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은 틀린 사실에 대한 '확증편향'이라 할 수 있다. 확증편향이 심해지거나 다수가 공유하게 되면 집단사고가 되어 다른 의견을 배척하게 된다.
  • ▲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권창회 기자
    ▲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권창회 기자
    지난 4월 15일 총선이 종료된 이후 한국 사회는 일부 인사들의 부정선거 주장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11월 3일 실시된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도 최근 근거없는 주장이 난무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선거부정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 측의 주장이 여과없이 한국 사회로 전달되고, 그러면서 각종 음모론(conspiracy theory)으로 연결되고 있다. 딥 스테이트(Deep State)나 일루미나티(Illuminati)라는 집단 이름이 수시로 거론되고, 이들의 음모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자신만이 이러한 음모를 자신이 알고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하는 태도도 보인다.

    그러나 4.15부정선거도 근거 없는 주장이고, 미 대선도 바이든의 승리로 확정되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이 제시한 50여개의 소송은 대부분 기각되고 있고, 12월 5일 캘리포니아 주가 선거결과를 확정함으로써 바이든은 공식적으로 279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은 270명), 당선이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등록자다 투표자가 많다거나, 사망자가 투표했다거나, 트럼프 지지표가 바이든 지지표로 둔갑했다거나, 참관인 없는 곳에서 몰래 개표를 했다는 등의 트럼프 대통령 측의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법무부장관이 12월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결과를 바꿀만한 부정이 없었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선거부정 주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트럼프의 재선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해도 이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이미 음모론에 너무나 깊숙하게 빠져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비롯한 사회관계망(SNS)에는 다양한 음모론이 도배를 한다. 정치인들의 언행은 절대로 말 그대로 이해되지 않고, 무서운 음모의 일단일 것으로 추측한다. 

    유명인사들이 자살한 것은 대부분 타살한 후 자살로 위장한 것으로 단정한다. 최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과 관련해서도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일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유튜버들이 다양한 음모론을 생산하거나 확산시키고 있고, 선량한 시민들은 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국민여론이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음모론에 기반한 가짜뉴스에 의하여 흔들리고 있고, 여론정치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이 위협받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러한 음모론의 해악을 살피고, 해소 방안을 고민해야할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지나친 음모론은 국가안보도 위협

    음모론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제반 사회 현상도 어떤 세력이나 사람이 몰래 꾸며놓은 결과라는 해석이다. 이것은 당연히 일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내용을 자신만 안다는 선민의식을 갖게 만들어 빠르게 사회에 확산된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정변이나 혁명의 대부분은 프리메이슨(Freemason)과 같은 비밀결사가 계획 및 시행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확산되어 있고,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의 배후에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도 1963년 케네디 암살 이후 음모론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일루미나티'라는 조직이 은밀하게 세계를 조종하면서 중요한 사건을 계획 및 야기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딮스테이트와 같은 음모집단이 자신을 제거하려하고 있고, 이들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가볍게 회자될 경우 음모론은 심각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가십(gossip) 정도에 그칠 것이고, 사회도 자연스럽게 극복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칠 경우 국민여론을 왜곡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심해지면 국가안보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과 관련한 부정선거 주장은 정권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고, 애국의 대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검찰 등을 비롯한 국가조직에 대한 음모론은 군대로까지 확산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도 격감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총력전 준비태세가 저해될 수 있다.

    음모론 해소위한 총체적 노력 필요

    음모론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정부가 제반 사항을 적시적 충분한 내용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부가 설명을 하지 않을수록 국민들은 자세한 설명에 기갈(飢渴)을 느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음모론이 들려오면 솔깃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제반 사안에 대한 대통령과 관련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대(對)언론 및 대(對)국민 브리핑이 요구된다.

    당연히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언론은 정확한 팩트(fact)를 수집하여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가짜뉴스가 발을 붙힐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언론인의 사명감이 요구된다. 전문성과 사명감 있는 언론이 버틸 경우 음모론은 잠시 출현하더라도 곧 사라지게 된다.

    최근 음모론의 확산에는 일부 유튜버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구독자 및 시청자를 확보해야 어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되거나 자신의 권위가 높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정적인 보도를 선호하게 되고, 한번 맛들이면 계속하게 된다. 유튜버들이 언론인으로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구비하여 근거없는 말이나 일을 함부로 확산시키지 않아야 한다. 유튜버들이 자체적으로 정화하지 않을 경우 결국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통제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 ▲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 각자가 음모론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각자의 노력이 합해져야 전체 국민의 지성과 지식수준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한 두가지를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수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유튜버보다는 정상적인 언론을 신뢰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캄의 면도날' 활용 필요

    음모론은 틀린 사실에 대한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라고 할 수 있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부합되는 정보는 선호하는 대신에 반대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배척하게 되고, 따라서 음모론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확증편향이 심해지거나 다수가 공유하게 되면 집단사고(集團思考, Groupthink)가 되어 다른 의견을 배척하거나 동료들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도록 압박하게 된다.

    국민들은 확증편향과 집단사고의 개념을 이해하는 가운데, 그의 폐해를 자각하고, 자신이 빠져 있는 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빠져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당연히 빠져 나오고자 노력해야 한다. 국민 각자는 다양한 출처를 통하여 정보를 획득하고,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말을 어떤 말을 들었더라도 어느 정도만 수긍하는 가운데 변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있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이 만든 진위 판별의 기준으로서, 간단하게 말하면 전제가 많은 설명일수록 틀릴 가능성이 높고, 가장 상식적이고 간단한 설명이 타당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참외밭에서 허리를 구부렸을 경우, 하필 참외밭에서 신발끈이 풀렸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발끈을 매기 위하여 허리를 구부렸다는 설명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희귀한 설명이 맞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가능하면 상식을 따른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고, 그러한 상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독서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음모론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에서 억제되지 않을 경우 국가라는 공동체를 결정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음모론이 확산되는 이유를 식별하여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경주할 필요가 있고, 개인도 나름대로 음모론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