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기행⑤]맥빠진 총통 선거운동, 투표 당일 많은 홍콩인들 민진당사 찾아
  • ▲ 12월 21일 한궈위 시장 파면행진에 등장한 소품들ⓒ허동혁
    ▲ 12월 21일 한궈위 시장 파면행진에 등장한 소품들ⓒ허동혁
    12월 3일 대만 총통 및 입법위원(국회의원) 후보 기호 추첨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된 선거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이미 홍콩 중국강제압송법 시위 때문에 총통 선거는 맥이 빠져 있었고, 입법위원 경합 선거구에 관심이 더 집중됐다.

    국민당은 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정당(126년)답게 당원들의 선거운동에서는 안정적인 이미지가 돋보였다. 반면 1986년 야당으로 출발한 민진당은 뭔가 갈망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은 홍콩 시위 쓰나미 앞에서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민진당이 홍콩시위를 선거에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소용없었다.

    ‘민진당이 홍콩시위를 악용하고 있다’는 국민당의 주장 안 통해

    국민당은 입법위원 부분구(不分區,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실수를 저질렀다. 우둔이(吳敦義) 국민당 주석이 자신을 부분구 후보 당선권인 14번에 공천하고, 친중 인사로 분류되는 퇴역 장성을 4번에 공천했다. 이는 선거기간 내내 우 주석의 지나친 사적 공천이란 비난에 시달렸고, 결국 국민당 부분구는 13번까지 당선돼 우 주석은 낙선했다.

    12월 21일 국민당 한궈위 카오슝 시장 파면촉구 행진과 지지행진이 카오슝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파면촉구 행진에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한궈위를 찍었다는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이들은 대만 언론들의 질문에 대부분 “속았다” “후회한다”고 답했다. 또한 이 행진을 앞두고 대만의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대만협회(AIT)가 대만 거주 미국인들에게 폭력충돌 위험이 있다며 이 행사에 접근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실제로 양쪽 행진 도로의 최단간격은 4.2킬로미터였으며, 행사 참가자가 지하철 내에서 마주치는 것은 목격했지만 충돌은 없었다. 그렇지만 AIT의 권고는 한펀(韓粉, 한궈위 극성팬)의 폭력·과격성을 우려한 것이었다.
  • ▲ 12월 21일 한궈위 시장 파면행진에 등장한 소품들ⓒ허동혁
    ▲ 12월 21일 한궈위 시장 파면행진에 등장한 소품들ⓒ허동혁
    12월 21일 한궈위 시장 파면촉구 행진은 대만선거 결과의 예고편

    미국은 이렇게 중국 ‘매국 투어’에 다녀온 한궈위를 우려하고 있었다. 당시 한펀은 여전히 한궈위가 승리할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었으며, 다른 집회에서 질서 유지 요원에게 길을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등, 선거 기간 중에도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한궈위 파면집회 참가자수(50만 명)는 지지 집회 규모(35만 명)를 여유 있게 넘어섰고, 파면 집회에 많은 청년들이 몰린 반면 지지 집회에는 중장년층만 보였다. 총통선거 결과의 예고편 같은 하루였다. 이날 카오슝에는 2018년 지방선거 때의 파격적인, 친근한 스타일로 서민층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던 한궈위의 인기는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블루칼라가 주지지층인 한궈위가 같은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는 청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특이한 지지 구조로는, 총통선거 같은 전국단위 선거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2020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한 민진당 후보 평균연령은 52세, 국민당은 57세로, 국민당의 연로한 이미지도 극복하지 못했다.

    또한 한궈위는 지방 선거 때의 많은 공약을 이런저런 이유로 이행하지 않아 거짓말쟁이 논란에 휩싸이고, 중국 투어에서의 친중 행보에다 홍콩시위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로, 확실한 반중성향을 지닌 대만 청년층은 한궈위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한편 입법위원 선거판세 역시 2016년 선거와 비슷하게 민진당 우위로 흘러가고 있었고, 국민당이 우위를 지켜온 선거구는 별 이변 없이 수성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선거 전략이지만, 대만에서도 각 당이 초반 선거구도 전략을 잘 잡으면 후보들은 보통 여유 있게 선거운동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모바일과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는 현장 중심의 선거운동이 돋보여 90년대까지의 한국의 선거문화와 흡사했다.
  • ▲ 투표 전날 대만동부 화롄 (花蓮)에서 행진 유세중인 화롄왕 푸쿤치 (傅崐萁)  무소속 후보.ⓒ허동혁
    ▲ 투표 전날 대만동부 화롄 (花蓮)에서 행진 유세중인 화롄왕 푸쿤치 (傅崐萁) 무소속 후보.ⓒ허동혁
    대만 선거판, 90년대까지의 한국 선거판과 흡사

    지역구를 잘 다져놓은 다선의원을 험지로 옮기게 하는 경우는 없다. 거물급을 일부러 맞붙게 하여 박빙 판세를 만들지도 않는다. 선거 막판이 되자 열세 후보들의 상대방 후보 흑색선전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박빙 선거구가 거의 없었던 이번 선거에서 이런 흑색선전이 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만 동부 화롄(花蓮) 선거구는 입법위원 3선, 현장(縣長) 재선 경력으로 ‘화롄왕’으로 불리는 무소속 푸쿤치(傅崐萁)와 민진당 여성 현역의원이 맞붙고 있었다. 푸 후보는 대만에서 가장 연설을 잘 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졌는데, 2018년 현장 재직 중 내부거래법 위반 구속 전력 때문에 국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20년 이상 다져온 그의 지역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투표일 전날 밤 동시 진행된 푸 후보와 민진당 후보의 행진을 모두 찾아갔다. 푸 후보의 인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푸 후보가 친국민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이 그에게 열광했다. 화롄의 선거구도는 사실상 푸 후보가 나오는 선거는 무조건 당선되는 구조였고, 국민당이 별도 후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푸 후보는 결국 당선됐다.

    다른 일부 지방 선거구에서는 돈 봉투 살포행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유력 정당과 무소속 후보가 경합을 벌이고 있는 한 오지 선거구를 찾아갔더니 특이하게도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집회나 차량유세가 열리지 않았다.
  • ▲ 선거당일 밤 민진당사 앞에서 '홍콩 독립으로 우리 산하를 지키고 폭정에 항거할 것을 맹세하여 시대혁명을 이루자' 는 격문을 들어 보이는 홍콩시민ⓒ허동혁
    ▲ 선거당일 밤 민진당사 앞에서 '홍콩 독립으로 우리 산하를 지키고 폭정에 항거할 것을 맹세하여 시대혁명을 이루자' 는 격문을 들어 보이는 홍콩시민ⓒ허동혁
    여전히 지방에 남아있는 돈 봉투 살포

    지방선거 직전부터 연락을 유지해 온 후보와 후보 가족들에게 선거운동 취재를 의뢰하니, 가택방문 선거운동을 한다면서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후보에게 직접 부탁해도 계속 사절 당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지역 선거에서 한발 멀어져 있던 다른 당 지역당부에 가서 물어보니 “돈 봉투를 돌리고 있기 때문에(買票) 사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1인당 5000대만 달러 (약 19만 7000원) 정도를 살포한다는 것이다.

    선거구도상 돈 봉투 살포가 승리의 관건이라고 각 후보 진영이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그 지역의 또 다른 유력 무소속 후보는 돈 봉투를 뿌리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두 후보의 전과 경력 비난 광고를 지역 신문에 끊임없이 올리고 있었다. 결국 결과는 정당후보가 당선됐고 흑색선전에 열을 올린 후보는 3위에 그쳤다. 이런 모습도 한국의 80~90년대 선거풍경과 흡사했다.

    1월 11일 당일 투표율은 74.9%였다. 대만의 투표시간은 주말 오후 4시까지다. 2019년 11월 오후 10시 30분까지 실시한 홍콩 구의회 선거 투표율이 사상 최고인 71.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만의 투표 열기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1일 밤 타이페이역 인근 민진당사 앞 도로에는 대만 거주 홍콩인은 물론 홍콩에서 직접 왔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이들은 홍콩 시위복장인 검은 옷과 모자 마스크 그리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깃발을 들고 있었다. 예전 선거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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