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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3일 처음으로 강연에 나서면서 정계복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귀추가 주목된다.
올해 처음으로 자택을 개방하고 지난 1월과 2월에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권철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각각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 행보를 보여온 이 전 총재의 이번 행보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계 복귀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극동포럼(회장 임경묵) 주최로 서울 세종문회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조찬세미나에 참석해 ‘자유민주주의와 우리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노무현 정부의 사회 양극화 주장과 대북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200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색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이 전 총재는 “진정한 평등주의는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논리에서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 또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지만 균형적, 차별적 평등을 말한다”고 평등주의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이은 제2기 좌파정권”이라고 전제한 뒤 “개인의 능력과 적성 차이 등을 무시한 채 평등주의만을 주장하는 것은 극단적인 좌파”라며 “사회구성원을 강자와 약자, 돈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라서 분쟁을 조장하는 것도 역시 좌파나 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으로 민주주의 씨앗을 뿌려 경제적 자유라는국민적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반 자유민주주의적 사고와 정치 때문에 국민적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흩어지고 있다”면서 “(노 정부가) 대한민국체제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데까지 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 대통령 스스로 이 정권이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했는데 이는 좌파 정권이 임기후반에 이르러 좌파정책만으로는 국가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우파정책 일부를 차용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 정권이 남은 임기동안 추진과제로 내세운 사회적 양극화 논리의 헛점을 지적하면서 “양극화 문제의 1차적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며 “이 정권은 국민을 잘나가는 20%와 희망 없는 80%로 나누고 강자, 부자인 20%의 탐욕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하면서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단순히 개인의 소득과 자산에서만 아니라 교육과 지역, 경제 등에서도 계층간 지역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는 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노 정부의 자주외교는 결국 국내정치용”이라며 “일방적인 DJ정부의 지원정책을 승계하였으나 북한 체제 변화유도라는 명분마저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의 비난의 화살은 그가 주장한 ‘제1기 좌파정권’인 DJ 정권을 비껴가지 않았다. 지난 2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DJ 비판’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는 이날도 역시 DJ 정부의 대북정책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DJ정부는 관권을 동원한 언론탄압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포퓰리즘과 반법치주의가 점철된 시기”라며 “포퓰리즘 정치는 노 정부가 내세운 참여민주주의의 도를 넘은 확대와 맞물려 우리 정치의 병폐가 되고 있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DJ 정권 시절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DJ정부는 햇볕정책을 ‘주면 변한다’는 논리로 정당화했지만 DJ정부 5년과 노 정부 3년에 이르기까지 북 체제가 변한 것은 없고 오히려 핵보유선언을 했다”며 “남북관계의 대화협력 방법을 일방적인 협력지원방식으로 고착시켜 버렸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남북연합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양보해서라도 통일로 가야 한다고 친북좌파들을 한껏 고무시켜 남한 내에 주한미군 무용론과 반미정서를 팽배하게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다시 현실 정치에 나가는 일은 없다”며 항간의 정계 복귀설을 일축한 뒤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몸이 부서지더라도 일해야겠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는 2007년 대선과 관련해서도 “다시 제3기 좌파정부가 집권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여러 가지 비판은 받고 있으나 우리에게 유일한 자유민주세력의 정당이다. 한나라당이 중심이 돼 좌파세력의 정권재창출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좋은 활동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서 ‘주님 저를 그대로 놔두어 썩게 하지 마시고 당기소서… 세게 당기소서 당신이 원하신다면 부러져도 좋습니다’는 시를 소개해 정계복귀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이날 강연에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를 비롯해 고흥길 김기춘 황우여 이상득 정형근, 남경필, 김영선 전재희 의원 등 10여명의 전·현직 의원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