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북한 정권에 기여했지만… 가능성 있다" 발언에 野 '질타'
  •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뉴데일리DB
    ▲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뉴데일리DB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해방 후 월북해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약산(若山)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와 관련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피 처장은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원봉 선생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서훈할 것인가'라는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의 질문에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을 수렴 중이며 (서훈 수여)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피 처장의 답변은 김원봉에 대해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현행 심사기준에 따라 서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보훈처의 기존 입장과 상반된 것이다. 

    이에 정 의원은 "김일성도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했는데 (김원봉을 서훈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면 김일성도 훈장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피 처장은 "우리가 평화와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북한정권에 기여했다고 해서 (서훈 수여를) 검토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며 "물론 북한과 6·25전쟁을 치렀지만 그런 부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훈은 통합의 의미도 있다"며 "그 시대에 공헌 있는 분을 그 자체에 대해 기려가면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훈처가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이 가능한지에 대해 정부 법무공단 등 3곳의 기관에 법률검토를 의뢰한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1898년 경남 밀양 출생인 김원봉은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의 일제 수탈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 독립운동을 했다. 1942년에는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다. 

    그러나 해방 후인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해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에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그 후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북한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11월 김일성의 옌안파[延安派] 숙청 때 함께 숙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