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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정계개편 바람이 점차 거세게 불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머리를 맞댔다. 한나라당의 중도성향 의원모임인 '국민생각'은 11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를 서울 여의도 호텔로 불러 '화합과 상생의 정치'란 화두로 간담회를 열었다.
국민생각은 한나라당 내 최대규모의 의원모임이다. 소속 의원만 43명이다. 강재섭 대표, 김형오 원내대표, 황우여 사무총장을 비롯해 강재섭 체제에서 요직을 맡은 의원만 10명이 넘는다. 차기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무성 유승민 의원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이 모임 소속이다.
중도성향 모임이라고 하지만 당내 경선과정에서는 어느 조직보다 유기적으로 움직일 많은 연결고리를 가진 조직이라 할만 하다. 이 때문에 이날 간담회를 단순한 모임차원의 행사로만 간주하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가의 분위기다.
양측 모두 "특별한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말했지만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임명'을 두고 정당간 공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만났으니 정치권은 양당 접촉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정계개편이란 시한폭탄을 기다리는 정치권은 양당의 움직임이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계산기 두드리기에 분주하다.
'이번에 지면 끝'이라 말하며 20007년 12월을 준비하는 한나라당은 민주당과의 연합이 절실하다. 호남에서 많은 지분을 가진 민주당과의 연합은 '동서화합'이란 명분확보와 '열린우리당 고립'이란 실익도 얻을 좋은 카드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차기 대선 승리를 전제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지 않다.
'반노무현 세력' 결집을 통해 재도약을 준비하는 민주당 역시 노무현 정권 견제를 위해서는 한나라당과의 정책적·정치적 공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7·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이전보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민주당은 어느 정당보다 정치권 새틀짜기에 적극적이다. 방법도 여러가지를 모색중이다.
이런 이해관계가 얽힌 두 정당은 이날 모임에서 결국 '정계개편'이란 화두를 자연스레 꺼냈다. 한 대표는 전작권과 전효숙 파문이란 민감한 정치현안을 거론하며 한나라당과 보폭을 맞췄다. 두 현안에 대한 한 대표의 생각은 한나라당과 일치했다. 전작권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한나라당 주장과 일맥상통했고 전효숙 파문 역시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는 데 의견이 같았다.
"전작권 문제나 헌재소장 문제에 대한 평소 민주당 생각을 보면 한나라당과 너무 비슷하다고 많이 생각했다"(강재섭 대표) "전작권 문제는 한나라당과 너무나 똑같아 특별히 질문을 드릴 게 없다"(황진하 의원)고 말할 정도로 양당은 쟁점현안에 같은 입장을 취했다. 이처럼 간담회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자 양측은 민감한 '한나라-민주 통합'카드와 '개헌'카드를 각각 던지며 논의를 진전시켰다.
한나라당은 '한-민 통합론'을 꺼내며 한 대표의 의중을 떠 봤다. '지역감정'해소라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을 던지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창조적 공조를 이루고 지향목표가 같다면 언제든 헤쳐모여식 신당창당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한 대표의 말이 떨어지자 양당 통합을 주장하며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박희태 의원은 "한나라당과 연합해서라도 (차기대선에서)대통령 후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김무성 의원은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지 헤쳐모일때가 된 것 아니냐. 그렇다면 한 대표도 우리랑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 이런 단초를 제공하는 게 정치지도자인데 한 대표가 그런 영광스런 지도자가 될 의항은 없느냐"며 노골적으로 한-민 통합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다.
강 대표는 10·25 해남·진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관련, "10월 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후보를 내는 게 열린당이랑 붙는 데 도움이 되는지 내지 않는 게 도움이 되는지 알고싶다"고도 물었다. 그러나 한 대표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번에는 한 대표가 '개헌'카드를 꺼냈다. 개헌은 한나라당이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는 사안이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개헌을 주장한다"며 "어떤 대통령도 5년 내에 업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만큼 정·부통령 중임제나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정서가 연합하고 결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자 한 대표는 거듭 새틀짜기 가능성을 언급한 뒤 그 전제조건으로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주장하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한 대표는 "국민을 위하고,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의 틀을 짤 수도 있다"며 "박근혜 전 대표에게 (민주당을)교섭단체로 만들어 달라했는데 전혀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과거엔 10명이면 교섭단체가 됐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20명으로 늘어났다. 딸인 박 전 대표가 10명으로 요건을 완화하면 아버지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시정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안됐다. 내일 한나라당이 바로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법안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한나라당은 답하지 못했다.
일단 양당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정책적 연대'라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한 대표는 "한나라당이 내놓은 안이라 하더라도 국민에게 보탬이 된다면 민주당은 지지하겠다. 민주당 회의 때도 한-민공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 모두 내심 기대하며 꺼냈던 통합과 개헌 카드는 주머니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한 대표는 고건 전 국무총리 영입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계속 러브콜을 하고 있다"고 밝혔고, 전윤철 감사원장의 10·25 보선 공천에 대해서는 "중국에 간 본인이 갔다와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