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성명 이끈 대북협상 전문가… "北 비핵화 약속 후에 체제보장 해줘야"
  • ▲ 지난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본지와 만난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NCPC) 소장이 북한 비핵화 협상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미국 차석대표로 6자회담을 진행해 9.19공동 선언문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대북 협상 전문가’이다.ⓒ박성원 기자
    ▲ 지난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본지와 만난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NCPC) 소장이 북한 비핵화 협상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미국 차석대표로 6자회담을 진행해 9.19공동 선언문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는 ‘대북 협상 전문가’이다.ⓒ박성원 기자

    조셉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NCPC) 소장은 ‘대북 협상 전문가’이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2003~2005년까지 부시 행정부에서 6자회담 차석대표로 활동하며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오바마 행정부에선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을 맡아 전세계의 핵과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한미동맹 등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까. 본지는 지난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민간기구인 천주평화연합(UPF)이 16~17일 개최한 ‘국제지도자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그가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이끌어낸 9·19 공동성명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한다’는 북한의 약속이 담겼다. 한반도 평화협정, 단계적 비핵화,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 약속, 미북 간의 신뢰구축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2006년 7월 4일 대포동 2호와 노동 1호, 스커드 미사일 5발을 발사한 데 이어 석달 뒤 10월 9일에는 1차 핵실험을 단행해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지난 2월 28일 제2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보인 북한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회담 결렬 2개월여 만인 지난 4일과 9일 두차례에 걸쳐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했다.

    - 6자회담 이후 북한의 모습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모습이 비슷하다. 의도가 뭐라고 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본다.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에서) 대북 제재 해제가 결정되길 원했지만, 트럼프는 단호히 ‘영변은 핵실험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며 거부했다. 6자회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파기했다. 현재 북한도 단거리 미사일에서 장거리 미사일로 점차 공세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추진하고자 한다. 일각에선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공열쇠는 대북 제재다.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 같은 행태에 대해 강한 불만을 (북측에) 전달해야 하지만, 대북 제재를 강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했을 때 제재 수위를 높여도 된다. (그런 측면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인도적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전제조건은 그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제재와 인도적 지원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지만 국제사회의 감시가 있어야 한다.”

  • ▲ 디트라니 전 소장은
    ▲ 디트라니 전 소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더욱 고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며 우리나라 정부에 "일관된 대북 제재 정책을 할 것"을 조언했다.ⓒ박성원 기자

    - 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데, 햇볕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훌륭한 지도자이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만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져온 햇볕정책은 남과 북을 ‘하나의 한국’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북한에는 강경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북한 헌법에 나와 있듯이 ‘통일을 사회주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북한에는 아직도 통일을 이념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강경파들이 많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일관성 있는 대북(제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천안함 피격사건을 거론하며 햇볕정책의 결과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놨다. 한반도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더욱 고조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더욱 고조시켰다”며 “2010년 천안함 침몰로 47명의 수병이 희생되지 않았나. 우리는 그동안 너무 순진하게 북한을 믿어왔던 것”이라고 했다.

    - 한국과 미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약속 같은 것에 대해 순진한 건 아닌가?

    “미국과 한국은 완전하고 입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정책(CVID)에 대해 동일한 입장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협력이나 체제 보장을 선(先) 보장한 후 비핵화한다는 생각이나 점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온다. 북한 요구대로 하는 것은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북한을 완전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디트라니 전 소장은 ‘김정은 체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북한을 대북 제재라는 고립된 상황에 놔두길 원하지 않으며, 그 해결책이 ‘비핵화’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은 북한을 대북 제재 속에서 고립된 채 지내도록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이런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이 ‘비핵화’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김정은이 원하는 건 북한 체제 보장(자신의 권력 유지)와 경제개발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정은을 속이지 말고 핵을 포기한다면 확실히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김정은 체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정은 체제는 기회…완전한 비핵화 전 협상 테이블에 앉지 말라"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북한이 ‘완벽한 비핵화’를 약속하기 전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무작정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하는 것에 급급해하면 성공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핵무기 확산방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확고한 만큼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완전히 버려야 국제사회에서의 ‘정상국가’ ‘경제발전’ 등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