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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투쟁동력은 빠지고 이명박의 당 장악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의 측근이며 당내 대표적인 반박그룹 인사로 분류되고 있는 이재오 의원이 한나라당의 새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되자 박근혜 대표측의 한 당직자는 이 같이 말했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출마자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표(김무성) 와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이재오)의 대리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당의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당내에선 결국 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자인 박 대표와 이 시장의 세 다툼이 이번 원내대표 경선의 판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높았던 게 사실.
때문에 경선 이전부터 박 대표 측과 이 시장 측 모두 내심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는 이 시장의 대리인격으로 출마한 이 의원의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 됐다. 특히 경선 직전까지 양측 모두 초박빙의 승부를 예상했고 5~10표 안팎의 표차이를 전망했던 것과 달리 22표라는 큰 격차로 이 의원이 승리했고 투표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투표장 분위기는 크게 술렁거렸다.
투표결과를 지켜보던 박 대표는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이는 박 대표의 측근들도 마찬가지. "이명박의 상승세가 눈에 띄지만 결국 당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란 박 대표 측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반면 이 의원을 지지한 당내 비주류와 소장파 의원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특히 이들은 많은 표차로 이 의원이 승리한 결과를 두고 "당심(黨心)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며 당연시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것이 정확한 민심"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재오 72 : 김무성 50' 무엇이 두 사람 격차 벌렸나
박 대표를 비롯한 친박 그룹이 실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크게 벌어진 두 사람의 표차다. 당초 양진영 모두 10표 안팎의 차이를 예상했다. 일부 의원들은 "많이 차이나야 5표"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큰 격차에 대해 한 3선 중진 의원은 "서울·경기를 비롯한 수도권과 전국구 의원들이 이 의원에게 몰표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의원을 지지했던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와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은 경선 전날인 11일 저녁 소속 의원들에 대한 막판 표단속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진 모 의원은 "어제 밤에 박 대표측 한 의원이 소속 의원 전원에 전화를 해 김 의원의 지지를 요청했다"며 "그 이후 이 의원측에서도 다시 한번 의원들의 표단속 작업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중립을 지키겠다던 박 대표와 이 시장이 간접적으로 이번 경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두 대권 예비후보의 개입 여부에 대해 "직접 개입하진 않았겠지만 경선이 사실상 두 사람의 대리전으로 진행된 만큼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의 당 장악력이 박 대표 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박근혜 50 : 이명박 72' 단순히 두 사람 세 대결로 해석할 순 없어
행정도시법 통과, 당 혁신안에 사학법 문제까지 총체적 불만 표출된 것그러나 22표 차이라는 투표 결과를 고스란히 박 대표와 이 시장의 세 대결 결과로 볼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이 박근혜-이명박의 대권 대리전 성격을 띤 것도 사실이지만 이 같은 결과를 단순히 두 사람의 세 대결 결과로 간주할 순 없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즉 이 결과는 2004년 3월 23일 부터 1년 10개월 여동안 박 대표 진두 지휘 아래 짜여진 당 시스템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총체적인 불만이 표출된 결과라는 것.
서울·경기 등 수도권의 표가 이 의원에게 몰렸다는 중진 의원의 분석을 토대로 볼 때 행정도시특별법 통과에 대한 불만이 이번 경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전국구 의원 상당수도 행정도시특별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당의 고위 관계자는 "행정도시법, 당 혁신안, 그리고 사학법 문제까지 박 대표에 대해 쌓인 불만이 이번 투표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무성 의원이 출마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박근혜-이명박의 대리전으로 갈 경우 두 사람의 세 대결이 불가피하고 이럴 경우 계보정치를 하지 않은 박 대표가 이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투표방식 역시 무기명이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들의 솔직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당내 반(反)김무성 정서도 변수로 작용'
이와 함께 김무성 의원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불만도 경선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 의원이 박 대표의 최측근 중 한명이라는 점과, 지난해 11월 혁신안 통과 당시 당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게임의 룰'을 놓고 반박 그룹, 친이명박 그룹과의 마찰을 빚어온 점 등은 당내 반(反)김무성 정서를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전언.
일부 당직자들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김무성 대세론이 너무 빨리 퍼진 점도 반박그룹과 친이명박 그룹의 결속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당내 비주류 의원들과 소장파 의원들에겐 '김무성은 안된다'는 대명제가 후보를 선택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
결국 김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 '박근혜식 장외투쟁' 기조는 더욱 굳건해지고 장외투쟁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투쟁 반대파의 주장이 소속 의원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월에 박근혜와 함께 물러나겠다"는 이재오 선거전략 결정적
이 의원의 선거전략 역시 김 의원보다 앞섰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김 의원이 박 대표의 장외투쟁에 힘을 실으며 소속 의원들에게 'GO! GO!'를 외친 반면 이 의원은 박 대표에게 힘을 싣겠다고 말하면서도 종교계와 사학계와 연대해 '원천무효 정도의 사학법 재개정 약속'을 이끌어내겠다고 주장했다.
현재 상황에서 사학법 논란의 실마리를 풀고 한나라당이 등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여당의 '사학법 재개정 약속'이라는 것. 소속 의원들도 이 같은 논리에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갈 때 까지 간만큼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김 의원의 논리보다 정부·여당에 투쟁은 하되 '여권으로부터 당이 등원할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는 이 의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반박(反朴)·친이(親李)'인사로 분류되며 그에 따른 박 대표와의 불협화음에 대한 우려도 "전당대회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박 대표와 갈등을 빚지 않을까 염려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박 대표와 손발을 잘 맞추겠다"며 상당부분 불식시킨 점 역시 표단속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의원이 자신의 임기에 대해 "7월 전당대회와 함께 그만두겠다. 사학법 문제가 봉합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출마가 당권장악을 위함이 아님을 강조한 점은 의원들의 표심을 돌리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한 중진 의원은 "7월 전당대회와 함께 임기를 마치겠다고 말한 전략이 적중했고 전날 소속 의원들에 대한 표단속 작업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며 "상당수 의원들이 이런 주장에 공감을 했다"고 말했다.[사학법 반대 장외투쟁 운명은 어디로]
'박근혜 선거피로 털고 이재오와 조율 이뤄내는게 관건'이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정치권은 한나라당의 투쟁기조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실제 장외투쟁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의원들이 이 의원을 지지한 만큼 박 대표의 투쟁동력은 반감될 것이란 관측이 높다.
박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박 대표의 기운이 많이 빠질 것"이라며 "사실상 소속 의원 절반도 자신의 투쟁에 지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박 대표가 무슨 힘으로 계속 투쟁을 이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강성 의원으로 대여투쟁 경험이 많은 이 의원인 만큼 대여투쟁은 박 대표 보다 더 강경하게 할 것이란 논리. 한 관계자는 "아직도 이 의원이 원내총무 시절 대여 투쟁을 가장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일단 투쟁을 하겠다고 시작하면 이 의원은 박 대표 보다 더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 의원이 "대여투쟁 기조는 이어가겠다"고 한 만큼 당장 장외 투쟁을 접고 등원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신을 지지해준 대다수 의원들이 투쟁 방법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좀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대여 '투쟁카드'를 꺼낼 것이란 관측이 높다.
하지만 새로운 카드를 '병행투쟁'이라고 단정짓기도 힘든 상황. 20여일 밖에 남지 않은 국회일정을 고려할 때 무조건 등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신임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황우석 국정감사' 'X파일 문제' '인사청문회'의 향후 일정에 대해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여야 대타협이 이뤄지고 난 뒤에 등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향후 한나라당의 진로를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박근혜-이재오 투톱체제가 얼마만큼 조합을 이뤄내느냐에 달려있다. 당직자들의 말처럼 박 대표가 이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으로 자신의 당 장악력에 회의를 느껴 투쟁동력을 잃어버리고 일순간에 무너질 경우 한나라당은 오히려 더 큰 난항을 겪게 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박 대표가 이번 선거결과 대한 피로를 풀고 이 의원과 당내 현안을 어떻게 조율의 해 나가느냐가 최대 관건으로 보인다.
이재오 “‘반박(反朴) 딱지 떼어달라”
한나라당 새로운 원내사령탑 이재오 신임 원내대표는 12일 자신의 강한 ‘반박(反朴)’이미지가 향후 원내 지도력 발휘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 7월 전당대회 때까지만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사학법 재개정안 마련을 통한 여야 협상’을 강조하며 병행투쟁으로의 선회를 시사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반박(反朴)·친이(親李)’이미지가 부각되는 것에 대해 극히 경계하며 모든 현안을 박 대표와 협의해 이끌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한나라당 관련 기사에서 ‘친박(親朴)’ ‘반박(反朴)’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내가 반박(反朴)의 상징이고 비주류의 대표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이 그렇게 갈라지는 것보다 급한 것이 당의 안정과 단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원들이 원내대표 선거사상 최다 득표인 72표로 나를 이 자리에 앉혀 준 것은 당의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고 수습하라는 것”이라며 “비주류 강경파 반박 등의 딱지는 오늘로서 떼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7월 전대에서 박 대표가 다시 당대표에 취임한다면 원내대표직을 그대로 수행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대선 후보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된다면 그 체제 하에서 새롭게 당직이 개편돼야 한다”며 7월까지만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박 대표가 대선후보로 나서 7월 전대에 대표직을 그만두는데 이재오가 원내대표에 계속 앉아 있으면서 당을 좌지우지 하려 한다는 일부 오해는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박 대표와 임기를 같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내 스스로 원내대표 자리가 처음도 아니고 감투로 생각해 임기를 채우려고 앉아 있을 만큼 내 자신이 한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나라당이 건강한 이유가 소장파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틀 속에서 같이 가면 된다”며 “나도 쓴소리의 대표격 아니냐. 이런 저런 소리 나오는 것을 수용해 동력으로 삼으면 된다”고 말해 향후 당내 소장파·비주류의 역할이 커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사학법재개정안으로 여당과 협상하겠다. 모든 건 여당에 달려”
이 원내대표는 또한 “사학법재개정위원회를 만들어 일반사학과 종교사학의 관계자들과 오랜 토론을 거쳐 재개정안을 만들겠다”며 “정부·여당 체면도 살리고 사학도 안심할 수 있고 야당도 신뢰와 명분을 챙길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여당과 협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국면타개용의 대화가 아니라 사학과 교육의 안정성을 위해 대화하고 타협하겠다”며 “정부·여당이 사학법 재개정안에 합의하고 자기들 스스로 동의한다면 그때 국회 정상화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단절됐던 여야의 대화창구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여야 협상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총체적인 노무현 정권 실정에 대해 전국적으로 투쟁 수위를 높이고 확대하겠다”며 “야당은 기본적으로 투쟁과 협상 비율이 6 대 4 정도여야 한다. 투쟁일변도로 끌고 가기 위해 협상을 아예 하지 않고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 원내총무시절 한 번도 여당과의 충돌로 크게 (여야관계가) 벌어진 적 없다”며 “한나라당의 입장에 서서 충실히 했고 현안 법안 처리하는데 여당과의 협상을 주저하거나 무조건 싸움을 주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그는 “내가 원내대표가 된 이상 쉽게 (정부·여당) 마음대로 하지는 못한다”며 대여투쟁에 있어서의 강성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는 “노 정권이 이미 임기 반환점을 넘었는데 자신들 정권 연장과 재창출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기존질서를 엎게 해서는 안된다”며 “장관이야 노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고 파면할 수 있지만 나라는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여당과 협조가 잘 될 수도 있고 더 강하게 붙을 수도 있다”며 “어디까지나 여당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