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은 요즘 학계와 언론, 뉴라이트 진영 등 당 외부인사를 초청해 쓴소리를 자청하고 있다.

    초·재선 의원들로 구성된 각 모임들은 7월 11일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혁신방안' '7월에 구성될 당 지도부가 갖춰야할 리더십' '5·31지방선거 재평가' 등의 주제로 잇따라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겨냥해 '미래모임'이란 한시적 모임을 만들고 본격적인 당의 간판교체를 꾀하고 있는 소장파 의원들은 이 같은 토론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에 당위성을 실으려는 분위기다.  

    토론회를 통해 나오는 발언들 대부분은 한나라당에 대한 쓴소리다. 그 내용들도 대동소이하다. 지난 19일 '국가발전전략연구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선 "과거 인물들이 복귀하고 인맥과 지역에 따라 줄서기 하는 모습이 다시 보인다" "과거로 회귀 중이다"라는 등의 질타가 쏟아졌다. 

    부인의 공천비리로 정계은퇴를 시사했던 김덕룡 의원과 '안풍(安風)사건'으로 정계를 떠났던 강삼재 전 의원의 정계복귀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21일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모임인 '초지일관' 주최 토론회에서도 "여당을 덮친 민심의 쓰나미는 한나라당을 덮칠 것" "여전히 한나라당은 노쇠한 정당이란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 이명박 등 당의 차기 대선주자들에 대해서도 "독자적 지지보다는 반사적 이익을 갖고 있고 장기적 아젠다를 앞장서 제시하기보다 집권당 정책의 실정에 따른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이 더 많다"며 평가 절하했다.

    이처럼 5·31지방선거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쓴소리를 자청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당이 새로운 시대흐름에 맞춰 변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을 한 꺼풀 벗겨보면 당의 간판과 얼굴을 바꾸는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실제 7월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는 모 의원은 "2007년 이후 한나라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정치 신인들을 키우기 위해 당의 얼굴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7월에 선출될 대표는 '시대흐름'에 맞는 인물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선 세대교체가 가장 좋은 방법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전당대회 출마 채비를 하고 있는 심재철 의원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새 대표의 인물상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심 의원 주장에선 당을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 돼야 한다기 보다 "이러한 인물들은 절대 안된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민정계 출신인 강재섭 전 원내대표와 강창희 전 의원을 겨냥해 "민정계 출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한나라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심 의원은 22일에도 "5·6공 출신이 당의 간판 얼굴이 된다면 권력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으려는 정부·여당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한나라당을 '5·6공 당'으로 낙인찍으려 할 것"이라며 역시 당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 의원은 23일 '승리의 리더십과 7·11 전당대회'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선거압승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자성의 목소리가 터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 홍준호 선임기자는 21일 토론회에서 "속된 말로 배부른 뒤 게으르지 않은 사람 찾기 힘들고, 선거에 크게 압승하고도 교만하지 않았던 정당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정당사를 들춰보면 그런 경향이 짙었다. 때문에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자성의 목소리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성의 바탕에 특정한 목적과 배경이 있다면 그 역시 다른 형태의 '오만'이며 '교만'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초·재선 의원들은 그들의 '세대교체' 주장이 진정 '시대흐름'에 부합하는지 되짚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초지일관'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성신여대 정외과 김영호 교수는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생각이 구태의연하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역동성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인천대 정외과 이준한 교수는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리더의 모습은 사회통합능력이 있는지, 대중을 얼마나 잘 설득할 수 있는지, 위기를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는지와 도덕적인 권위, 국제·행정 능력과 의회관계, 사회 아젠다 설정 등의 카테고리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며 "현재 한나라당에서 이런 카테고리를 갖춘 리더들이 있는지 의구심이 더 많이든다"고 지적했다.

    한 초선 의원의 보좌관은 초·재선 의원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본인들이야 부인하고 있지만 전당대회를 목적으로 모임을 만든 만큼 정치적이라 할 수 밖에 없고 이 모임 역시 그들이 그토록 배척하겠다는 '줄서기'와 '계파'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