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위원 대상의 인사청문회 중 유일하게 이틀 동안 진행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의 8일 인사청문회는 특별한 쟁점이 제기되지 않은 채 싱겁게 끝났다.

    전날 유 내정자에게 파상공세를 퍼부었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도 인사청문회 시작 전부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 내정자는 장관으로 절대 부적격”이라며 도덕성 검증을 위한 철저한 추궁을 다짐했다.

    그러나 공세의 화력이 다됐는지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날보다 진전된 내용 없이 다소 김빠진 질문만 내놓았다. 오히려 질의 시간이 6분으로 제한된 의원들에 비해 답변시간 제한이 없었던 유 내정자에게 해명의 기회만 준 셈이 됐다. 더욱이 열린우리당 의원 중에는 유 내정자에 대한 질의보다는 자신의 의정활동을 홍보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을 보이는 의원도 있었다.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유 내정자의 정책개발비 유용 의혹에 대해 영수증을 확인해 봤느냐며 “입법 및 정책 활동을 위해 써야 하는 돈을 지역 관리를 위한 용도로 혼용해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유 내정자는 “꼼꼼히 따져 보면 문제가 될 소지도 있지만 국회 사무처의 운영 기준에는 맞췄다”고 반박했다. 그는 ‘말 바꾸기를 일삼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만사가 해석하기 나름인 면이 있다”며 “주장하는 바가 달라지면 말을 바꿨기 때문에 나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 맞춰 간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정도의 변화는 정치에서는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며 “똑같은 병에 술이 절반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병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반병이나 남았다고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도 전날에 이어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한 유 내정자의 윤리적 책임의식 추궁하고 나섰지만 유 내정자는 “박 의원은 1973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1980년대 초는 그때와는 다른 측면이 있었다. 그때 대학가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시켜 이해해 달라”고 맞섰다.

    같은 당 문희 의원은 유 내정자에게 직접 질의는 하지 않고 “수없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무조건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고 진심어린 사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국민연금 미납, 각종 실언과 막말, 폭행사건 등에 대해 사과 한마디로 면피하려는 사람에게 장관직을 맡겼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올지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스스로 장관 임명에 대해 재고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새로울 것 없는 질의로 인사청문회의 김을 뺐다면 열린당 의원들은 유 내정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복지부 업무와 상관없는 질의로 자신의 의정활동을 홍보하려 한다는 인상까지 풍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춘진 의원은 ‘엉뚱하게도’ 유 내정자의 ‘농촌 사랑’을 강조하더니 “폭우가 쏟아져 수해가 나거나 폭설로 인해 농촌이 어려울 때 '주무 장관'으로서 현장에 뛰어가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 점검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전북 고창·부안으로 이 지역은 지난번 폭설로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다.

    인사청문회 내내 유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을 적극 변호했던 강기정 의원은 이번엔 한나라당에 의해 다시 부각된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대해 “과거사법에 의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녔지만 당시 프락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매우 일반화 됐었다”며 “(운동권 학생들이) 정보공작에 의해 죽거나 안기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사건이 많았다. 군대에서 많았던 프락치 공작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그 사건이 어떻게 과장되고 정권에서 학생운동 탄압의 도구로 사용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 내정자는 “(프락치 사건의 진상이) 규명 됐으면 좋겠지만 당시 감금이나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는 입장에서 진실규명을 해 달라고 하면 폭행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보복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유 내정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결과보고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문병호 "유시민 복지부장관 임명은 실험"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임명은 실험이다”

    장관 내정 사실이 알려지고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기까지 수많은 논란을 불러온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이 내린 평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유 내정자에 대한 이틀간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문 의원은 8일 “유 의원의 보복부장관 내정은 어찌 보면 참여정부 수립 이후 가장 큰 논란거리였고 실험적인 일”이라며 “과거 무난하고 원만하고 보편적인 사람을 장관으로 선호했지만 유 내정자는 단점이 많이 부각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유 내정자가 명석하고 헌신적인 자신의 장점들을 장관직 수행에 잘 반영한다면 실험이 성공할 수 있다”며 “유 내정자의 변신이 화제가 됐는데 일시적인 변신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유시민, 시낭송 ‘튀는 소감’으로 마무리

    한편 이날 인사청문회를 마친 유 내정자는 “많은 지적과 비판을 들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모든 비판과 질책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내내 튀는 행동을 자제해 왔던 유 내정자는 이번 청문회를 시인 도종환씨의 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낭송하는 ‘튀는 소감’으로 마무리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 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 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