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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청와대 오찬 간담회 직후,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극으로 치닫던 당․청간 인사권 갈등 문제를 해결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내년 대선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놓고 있는 김 의장으로서는 복잡한 셈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당 안팎의 관측이다.
노 대통령과의 본격적인 머리싸움이 불가피한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김 의장이 혹 떼러 갔다가 혹만 붙이고 왔다’는 말도 나온다. 당․청간 인사권 갈등 문제도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 여부라는 여진을 확실히 제거하지 못했다는 점도 김 의장으로서는 부담이다.노 대통령은 청와대 오찬에서 여권 내 내년 대선 문제와 관련한 의중을 처음으로 드러내 보였다. 김 의장의 면전에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은 큰 배다. 선장이 지금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바깥에서도 선장을 데려올 수가 있다”며 여권의 대선후보 외부영입을 시사했다. 당․청간 인사권 갈등 문제에 대한 의견을 언급하면서 나온 것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된 발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대통령의 여권 내 대선 후보와 관련된 발언은 당장 여권 내 권력지형과 맞물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단 여권 내 특정후보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특정후보에 대한 ‘비토적’ 의중은 노 대통령이 충분히 내보였다는 당 안팎의 분석이다. 지금의 여권 내부의 사정을 감안할 때 ‘김 의장으로는 안 된다’는 의중이 반영돼 있다는 것인데, 김 의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노 대통령이 또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DJ(김대중 전 대통령)때도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여당 내부에서 대통령을 몰아붙였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느냐. (지금의 열린우리당도) 내게 권력투쟁하듯이 하고 있다” "대통령 때려서 잘 될 생각하지 말라“는 등의 당시의 발언 내용도 전해지고 있는데, 다분히 김 의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시선이다. 당․청간 인사권 갈등의 시발점이 김 의장이었던 데다가, 김 의장과 노 대통령의 그간 껄끄러웠던 관계가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이번 청와대 오찬을 계기로 김 의장과 노 대통령의 대립각은 더욱 분명해 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당내 일각에서는 '김 의장 말고도 현재 거론되는 열린당의 인물들 가운데 현재 지지율만을 봤을 때, 대선 후보가 될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노 대통령의 의중이 이같이 나타났다 한들 김 의장이 반박할 수 있는 뭔가나 있었겠느냐'는 목소리다. 사실상 차기 대선을 염두에 놓고 있는 김 의장으로서는 복잡한 셈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당내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지금의 열린당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만큼 김 의장에 대한 평가도 높지 않다는 관측들이다. 실제 일부 중진 의원들은 김 의장을 겨냥, “과거에 운동 했다고 대통령이 된다면, 나도 운동을 했겠다”라는 등의 농이 섞인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내놓고 있다.
사실상 노 대통령의 '외부선장론' 등은 ‘김 의장은 안 된다’는 특정후보 '필패론'에 대한 의중이 깔려있는 발언으로 비쳐지고 있는데다가, 이를 김 의장이 있는 면전에서 했다는 점에서 향후 정치권의 정계개편 등을 감안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과거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전 의장과, 추미애 전 의원을 차기대선 주자로 언급하면서 당시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하는 등의 파장이 일었던 점을 볼때, 향후 김 의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의장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고도 이대로 엉거주춤 주저않아 시간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한 만큼 '선제공격'을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여의도의 햄릿'으로 불릴 만큼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 의장이지만 막판이라고 판단되면 노 대통령과 정면승부를 벌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게 정가의 관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