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반의사불벌죄' 조항 관련 "수사기관 초기 개입 어렵고 2차 범죄 원인"스토킹범죄 4건 중 1건 '처벌 불원' 기각… 실형은 고작 5.6%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19일 이원석 검찰총장, 경찰청 방문… "스토킹범죄 대응 부족… 검경 적극 협력"전문가들 "스토킹범죄, 강력범죄로 인식해야… 현재보다 법 강화돼야" 제언
  •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 모씨가 지난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전 모씨가 지난 1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법무부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해사건'의 대책으로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가해자 위치추적장치 부착'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스토킹 처벌 및 피해자 보호와 관련한 법·제도의 미비점이 속속 드러나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이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수사기관의 개입에 어려움이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문제가 생겨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신속히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2020년 12월 말 스토킹처벌법 제정 논의 당시 정부안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이전에도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당시 법무부와 검찰은 "피해자 의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 삭제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지난해 4월 제정, 10월21일 시행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극에 달하면서 반의사불벌죄 폐지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번 신당역 역무원사건을 살펴보면 피의자 전모 씨는 지난 1월 스토킹으로 추가 고소당해 피해자에게 20여 차례 메시지를 보내 합의를 강요했다. 애초 이 조항이 없었다면 합의를 요구하며 괴롭히는 일이 없었을 수 있었지만, 결국 전모 씨는 피해자를 상대로 보복살해를 자행했다. 스토킹을 막기 위해 시행된 반의사불벌죄가 오히려 독이 돼 스토킹 피해를 키우게 된 것이다.

    잔혹해진 스토킹범죄에 솜방망이 처벌… 지적 이어져

    스토킹처벌법은 논의를 시작한 지 22년 만인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에도 관련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해당 범죄로 인해 검찰에 송치된 4553명 중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진 인원은 254명에 그쳤다. 비율로 따지면 겨우 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재신고하더라도 구속 수사가 진행된 비율은 더 낮았다. 7772건의 스토킹 재신고 중 구속 수사는 211건으로 2.7%에 그쳤으며, 약 80%는 경찰에 입건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반의사불벌죄' 조항으로 재판 없이 종결돼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은 스토킹사건도 많았는데,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공소기각'된 사건은 100건 중 25건으로, 4건 중 1건꼴이었다.
  • ▲ 이원석 검찰총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윤희근 경찰청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이원석 검찰총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윤희근 경찰청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불송치 스토킹사건 전수조사… 검·경 협의체 신설할 것"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또 스토킹 초기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위치추적 조치를 신설해 2차 범죄 예방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문재인정부 당시 법무부가 사실상 해당 조항을 유지했던 결정을 뒤집는 결정이다.

    이원석 신임 검찰총장은 이날 경찰청을 방문해 윤희근 경찰청장과 민생침해범죄 대응을 위한 검·경의 긴밀한 협력을 논의했다.

    이 총장은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과 관련해 "그간 우리 사회가 스토킹범죄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지 못한 것에 깊은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현재 있는 법령 내에서 피해자 안전을 가장 주안점으로 두고 경찰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 역시 "현재 경찰이 가진, 혹은 이미 불송치 결정한 전국 스토킹사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이어 "검찰과 관련 협의체를 신설하겠다"며 "피의자의 보복 또는 위험성이 있는지, 피해자 보호조치를 더 강화할 필요가 없는지 다각도로 검토해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토킹범죄는 강력범죄 전초단계… 위험성 제대로 짚어야"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신당역 살인사건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스토킹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킹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피해가 없기에 가벼운 범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제한 이 교수는 그러나 "스토킹범죄는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전초단계이기에 그 위험성은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형벌의 목적 중 하나가 범죄 예방인데, 그런 측면에서 스토킹처벌법이 현재보다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반의사불벌죄 폐지에 따른 부작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해당 법은 형벌이라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나친 형벌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공리주의에도 어긋날 수 있다"고 약간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장윤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스토킹은 우선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유형이라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에서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것 같다"며 "개인적으로 영장을 발부하는 단계에서 스토킹범죄는 강력범죄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 폐지 문제와 관련 "성범죄 조항에서 '친고죄' 부분이 일괄삭제돼 재판 자체가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보니 가해자 측에서는 합의를 종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애초에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될 때부터 반의사불벌죄는 빠져야 된다는 입장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장 변호사는 "이번 사건으로 너무 뒤늦게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빠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며 "진작에 없었어야 하는 조항인데, 지금이라도 이런 이야기가 나와 다행"이라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또 반의사불벌죄 폐지 이후 부작용 여부와 관련 "개인적으로 크게 우려되거나 예측되는 부분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