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과 협상학(33) '깡패국가' 북한에 800만 달러 지원?… 잘못된 습관 키울 뿐
  • 불량배가 돈을 달라고 협박할 때 우리의 대응은 어떤 쪽일까? 그냥 얼마 주며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못준다고 대들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후자가 맞지만 많은 경우 다칠까봐 돈을 얼마정도 주더라도 위기를 모면하려한다. 그러나 또 만날 수도 있는 동네 깡패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일 만나면 정기적인 상납이나 더 많은 돈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북 협상에서 원하는 성과를 못 얻어내자 연말까지 협상시한을 일방적으로 제시한 후 미사일 발사 등 노골적인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북한에게는 국제정세도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 중러 방문을 통해 지지세를 넓히더니 반대세력인 일본이 한국을 패스하고 북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이란과 전쟁 준비를 위해 중동 해협에 항모를 파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곱지 않은 국내외 여론을 무릅쓰고 800만불 지원 의사도 밝혔다. 인도주의 명분하에 협상 상대국으로서 어떤 조건도 없다. 정작 지원을 받는 북한은 고맙다는 공치사도 없다. 마치 핵과 미사일의 인질처럼 보호비를 내는 것 같다. 물론 직접 안보 위협이 없는 미국처럼 1차 싱가포르회담 전 트럼프의 협상 거부 편지같이 ‘당신(김정은)보다 더 많은 핵을 갖고 있지만 안쓰길 신에게 기도한다’라는 핵펀치 편지를 날리거나, 하노이에서처럼 협상을 걷어차고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없는 단거리 핵미사일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깡패국가 소리를 듣고 있는 북한에게 선의가 통할지 아니면, 더 큰 피해를 부르는 잘못된 습관들이기가 될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하버드대 협상학과에서는 다루기 힘든 상대를 대할 때 두 가지 원칙을 조언한다. 먼저 원칙의 타당성을 질문하기이다. 상대에게 원칙을 일일이 설명해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상식적이지 않다거나 잘못된 원칙이라는 점을 질문을 통해 명확히 알려주어야 상대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불량배들을 면담하다보면 의외로 본인은 장난이었다고, 실제로 폭력을 쓸 생각은 없었다는 답을 한다. 실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상대의 언행이 내게는 얼마나 심각한지 분명히 알려주어야 본인도 알게 된다. 나아가 당장 위기 극복에 급급한 내 행동과 대안이 원칙을 오히려 무너뜨리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자칫 상대에게 원칙을 더 무너뜨려도 좋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협상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를 대비한 대안 만들기이다. 즉 ‘배트나(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를 준비하고, 필요하다면 상대에게도 슬쩍 흘려두라고 한다. 상대가 부담을 느끼는 배트나는 협상을 내 뜻대로 이끄는 핵심 장치이다. 

    두 가지 원칙은 북한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우리 정부가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전세계 가장 불량 국가인 북한을 상대하는 우리 정부의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분명히 작지 않다. 그러나 그럴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협상학 조언을 가벼이 여기지 않길 바란다. 앞서 동네 깡패도 내가 더 큰 힘으로 제압하거나 경찰을 불러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만이 확실한 해결책이다. 결코 돈을 준다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경찰도 내가 신고하지 않는데 출동하지 않는 것도 상식이다.

    /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