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사립학교법 양보 권고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를 놓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김근태 최고위원, 천정배 법무부 장관 등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이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정체성과 직결되는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불편한 속내지만 현재의 형편을 보면 노 대통령과 확실한 선을 긋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 초반을 회복하면서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반해 자신들의 지지도는 한 자리수 밑바닥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의 수위는 한 층 높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일단 이들은 이번 사태로 노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 등 정치권의 ‘빅뱅’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보면서 향후 정국 양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거국적 리더십’을 통해 한나라당내 일부 강경·보수세력을 고립화시키는 정계개편 방향에 의중을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는 한나라당내 일부 소장파와 중도부수세력 등을 겨냥한 ‘제2의 대연정’ 제안이나 다름없다는 관측이다. 

    우선 이번 사태는 정 의장의 고민을 한층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 의장은 일단은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에 대해 ‘보란 듯이’ 지도부 회의 및 의원총회를 소집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의장의 측근이자 언론특보를 맡고 있는 정청래 의원은 “집토끼마저 산적떼(한나라당)에게 고스란히 넘기는 것”이라고 발끈했었다. 그러나 향후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차기 대권주자 조사에서도 민노당 권영길 의원에게도 뒤지는 것(리얼미터 지난달 24~26일 조사에서 정 의장 5.7%)으로 나타나면서 심각한 위기의식마저 일고 있는 분위기다. 

    지방선거 필승만이 유일한 대안인데, 현재는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는 판단이다. 유력한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임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인 내년 대선 무대를 남겨 놓고 고민만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은 강한 당, 이른바 ‘자강론’을 내세우면서 열린당을 중심으로 민주당 일부 세력의 통합에 의미를 두는 모습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의 민주당의 ‘사과상자’ 사건으로 소원한 모습이다. 

    이와 함께 당내 서열 2인자인 김근태 최고위원은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에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 최고위원의 오른팔격인 이인영 의원은 1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에 대해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은 큰 충격” “어쩌면 제2의 대연정과 같은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참 많은 것을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발언이 향후 정국 상황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대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가치관이 전도되는 이 상황을 우리가 방치한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우리에게 곧 닥쳐온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김 최고위원으로 대변되는 당내 재야파의 불편한 속내를 간접 표출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김 최고위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지방선거만을 놓고 봤을 때도, 완승할 경우에는 정 의장의 당 장악력 등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완패할 경우 자신도 책임문제에서 비켜설 수 없다는 고민이다. 김 최고위원은 향후 자신의 행보와 관련해서 최근 당내 중진 및 타 계파와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은 지방선거 이후 진행된 정계개편 ‘빅뱅’에 예의주시하면서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범양심세력대연합’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일부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실세총리를 조건으로 고 전 총리 추대의 뜻을 피력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는 내각에서 정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지방선거 이후의 정계개편 본격적인 신호탄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정 의장, 김 최고위원은 차기 대권 1·2 주자들이 낮은 지지도 등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 판세의 급작스런 변화는 자신의 대선 행보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정국 상황에 예의주시는 하고 있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당 복귀 시점을 놓고서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 장관은 최근 자체 조사에서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어필되고 있는 동시에, 연고지가 전혀 없는 영남 지역에서도 적잖은 지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