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차별·노예제 [이씨조선], 평양에 [김씨조선](후기조선)으로 변신이승만, [한반도 최초 현대문명 국가] 대한민국 세우다자유민주주의 나라 만들기의 어려움, 화면에 가득했다
  • ▲ 시민들이 우남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 벽에 '리박사 하야, 만수무강'이라고 쓴 벽보를 붙이고 있다. ⓒ이승만기념관.com
    ▲ 시민들이 우남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 벽에 '리박사 하야, 만수무강'이라고 쓴 벽보를 붙이고 있다. ⓒ이승만기념관.com
    ■ 역설적, 너무나도 역설적

    영화 <건국전쟁>에는 굉장히 역설적인 문구가 나온다.

    [리 박사 하야, 만수무강].
    4.19 당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겠다”라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사택(이화장) 앞에 국민들이 붙여놓은 벽보이다.

    하야(下野)를 원하면 [리 박사 하야]만을,
    원하지 않는다면 [만수무강]만을 쓰는 게 상식적이다.
    역설적인 두 개의 문구가 하나의 벽보에 담긴 장면에서,
    그것이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원하면서도,
    [만수무강]을 기원하던 4.19의 민심.
    그 역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한 몸 바친 이승만의 삶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 가장 민주적, 가장 혁명적 개혁을 가장 온건하게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당연하던 조선 사회에서,
    이승만은 누구보다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다.
    그 핵심은 [농지개혁]과 최초의 [남녀평등 교육]에 있다.

    자기 소유가 익숙한 우리에게,
    일한 만큼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가라면 그만한 지옥이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주의 땅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그 소득의 절반 이상을 지주에게 빼앗기는 소작농의 현실이 당연했다.

    이승만은,
    [한반도 최초의 현대문명국가]
    를 세운 뒤(Nation-building) 뒤,
    [농지를 농민이 소유하는] 토지개혁을 단행한다.

    땅이 없어 노예처럼 살던 농민을 땅을 가진 자유인으로 만드는 일,
    지주와 소작농을 평등하게 만드는 개혁.
    1948년의 [농지개혁]은,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가장 혁명적이면서도, 가장 온건하게 진행된] 정책이었다.

    ■ 지금에선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절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신분과 성별의 차별] 은 익숙한 문화였다.
    오죽했으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양반]  [상놈] 이 따로 독립운동을 했을까.

    그러나, 이승만은 달랐다.
    그에게,
    ★ [양반] [노비](노예) ★ [남자] [여자]
    똑같이 교육받아 국가의 주인으로 거듭나야 할 [국민]이었다.

    조선의 여자들은 동물과 동일시되거나 물건으로 취급받았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선말도 제대로 못 하는 여자아이들을 데려다 교육시킨다.
    조선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였다.

    심지어 어린 여자아이가 미국인에게 노예로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여관을 뒤져 아이를 찾아낸다.
    그 아이도 교육받아야 할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도,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는 5·10선거부터였다.
    스위스 여성이 투표권을 부여 받은게 1971년이니,
    무려 23년이나 앞섰다.

    지금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공기처럼 만든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다.

    이씨조선 은 살이있다, 평양

    이씨조선이라는 동일한 배경에서,
    북한(김씨조선, 후기조선)과는 전혀 다른 정치체제의 현대문명국가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에는 [자유와 민주]를 몸으로 지켜낸 [건국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만수무강]을 기원한 국민의 반응은 전혀 역설적이지 않다.
    차별받던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만큼 소중했다.

    <건국전쟁>의 하이라이트.
    현대사의 역설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이 나온다.

    자유당 이 쳐놓은 [인의 장막] 에 갇혀있던,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은 3·15선거 이후 부정선거의 진실을 알게 된다.
    4·19 시위에서 부상을 당해 입원한 학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
    여파를 걱정하는 이에게 “불의를 보고 싸울 줄 아는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이 살아있음이 오히려 기쁘다”라던 이승만.

    그의 뒤안길에 국민들은 [리 박사 하야, 만수무강]을 보냈다.

    ■ [자유와 민주]의 무게

    [자유와 민주]란 이런 것이다.
    입으로만 “평화, 평등”을 외쳐야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물건 취급받던 어린아이가 교육을 받아 국민이 되고,
    지주의 노예로 살던 농민들이 자신의 땅을 소유하게 된 개혁.
    우리 건국과정이 빚어 놓은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의 한 장면이다.

    오늘날 입으로만 ‘민주’를 외치고 실제론 '전체주의적 행태' 를 취하는 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아까울 때가 너무도 많다.
    그렇기에 [하야][만수무강]이 함께 담긴 장면에서 마음이 아려왔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건국 1세대들이 짊어졌던 무게가 영화 <건국전쟁>에 녹아있다.

    차별이 당연하던 시기에, [자유와 민주]를 몸으로 지켜낸 건국의 세대들.
    그 자유민주주의를 당연히 누리는 우리가,
    역설이 가득한 [건국의 시대]를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 ▲ 시민들이 우남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 벽에 '리박사 하야, 만수무강'이라고 쓴 벽보를 붙이고 있다. ⓒ이승만기념관.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