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의 정체성과 이른바 '중도'의 위선 까발려"김문수는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의 모범"
  • 원광대 학생회장의 민낯 고백

    법대 학생회장 이광백은 대중 활동가 조직인 동그라미의 책임자가 됐다.
    그는 조직 이름을 ‘1995’로 바꿨다.
    김일성이 ‘1995년은 통일의 원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기풍을 잡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조직원들의 용돈을 모두 거둬 필요에 따라 재분배했다.
    공산주의식이었다.
    조직 규율도 정했다.
    학교 수업은 안 했지만, 혁명 이론은 꾸준히 공부했다. 

    ”나 스스로 수령님과 장군님의 전사로 여겼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었어요.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기 위해 지하 혁명조직에 몸담는다고 믿었습니다.
    옛 소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해 놀랐지만, 북한이 당당히 버티는 걸 보고 자부심을 느꼈어요.
    주체사상의 우수성이 드러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는 2012년 5월 20일 자 중앙 선데이 인터뷰 기사다.
    인터뷰 상대자는 원광대 주사파였다가 훗날 자유 우파가 된 이광백 씨.
    필자도 그런 ‘자유주의 운동가’ 이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이 기사를 인용한 이유는,
    그만큼 198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은 NL 주사파가 장악하고 주도했다는 것을 상기하려는 것이다. 

    개중엔 주사파가 아닌 계열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학생운동 천하는 갈수록 주사파 일색이 되었다.
    이건 엄연한 사실(fact)이다.
    누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왕년의 주사파들에게 "청산한다고 선언한 적 있나?"
    사상투쟁사의 획기적 모멘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 앞에서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다.
    왕년의 학생운동은 주사파 운동이었다.
    그 주역들이 그걸 청산한다고 선언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야당은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김문수 위원장의 말을,
    이광백 씨의 인터뷰 기사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백으로 입증하고 있다.
    사실인 데야 어쩌겠는가? 

    김문수 경사노 위원장은 지금 엄청난 사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건 2020년대 한국 정치사, 사상 투쟁사의 획기적인 모멘텀이 될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좌익을 정면 겨냥

    1. 김문수 위원장은,
    오늘의 좌익 운동권의 사상적 정체성을 완전히 홀라당 까발리고 있다. 

    운동권은 자기들끼리는 ‘학생 시절 이광백’처럼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외부를 향해서는 그 정체성을 감춘다. 

    그리고 민족주의자, 가난한 사람 편, 불의에 맞서는 사람 정도로 처신한다.
    그래야 극좌를 꺼리는 대중을 속이고 광범위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문수 위원장은 저들의 이 시커먼 속셈을 적나라하게 벗기고 있다.
    운동권은 그래서 김문수 위원장의 폭로에 사생결단으로 대든다.
    ”저 사람이 우리 장사를 망치려는구나“

    김문수가 누군가?
    왕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노동운동가, 혁명가였다.
    그 누구보다도 운동권의 내막과 실태를 환하게 꿰뚫어 보는 도사다.
    이런 김문수의 공격이 그들에겐 다른 누구의 공격보다도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른바 '중도'의 허구성에도 도전

    2. 김문수의 투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이번 사상투쟁은,
    범우파 내부의 ‘투항적 중간파’의 사이비성, 위선, 오류에 대해서도 뼈 때리는 격파(擊破)가 되고 있다.

    범우파 안의 일부는,
    극좌 운동권에 공포, 부채의식,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왕년의 권위주의 수혜층 일부,
    겁나서 운동권 투사가 되지 못한 데 대해 운동권에 미안한 마음을 품어 온 자들,
    회색인들,
    운동권 득세에 위축이 된 자들,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완전히 좌익으로 갈 수는 없는 자들인지라,
    스스로 ‘중간’ ‘중도’를 자처하며 어중간하게 걸쳐 있다.
    이런 유형은 보수 정계에도 있고,
    특히 미디어 쪽에 많다.

    ‘중도’는 물론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중도’는,
    좌익에 겁먹고 아첨하는 교활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그들은 극좌를 ‘진보’라고 불러주면서
    정통 우파, 아스팔트 자유 행동가들을 ‘극우’라고 모함한다. 

    그들은 운동권의 전체주의 정체성을 눈감아주면서,
    그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아니, 미움을 사지 않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극좌 혁명 편을 들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실각시킨 촛불 정변 때,
    그들은 최선봉에서 가짜 뉴스를 만들고 퍼뜨리고 선동했다. 

    김문수의 이번 사상투쟁은 극좌 운동권의 민낯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비 우파, 배신 우파, 가짜 중도의 오류도 여지없이 격파하고 있다.
    ”극좌 운동권은 너희들처럼 다뤄선 안 되고, 나처럼 정면으로 때려 부숴야 한다“는 시범이다. 

    이런 김문수를 죽인다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에 경고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힘이,
    만약 김문수 편을 들지 않고 좌익의 반란에 밀린다면?
    그러면 그것은 김문수의 죽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의 죽음이 될 것이다.
    김문수는 영웅적 희생타가 될 것이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제2의 탄핵 행위처럼 될 것이다.

    비(非) 좌파라는 미디어들도,
    이번에 또 좌파 편에 서서 행여 김문수에게 등을 돌리면,
    그것 또한, 제2의 '탄핵 질'처럼 될 것이다. 

    김문수는 외롭지 않다.
    외롭게 둬서도 안 된다.
    그는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자유인은 방관자가 되지 말고, 수많은 김문수가 돼야 한다.

    특히 국민의 힘이 각성해야 한다.
    이 시대 자유 투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쳐야 한다.
    한심한 그대들,
    어떻게 해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