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부터 신부전증으로 투병…1989년 "교원의 정치적 중립" 강조하며 전교조 불법규정
  • ▲ 정원식 전 국무총리. ⓒ뉴시스
    ▲ 정원식 전 국무총리. ⓒ뉴시스
    총리 시절 3차례 북한을 오가며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이끌어 냈던 정원식 전 총리가 12일 오전 10시께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원식 전 총리는 3개월 전부터 신부전증으로 투병했다.

    1928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자신이 졸업한 과의 조교수가 됐다. 1974년 서울대 교육학과 정교수로 승진했고, 1979년 서울대 사범대학장을 맡았다. 이후 교육학자로 살던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1988년 12월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 됐다. 그는 1990년 12월까지 장관직을 맡았다.

    노태우 시절 문교부 장관으로 전교조 불법 규정

    정 전 총리가 문교부 장관이던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생겼다. 그는 ‘교육공무원법에 따른 교원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내세워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이에 따라 해임되거나 구속됐다. 이로 인해 정 전 총리에 반감을 가진 좌파 인사들이 생겨났다.

    문교부 장관을 그만둔 정 전 총리는 1991년 3월부터 한국외대, 덕성여대에서 강사로 소일했다. 그러다 노재봉 당시 국무총리가 사임하면서 같은 해 5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정 전 총리는 국무총리 취임을 앞둔 6월 3일 한국외대에서 고별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와 페인트 세례 공격을 받았다.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한 데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전교조 선생님 살려내라”며 그를 공격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로 사상자가 종종 발생하던 때였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맡은 노교수가 밀가루와 페인트를 뒤집어 쓴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대학 운동권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북측으로부터 남북기본합의서·한반도비핵화선언 이끌어낸 대북전략가

    그는 총리 재임 시절 평양에 3번을 다녀왔다. 남북고위급회담에도 정부 대표로 나섰다. 정 전 총리는 북한과의 협상 끝에 1991년 12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냈다. 북한 측이 ‘남북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원칙을 담은 내용에 서명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어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연형묵 당시 북한 정무원 총리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 등이 북한에 내미는 내용은 정 전 총리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같은 해 10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그는 12월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민주자유당 대선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사상 처음으로 생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난 정 전 총리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국교육학회 회장, 천원 오천석 기념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