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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천정배 유시민 등 여권 내 유력 차기 대선 주자들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당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물밑에서 ‘내공’을 쌓자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법무부 장관 인선 등의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 직전으로까지 치달았던 당-청간 갈등이 대체로 수습됐지만 여전히 미봉책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당내 설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비롯해 북핵과 관련한 대북정책,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한미 동맹관계 등 굵직굵직한 사안과 부동산․교육 정책 등을 놓고 당․청간 갈등의 재점화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인사권 파동을 통해 김근태 의장이 외견상으로는 ‘판정승’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은 당내 일각에서 “김 의장이 오버했다. 역시 대통령감은 아니었다”는 등의 소리도 나오면서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과 당․청간 갈등은 근본적으로 깊은 골이 있는 만큼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스탠스다.
때문에 이들 여권 내 대선 주자들은 빨라야 올 연말 내지는 내년 초 본격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는 게 당내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재로선 장외에서 지켜보는 것이 유리하지, 괜히 링에 올라설 시점은 아니다’는 설명이다. 일단 이번 1차 당․청간 갈등에서 김 의장이 보여준 모습을 학습효과로 삼아 자신들의 대선 구도를 그리자는 의도가 배어 있다는 당내 해석이다.
실제 한달 일정으로 지난달 15일 독일 연수를 떠났던 정동영 전 의장이 독일 연수 이후, 미국 연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점도 이런 상황을 방증하고 있다는 당 안팎의 설명이다. 이는 정 전 의장의 해외체류가 연말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인데, 측근들로부터 당 상황을 전해 듣고 있는 정 전 의장으로서는 ‘빅 카드’가 없는 한, 굳이 성급하게 나설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게 당내 관측이다.
정 전 의장이 차기 대권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한바탕 각을 세워야 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공쌓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게 당내 대체적인 의견이다.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시간도 벌면서 통일부 장관 시절의 남북문제로만 한정된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도 신경을 쓰는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천정배 의원도 떠들썩했던 당 복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향후 구체적인 대선 행보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는 설명이다. 천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측은 “이번 인사권 문제를 둘러싼 당․청간 갈등을 지켜보면서 상처 입은 김 의장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천 의원의 주가가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연초쯤 당에 복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번 당․청간 갈등에서 노 대통령의 당내 입지가 견고하다는 사실이 일견 드러난 점을 감안하면, 유 장관이 친노직계 그룹을 중심으로 모종의 구상을 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이번 인사파문에서 밀려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와 문재인씨의 향후 행보도 이들과 맞물리면서 내년초쯤 뭔가 '상황'이 이뤄질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부산 정권’ 발언 등을 대놓고 한 것으로 볼 때, 영남권 신당 창당 움직임에 문씨가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의 여권 내 차기 대선 후보 문제와 관련한 ‘외부 선장론’의 주 타깃인 고건 전 국무총리도 현재 자신의 싱크탱크인 ‘미래와 경제’를 중심으로 주요 사안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 대선 주자군의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당의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참여정부와 끝까지 함께 하겠느냐고 물으면 다들 ‘미쳤느냐’고 한다”는 당내 분위기를 전하면서 “여권 대 대선 주자들도 “노 대통령과 선 긋기 과정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내공쌓기’가 노 대통령과의 일전을 염두에 둔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올 연말까지는 홀로 링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 의장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