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을 이어가느냐, 등원 하느냐'의 기로에 놓였던 한나라당의 진로가 박근혜 대표의 '카리스마와 눈물'로 깔끔히 정리됐다.

    열린우리당이 28일부터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강행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해온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당의 향후 진로를 논의했다. 

    보름 넘게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어온 한나라당에서는 그동안 '병행투쟁'의 목소리가 서서히 분출돼 온 것이 사실. 열린당을 포함한 타 정당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이젠 등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잡음'이 터져나오며 박 대표의 강공에 대한 불만도 점차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종교계 사학단체 등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고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사학법 개정안을 의결, 29일 최종 공포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때문에 당내 소장파와 중도개혁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등원 목소리가 점차 고개를 들었고 박 대표의 대권경쟁자인 이명박 서울특별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장외투쟁 비판은 이들의 '등원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날 열린 의총에서도 '이젠 당 지도부로부터 몰매를 맞더라도 얘기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판단한 듯 일부 소장파와 중도개혁성향 의원들은 '병행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하자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은 작정한 듯 당 지도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까지 쏟아내며 "더 이상의 장외투쟁은 의미가 없다"고 역설했다. 끊임없이 언론을 통해 장외투쟁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고진화 의원을 비롯, 박형준 김명주 의원 등 소장파와 전재희 김충환 의원 등도 '병행투쟁'을 주장하며 지도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박 대표가 회의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으며 마무리 됐다. 27일 대구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노무현 정권이 하려는 일에 내가 방해된다면 나를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구속하라" "(사학법 무효투쟁에) 모든 것을 던지겠다"며 의원직 사퇴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초강수를 둔 박 대표의 투쟁의지는 이날 의총에서도 소속 의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병행투쟁? 완전히 항복하자는 것이냐"

    박 대표는 "나는 극한투쟁을 벌이지 않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당은 극렬하고 선명하게 싸워야 야당이지 이게 무슨 야당이냐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지만 그것(상생의 정치)를 지켜왔다"며 "참을 만큼 참았다. 저쪽에서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고 너 죽어라 식으로 때렸다. 그러나 우리가 맞아죽을 때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말한 뒤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까지 뽑아버릴 엄청난 중대한 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정권에 대해 여기까지 와서 맞아주겠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 정권과는 더 이상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 박 대표의 이날 표정과 발언에서도 장외투쟁 결정을 번복할 뜻이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는 일부 의원들의 '병행투쟁'주장에 "나가서 투쟁했다가 다음날 들어와 국회에서 상임위에 참석하고 이렇게 하면 투쟁이 되겠느냐. (여권에 대한)압박이 되겠느냐"며 "아예 들어가든지 아니면 장외에서 싸우든지 둘중 하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정부·여당은)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금 들어가자고 할거면 처음부터 (장외투쟁을)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며 "지금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고 날치기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 법이 시행되도 상관없다는 것"이라고 역설한 뒤 "왜 여태껏 고수했던 장외투쟁을 뒤집어엎어야 하느냐. 이렇게 까지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소속 의원들은 박 대표의 이 같은 강성 발언에 숨죽이고 있었고 병행투쟁을 주장했던 의원들이 더 이상 '등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는 이미 가라앉은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직권상정하고 날치기 처리한다면 그 때 다시 날치기를 당한 다음 장외투쟁을 한다고 나올 수 있겠느냐"며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정부·여당이)어떤 법을 날치기해도 우리는 그냥 감수하고 본회의장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학법 문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만일 여기서 버텨내지 못한다면 국보법을 비롯한 모든 법안을 날치기 처리할 때 우리를 만만히 보고 나갈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렇게 까지 (장외투쟁을)하는 데 대해 이미 비난받을 각오도 하고 나왔다"고 장외투쟁 의지를 재확인했다. 

    박 대표는 이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지금 싸우는 게 당리당략이나 대표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래선 안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며 정치권 일부에서 제기되는 '이 시장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인했다.

    그는 또 '민생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정권을 잡은 열린당이야말로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너무 돌보지 않았다"며 "우리는 LPG특소세, 결식아동을 위한 법안 등 민생을 위해 우리가 내놓은 법안에 대해 싹 무시당했다"고 말한 뒤 "이 정권이 무슨 민생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 얼굴에 어떤 철판을 깔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맹비난했다.

    그는 "여태껏 민생을 챙긴 건 한나라당이다. 다만 힘이 없어서 들어주지 못한 것이다"며 "여당이 민생을 생각했다면 민생법안을 먼저 처리한 후 사학법을 날치기하더라도 했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한나라당은 굳게 버텨야 한다. 한나라당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명박·손학규에도 "민주주의 못 지킨다면 정치하지 말아라"

    특히 박 대표는 대권경쟁자인 이 시장과 손 지사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시장은 장외투쟁을 "쓸데없는 이념논쟁"이라고 폄하했고 손 지사도 장외투쟁을 비판하며 등원을 촉구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사학법 문제는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으로 들어가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특정이념을 가르치는 것을 참고 넘어가야 하느냐. 이것이 쓸데없는 이념문제라고 생각하느냐"며 소속 의원들에게 반문했고 회의장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그는 이어 이 시장과 손 지사를 겨냥, "어떤 곳에선 이것이 '필요없는 이념 싸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괜한 불필요한 싸움이냐.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것에 앞서 정치인들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영수 여사 거론하며 눈물흘리자 한나라 입장 정리 끝

    어느 때 보다 강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박 대표는 이날 눈물까지 보였다. 박 대표의 눈물에 소속 의원들은 박수로 위로했고 '등원'요구는 더 이상 거론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박 대표는 "나는 남북 문제에 상당히 넓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머니까지 북한에 의해서 잃었지만 그대로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고 왔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이런 이념문제를 이것이…"라고 말한 뒤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언급으로 감정이 북받친 듯한 박 대표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고 소속 의원들은 대표에게 박수를 보내며 박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그러자 박 대표는 "이렇게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힘을 합치면 나중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고 역사에 옳은 평가도 받을 것"이라며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말한 뒤 회의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