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란에 이 신문 최범 편집국 부국장이 쓴 '정권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옛 소련 붕괴 직후 떠돌던 유머에 이런 게 있다. 한 서방사람이 소련 학자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소련 학자는 주저없이 “자본주의로 가는 가장 먼 길입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자본주의로 갈 것을 70여년간 공산주의를 꿰차고 있었으니 멀어도 아주 먼길이었던 게 분명하다. 러시아 학자의 대답에는 비효율, 비능률, 비경제, 비민주, 비과학 등 공산주의 체제가 갖는 온갖 불합리한 면들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이라는 측면도 담겨 있다. 합리적이거나 생산적이지 못한 갖힌 틀 속에서의 70년은 700년, 7000년에 버금갈 정도로 지루했을 것이다.

    어느 조직, 어느 정권, 어느 이념, 어느 사상 등 인간의 사고나 행동, 조직 영역에는 분명 비효율·부정적인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같은 부조리를 얼마나 빨리 깨닫고 개선해 더욱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1400여년 유지해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엎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아집을 꺾으면 전체의 삶이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유도해 낼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좌파 성향의 현 정권이 각종 현안에 대처하는 능력은 미덥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적이기까지 하다. 지나치게 자기 합리화에 집착하는 편협된 경향은 국가와 국민은 물론 자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며 다분히 소모적일 뿐이다.

    먼저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를 보자. 이 정권은 지나칠 정도의 좌파적 접근으로 작통권 환수 시기에만 집착하면서 오히려 모든 이익을 미국측에 자진 헌납하는 우매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한·미 관계와 관련된 협상에서 자주나 자존심에 지나치게 연연해 시기만 당기려다 보면 안보를 잃고 동맹도 약화시키며, 비용만 증가시키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미국이 한국의 요구대로 해주는 척하면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다 챙기는 실리적인 모습을 보인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이 정권의 입장에는 단순히 남이 반대하는 게 싫어서, 또는 코드쪽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자주 때문에 하는 식의 ‘억지 자기 합리화’ 요소가 어느 정도 내재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서도 이 정권의 태도는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중국과의 갈등을 우려해 대응을 안했다거나, 역사 왜곡문제 등을 다룰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문제를 놓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동북아재단 설립 문제를 놓고는 외교부와 교육부간 관할 설전만 벌였다니, 작통권 문제를 놓고 미국측에는 강하게 요구한 자주가 무색할 지경이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건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코드를 맞춘 인사를 택해 무리하게 임기 늘리기까지 하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절차상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전 후보자의 재판관직 사퇴를 대법원·헌재와 사전 조율하면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그외 남북 문제와 부동산 정책, 코드인사 논란, 사면권 남용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는 애써 눈과 귀를 막으면서 입만 여는 자가당착 태도를 보여왔다. 그같은 태도는 과도한 국론분열을 초래하면서 사람들의 시간을 지루하게 잡아놓게 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벌려논 일을 수습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초조감과 절박감에 정권말기로 갈수록 더 큰 고집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1년반은 15년, 아닌 150년만큼 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