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선거에서의 승리가 대선에서 패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대선필패 법칙’이 이미 한나라당내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은 17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지방선거와 한나라당의 진로’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새정치수요모임’이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박희태 국회부의장, 이재오 원내대표, 발전연과 수요모임의 회장인 심재철 박형준 의원을 비롯해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 의원 20여명과 250여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방선거를 대비한 한나라당의 전략을 모색했다.
참석자들은 그 동안 한나라당에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시대정신과 내면화의 결여’를 지적하며 지방선거 이후의 정책 방향과 대선 향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지금과 같은 체제로 지방선거에 임하면 '대선에서 패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형준 “개혁, 대세론, 수구보수 등 대선 필패법칙이 작동해”
발제자로 나선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김형준 교수는 “한나라당이 과학과 철학이 숨쉬는 정당으로 탈바꿈 하기 위해 대선 참패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두 번의 대선 실패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방향성을 갖지 못한다”고 좌표설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한나라당은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개혁, 대세론, 수구보수 등 3단계의 절차를 거치는 ‘대선 필패법칙’이 현재 작동하고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의 참패요인은 대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에 안주한 나머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원외 정당체제, 당대표 그리고 당론정치가 존속하는 한 한국정치에서 표출되는 왜곡되고 파행적인 정당 갈등에 대한 해법은 없다”고 ‘원내정당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윤여준 “머리로는 시대정신 인식하나 가슴으론 전시대적 감정에서 못벗어나”
한나라당의 ‘전략통’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요즘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의 공통점은 시대정신이 투철하지 못하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라며 “머리로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전시대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혼돈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윤 전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재벌과 같은 가진자의 이익을 국가와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처럼 생각하는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부자 정당' 이미지를 불식시킬 것을 주문했다.
윤 전 소장은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시대정신에 입각한 발전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 일관된 전략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집권 후에 제시할 청사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당하고 정치적인 게임은 하더라도 국정 아젠다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나라당은 싸움만 한다. 발목만 잡는다’는 국민들의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있다.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성린 “자체 개혁과 정책정당화에 실패”
안민포럼 회장인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정치권의 역할과 관련 “나라 전체가 단합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간의 이념투쟁이 이어져 심각한 국론분열로 인해 국력이 낭비되고 있다”면서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은 막대한 국고 지원에도 불구하고 정책개발에 무관심한 나머지 정책정당화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이 외부에서 볼 때 지향점이나 비전이 불분명하다. 과거사법 수도이전 신문법 등에 대해 수동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여의도연구소의 역할도 미미하다”면서 “여전히 ‘보수꼴통당’, ‘웰빙당’으로 인식되고 있으면서 자체개혁과 정책개발도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경쟁해 정책정당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 선진화가 달성되지 않으면 영원한 선진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재오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정치흐름을 바꾸는 갈림길”
한편 사회를 맡은 남경필 의원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이라든지 각 지역에서 불거져 나오는 공천 파문 때문에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자체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형준 의원은 ‘태풍이 오기 전에 바다가 고요한 데 누구도 저 멀리서 태풍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한나라당에는 큰 태풍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희태 부의장은 축사를 통해 “정치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정치를 한다해도 국민이 불안해 하고 고통이 따르며 마음이 편치 않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없다”며 “그 시대 그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느냐를 찾는 것이 목표이자 정책”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재오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은 그 동안 ‘돈을 갖고 있는 당’, ‘무사안일 당’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번 선거가 흐름을 바꾼 한나라당을 건설하느냐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자로 나선 심재철 의원은 “한나라당 내에는 퇴보 좌파적인 면은 없으나 그것에 대립되는 진보 우파적인 경향도 부족하다”면서 “당이 수구 좌파들을 비판하는 데 머물러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이 비전을 정직하고 용기있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진보 우파적인 움직임들이 일고 있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여당에서는 경제가 침체된 원인을 양극화에서 찾고 있는데 양극화가 아니라 사실상 빈곤화 상태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양극화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기현 의원은 한나라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북정책과 통일정책 등에 대한 실용적인 이념적 지향성을 명확히 해 실용주의 실사구시 정신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외부인사 영입과 지속적인 ‘젊은 피’ 수혈을 통해 당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