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학법 저지에 정치적 운명을 건듯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여 강공 기조가 수그러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한나라당 일각에서 국회등원을 통한 병행투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어 '장외투쟁 전선'에 균열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병행투쟁 주장은 당론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던 일부 소장파 의원들에게서 나왔지만, 장외투쟁이 장기화하면서는 강재섭 원내대표나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당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들도 병행투쟁에 힘을 싣는 듯한 언행을 보이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끈다. 

    26일 현 상황에서의 한나라당 분위기는 아직까지 ‘요지부동’의 형국이긴 하다. 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언행만을 놓고 보면 등원이 실현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 대표는 회의가 거듭될 때마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수위를 높이고 있고 강경한 입장 역시 재확인하고 있다.

    25일 호남폭설 피해현장에서 "이렇게 끝낼 것이라면 시작도 안했다"며 장외투쟁 방침을 재천명한 바 있는 박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도 "지난 주 월요일부터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겠다고 하더니 28일부터 다시 단독으로 열겠다고 한다. 날치기 사학법 통과시킬 때 한나라당 의원들을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 걸어닫더니 다른 법은 단독으로 다 처리하지 뭐했느냐"고 공격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박 대표는 사학법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더욱 뚜렷이 나타냈다. "박 대표는 잘못된 사학법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줘야 하고 사학법의 실체를 점차 알아가고 있는 학부모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대표는 "헌법과 나라를 지키는 것 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며 사학법 장외투쟁을 헌법수호와 나라의 근간(根幹)을 지키는 일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그는 "나라를 못 지키는 야당은 야당으로서 존재 의미가 없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때 국민들은 우리를 신뢰할 것"이라며 이번 장외투쟁을 아예 당의 존재 이유로 각인시켰고, 사학법 개정안 저지를 향후 정권을 되찾아오는 정도(正道)로 간주했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자세에 따라 당 지도부도 더욱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를 통해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갈 뜻을 천명했고 당내 사학법 무효투쟁운동본부도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27일로 계획된 대구 장외집회를 예정대로 열고 28일 대전집회도 강행할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강경 분위기 속에서도 장외투쟁 반대목소리는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다. 박 대표와 대권 후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25일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유례없는 폭설이 농민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새해 예산 처리도 시간이 없는 만큼, 한나라당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민생으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외투쟁에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온 고진화 의원은 이날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당내 대권주자는 신이 아니다"며 박 대표를 비판한 뒤 "국민적 요구를 수용해 연말까지 처리해야 할 사안은 처리하면서 한나라당 요구도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고 병합투쟁을 주장했다. 수요모임 소속 이성권 의원 등 다른 소장파 의원들도 고 의원과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강 원내대표가 “31일 사퇴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점은 한나라당의 원내전략에 모종의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원내 총사령탑인 강 원내대표가 사퇴하기 전에 정국 경색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고 그 계기가 바로 의총이라는 분석이다.

    강 원내대표가 28일 의원총회를 소집해 김원기 국회의장 사회 저지 등에 관한 토론을 하는 등 소속 의원들의 의견 수렴을 결정한 점도 이런 당내 기류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의총 결과에 따라 원내 전략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 핵심 관계자는 26일 "향후 투쟁방향과 관련해 여러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장외투쟁을 그만하자는 기류가 확산된다면 전략이 수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이 강 원내대표는 실제로 이날 염창동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으로 투쟁을 계속해 나가겠다”면서도 "내일 모레 의총을 소집해 의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말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