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총선 승리 돕겠다" 장담… "사적인 만남" 주장에 "만남 자체가 부적절" 비판
  • ▲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 원장이 21일 오후 강남의 모 한정식집에서 4시간의 만남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더팩트
    ▲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 원장이 21일 오후 강남의 모 한정식집에서 4시간의 만남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더팩트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정치권 복귀 일주일 만에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비공개로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뜨겁다. 집권당 싱크탱크의 수장인 양 원장과 국가의 정보 총책임자인 서 원장의 만남이 내포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의미 때문이다. 야당은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 약속을 어긴 것"이라며 서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 등을 통한 진상규명 등을 촉구했다.

    27일 '더팩트' 보도에 따르면 양 원장과 서 원장은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오후 6시20분쯤부터 오후 10시40분쯤까지 4시간 이상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이날은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국회에서 양정철 체제 하에서 첫 공식 토론회를 개최한 날이다. 하지만 신임 수장인 양 원장은 '중요한 당 업무'를 이유로 토론회에 불참했다.

    더팩트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서도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서 원장이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로부터 경호를 받으며 대기 중이던 차량에 오르자 양 원장이 90도로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정치 복귀 1주일 만에 국정원장 만나 ‘90도 폴더 인사’

    양 원장의 정치 복귀 일성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여당의 총선 승리를 돕겠다는 것이었다. 11개월 앞둔 내년 총선에서 당의 전략과 정책 수립 등을 총괄하는 그가 복귀 일주일 만에 국정원장을 만나 술잔을 기울인 것이다. 양 원장은 19대 대선 캠프에서 같이 일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같이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곤 했다"고 말할 정도로 '애주가'로 정평이 났다. 

    국정원장은 청와대와 함께 공식 보고 의무가 있는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도 독대가 쉽지 않은 인사다. 바른미래당 소속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은 더팩트 취재진에 “지난 6개월간 서훈 국정원장을 독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만난 것도 정보위 회의 할 때를 제외하면 1시간을 넘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역시 직접 국정원에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선거에 개입한 과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정권 핵심 인사인 두 사람이 장시간 만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 원장은 민주당과 오랜 인연이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탈락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 "기자정신은 황색 저널리즘과 달라… 적당히 하라" 불쾌감

    이 같은 논란에 양 원장은 "그날 만찬은 독대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함께한 사적 모임이었다"고 해명했다.

    양 원장은 27일 오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서 원장께 모처럼 문자로 귀국인사를 드렸고, 서 원장께서 원래 잡혀 있었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 모임에 같이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어 "사적인 지인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양 원장은 "취재와 보도 경위에 여러 의문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부터 전철 한 시간, 식당 잠복 서너 시간을 몰래 따라다니며 뭘 알고자 한 것인가? 추구하고자 한 공적 이익은 무엇인가? 기자정신과 파파라치 황색 저널리즘은 다르다.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매체도 아무쪼록 관련 내용과 영상 사용에 신중을 기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과 만남이 이례적'이라는 질문엔 "지인들, 일행들과 만나는 식사자리였다. 다른 일행이 있는데 (서 원장과) 긴밀한 얘기가 나올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적절한 만남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엔 "그것은 각자 판단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 원장은 양 원장과 만남에 대해 별다른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다.

    "민감한 얘기 없어" 해명에도 남는 의문

    양 원장의 해명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민감한 시기, 그것도 대통령의 최측근과 국가 정보기관 총책임자의 회동은 누가 봐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정권 국정원장 세 명이 정치개입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례를 지적하는 주장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관련 부서를 폐지하는 등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해 노력했고, 국정원법 개정을 통한 법적·제도적 뒷받침 등 후속 절차도 남아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 스스로 국정원의 탈(脫)정치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업무를 전면 폐기하고, 대북한 및 해외 안보 및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최고의 전문 정보기관인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특히 2017년 6월1일 서훈 국정원장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국내정치 정도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하는, 그것은 국민께 우리가 여러 번 드렸던 약속이니만큼 꼭 좀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文, 지난해 국정원 방문해 "정치적 중립 보장" 강조

    이듬해 7월20일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약속한다”며 “결코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 핵심 인사와 국정원장의 회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 정부의 이런 국정원 개혁 노력에 의구심을 살 수 있게 하는 행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양 원장이 정부 출범 직후 굳이 해외로 떠난 이유도 국내에 있을 경우 자신에게 쏟아질 '비선 실세'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현실정치에서는 '막후실세'라는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논란과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양 원장은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그가 정치에 복귀하자마자 하필 국정원장과 회동해야 했는지, 내놓은 설명만으로는 사태가 쉽게 진화되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당 "국가정보원은 민주당의 총선 정보원 아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장외투쟁 종료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법에 정해져 있는 의무 이외의 개입을 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만약 이것(이들의 만남)이 총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 김정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이종현 기자
    ▲ 김정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이종현 기자
    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미 국정원의 선거중립은 물 건너갔고, 선거 공정성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며 "국민적 공분과 우려를 넘어 정보기관 존립 이유 자체를 뒤흔드는 국기문란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민주당의 총선정보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이어 "현재 우리의 국가안보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처럼 중요한 때에 국정원장이란 사람이 본분을 망각한 채 여당 총선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라며 "안중에는 오로지 선거밖에 없는 정권이다. 양정철 원장은 정보기관을 총선에 끌어들이려는 음습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정권, 전 정권 국정원장들에게 어떻게 했나?”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 또한 논평을 통해 "부적절한 만남이 발각된 것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며 "문재인 정권이 전 정권의 국정원장들에게 어떻게 했는가? 문재인 정권 방식과 잣대대로라면 이번 만남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이종철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집권 여당의 연구소 원장이 국정원장을 만날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들의 눈에는 의아하게만 보인다"면서 특수활동비 수수와 정치개입 등으로 조사·처벌받았던 박근혜 정부 국정원을 가리켜 "국정원 정치중립성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들은 강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은 자당 소속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과 논의를 거쳐 정보위 개최를 추진할 계획이다.

    여당 내에서도 "양정철 원장이 사고쳤다"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정원장을 만난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했다는 얘기다. 총리조차 공식석상이 아니면 국정원장을 따로 만나지 않는데, 양 원장이 임의로 국정원장과 회동한 것은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이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靑 "대화 내용 확인 안된 상황, 말할 필요성 못 느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일단 청와대에서 그 (양정철-서훈) 만남을 같이했다든지 한 것이 아니어서 가타부타 말할 것이 없다"며 "사적인 만남이라고 보도를 봤다.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정치 개입이나 국정원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모임에 참석한 청와대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건가'라는 물음에는 "그 부분은 확인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보도 이후 민정수석실에서 이 사안을 확인해보지 않았나'라는 물음에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