라당 후보를 찍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후보도 못내던 호남에서 군수 보궐선거까지 전원 후보를 냈다. 대표가 되고 첫 방문지가 호남이었고 처음으로 의원연찬회를 호남에서 했으며 의원 전원이 5·18 묘역을 방문했다. 재해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갔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아버지 시절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했고 홍남순 변호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세력이 뭉쳐 선진화를 이룩하자고 호소했다.

    [4.경선제도 고집은 816일간 대표시절 쌓인 당 기득권에 대한 고집?]
    현 경선방식 만들 때 "소장파가 혁신위 안 한자도 고쳐선 안된다 했다"

    뉴데일리 =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반대하면서 박 전 대표는 현 대선후보선출방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상대적으로 당 장악력이 큰 박 전 대표가 현 경선방식으로는 유리하기 때문에 이를 고집하는 것이고 상대진영에선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까지 하고 있다.

    이 특보 = 요즘은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자는 말이 쏙 들어갔다. 지지율이 오르면 조용하고 지지율이 밀리면 고치자는 경선규정은 룰이 아니다. 박 전 대표는 '고치자 고치지말자', '유리하다 불리하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이고 지금의 규정을 만들 때 박 전 대표는 단 한 자도 주문하지 않았고 의견 개진도 하지 않았다. 혁신위원회는 9개월 동안 57차례의 회의와 의원 연찬회, 당직자 회의를 거쳐 현재 안을 확정했다. 혁신위 안을 한자도 고쳐서는 안된다고 소장파들이 말했다. 이들은 손학규 지사님, 이명박 시장님을 찾아가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만들 때는 당원들의 뜻을 물어 만들고 고칠 때는 몇 사람 맘대로 고치는 것은 도대체 어느 집단의 사고방식인가. 만들 때처럼 당원의 뜻을 묻는 절차를 밟아 결정할 문제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박 전 대표에 대해 '제왕적 총재 연상' 운운하는 발언을 질문한 것 같은데 유감이다.

    모든 당내 의사를 최고위원회, 의원총회, 운영위원회, 당직자 회의에서 결정하는 제왕적 총재도 다 있는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대의원 표 확보에 절대 도움이 될 것임에도 공천권을 전부 이양해 버리는 제왕적 총재도 있는가. 당 혁신위안을 당시에는 비주류 출신으로 알려진 분에게 맡기는 제왕적 총재도 있는가. 과거에 1대 9였던 크로스보팅제를 자유투표와 당론 투표 비율이 9대 1이 될 정도로 바꾼 것도 제왕적 총재의 행태인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해야 한다.

    [5.박근혜 선거승리를 국가지도자로서 능력으로 평가하긴 힘들다?]
    "박근혜 아니었다면 이런 큰 선거승리는 누구도 하지 못했다"

    뉴데일리 = 선거마다 승리했다. 소속 의원들도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은 여권에 대한 반사이익이라고 한다. 때문에 반박진영에선 '누가 대표였다 해도 여당에 승리했을 것'이란 반론을 펼치는데.

    이 특보 =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배은망덕이고 못난 사람들의 뒤통수 때리기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총선 전에는 왜 당을 위기에 빠뜨렸는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왜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배했는가. 그 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 있었는가. 필승 대표는 있어도 필패 당원은 없는 법이다. 싸울 때마다 반드시 지게 돼 있는 당원은 없다. 지도자가 지혜와 열정으로 당을 잘 이끌면 승리하고 지도자가 잘못 이끌면 패하는 것이다.

    다수당 때 수도이전법을 통과 시켜 줘 놓고 선거끝나고 책임 안지고 무조건 반대할 때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대안을 내놓았고 무리없이 자민련을 끌어안았기 때문에 아산 보궐선거를 이겼고 지방선거 때 충청권에서 대승한 것이다. 끊임없이 호남에 진심으로 다가갔기 때문에 수도권 호남출신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관악과 성남 선거를 이긴 것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무서운 피습을 당하고도 5·31 지방선거때 박 전 대표는 가장 먼저 접전지역인 대전시장 선거를 걱정했다. 병상에서도 '대전은요'라고 물은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의 책임감이 25% 이상 차이 나던 대전 시장 선거를 역전시킨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핵심 측근들인 이강철, 이상수 후보에 대한 여권의 지원은 대단했다. 가급적 지방에서 숙박을 잘 안 하는 분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보궐선거지역 민가에서 두 번씩이나 잠을 자면서 지원해 영천 선거를 이겼다. 누가 해도 이기는 선거는 아니었다. 아무리 선거지원을 열심히 해도 한나라당이 변하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었다면 그렇게 큰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6.여성 국가지도자 시기상조론?]
    "정동영이 독일서 70일 있으면서도 못 만난 메르켈을 평의원 자격으로 만났다"

    뉴데일리 = 박 전 대표가 여자라는 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핵 파문에도 박 전 대표가 여성이란 점 때문에 상당히 큰 불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 높다. 여전히 국가지도자로서 '아직 여성은…' 이란 생각이 국민들 뇌리속에 자리잡고 있고 특히 박 전 대표의 지지기반이라할 보수층에서 이런 인식이 더 강하다.

    이 특보 = 근육이 많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지도자인 시대가 아니다. 독선적이고 밀어붙이는 리더십은 만리장성을 쌓을 때나 필요했던 지도자의 덕목이다. 국가 정체성이 흔들릴 때, 그래서 박 전 대표가 숨쉬는 공기처럼 소중한 우리 국가가치를 수호하고자 그토록 피눈물나게 호소하고 외칠 때 '여성 타령'하는 그들은 어디 있었는지 묻고싶다.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들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항상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영국의 대처, 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 인도의 간디, 독일의 메르켈도 모두가 위기에 처한 나라와 당을 구해낸 여성 지도자들이다. 박 전 대표는 개혁을 했고 정치권이 정계개편에 요동치지만 한나라당은 무풍지대다.

    국가 최고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수호를 위해 온 몸을 던졌고 박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시절 6년간 퍼스트레이디로서 집권당 입장에서 국정운영전반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또 대한민국이 가장 불안하던 시절 제1야당 대표로서 2년 3개월간 국정을 공동운영했다.

    국회의원 3선 하는 동안 국방위 외통위 산자위 과기정위 행자위에서 활동했고 제1당의 부총재를 역임했다. 미국에 가서는 부통령 이하 조야 인사, 일본에서는 전현직 수상을 포함한 정재계 행정부인사, 중국에 가서도 호금도 주석을 포함한 실세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독일에 가서는 여당 당의장을 두 번이나 한 정동영 전 장관이 70여일 머무르면서도 못만난 메르켈 총리를 평의원 자격으로 만나 정부개혁을 논의했다.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 등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친분외교를 하고 있고 북한의 김정일과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논의한 바 있다. 야당 지도자임에도 외교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가 일본에서 여자 수상이 나오는 것 보다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빠를 것 같다고 한 것은 안목있는 시샘이다. 미국과 일본이 민주주의는 우리보다 먼저 도입했지만 여성 최고 지도자는 한국이 먼저 배출한다면 그 또한 자랑거리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