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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낮은 자세’로 정동영 의장의 독주체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며 여권 내 주도권 흐름을 예의주시해 왔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후반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방식에 대한 우려감을 공식적으로 표출하는가하면, 지난 3일 오전 국회 당의장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열린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전략적 협의를 할 수 있는 3당 공조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4일 오전 남대문로 대한상의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한미FTA와 관련, ▲너무 준비 없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것 ▲미국에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협상 방식의 태도 ▲우리측의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하다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정부는 이런 비판과 지적을 경청하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FTA 협상 진행 과정의 정부 태도에 대한 우려감을 내보였다.
김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최소한 참여정부가 ‘제2 IMF'의 대리인이 됐다는 비판은 받지 말아야 한다”며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야 한다. 국민들이 요청하는 것은 당당하고 자주적인 정부가 진행하는 자주적인 협상이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역점을 두고 있는 FTA 문제에 공식적인 우려감을 표했다는 점에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당 안팎의 반응이다.이와 함께 김 최고위원이 제안한 열린당과 민주당 민노당이 전략적 협의를 할 수 있는 3당 공조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서도 2일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민노당 민주당의 참여에 감사의 뜻을 표한 형식으로 나온 것이지만, 당 안팎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지방선거 이후를 대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최고위원이 당시 최고위원회의에서 “열린당과 민노당 민주당이 연대해서 전략적인 원칙을 합의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 민주개혁의 한길을 가는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언급한 부분은 지방선거 이후 자신의 행보를 구체적으로 암시한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반응이다.
그는 이른바 ‘민주개혁연대’ ‘범민주개혁세력대통합’은 김 최고위원이 지난 2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왔엇다. 따라서 이번 쟁점법안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런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시기를 조율하고 있던 터에 이번 쟁점법안 처리가 때맞춰 터졌다는 것이다.실제로 김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든 향후 대권구도상 유리한 위치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선거 이후의 행보를 놓고 당내 재야파 및 중진 의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당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지방선거 이후 고건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범양심개혁세력대연합’에 무게를 두면서 ‘고 전 총리를 추대할 수도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왔던 만큼, 이번 3당 공조 협의체 제안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당내 또 다른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사학법재개정 양보 권고 발언에 반대 입장을 내보였던 김 최고위원이 지방선거 이후 청와대 주도의 국정운영 양상을 예견하고 ‘선수를 치고 나온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은 ‘거국적 리더십’ 차원에서 임기 후반 국정안정을 위해서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주문한 것이었는데, 김 최고위원이 민주당 민노당과의 공조 개념을 외치고 나온 것은 결국, 노 대통령의 의중과 상충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김 최고위원의 오른팔로 여겨지는 이인영 의원이 최근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에 대해 “제2의 대연정과 같은 발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참 많은 것을 결단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도 이와 맥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김 최고위원이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이 향후 정국 상황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기로임을 인식했기 때문에 쟁점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 민노당이 협조하는 것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의견을 표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김한길 원내대표는 김 최고위원의 3당 공조 협의체 구성 제안에 대해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바 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원론적인 차원의 의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이 마치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주문한 것으로 비쳐진 데는 명확히 선을 긋고 나섰다. 김 대표는 “노 대통령이 그날 말한 것은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의 고민이고, 그 해결방식은 당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이 건강한 당정의 협력 관계, 새로운 당정 관계라고도 말하는데,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반드시 한나라당과 어떻게 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강한 여당’, 소위 '자강론'을 내세우는 정동영 의장계로 분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