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웹하드 업계 ⑥ 뒷말 나오지 않는 불법사업, 비자금 조성에 제격
  • ▲ '양진호 논란'의 시발점이 된 폭행 영상. 이 영상이 양진호 전 회장 몰락의 시작이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양진호 논란'의 시발점이 된 폭행 영상. 이 영상이 양진호 전 회장 몰락의 시작이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첫 공판이 2월21일로 연기됐다. 첫 공판인 만큼 양 전 회장의 범죄행각이 얼마나 드러날지 관심을 끌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공판을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양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와 언론 보도를 지켜보면서 '양진호가 사라진 웹하드 업계는 누가 장악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매출 연 수백억 이상인 웹하드, 일부 정치세력 군침

    얼마 전 한 지인이 찾아와 양 전 회장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최근까지 웹하드 업계와 관련된 일을 했던 지인은 “양 전 회장과 ‘여기어때’의 심명섭 대표 등이 사법처리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귀띔했다. 특정 세력이 무주공산이 된 웹하드 업계를 노린다는 말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지인이 말한 ‘세력’이 웹하드 업계에 군침을 흘리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어서였다. 그 특정 세력은 바로 정치권이었다.

    지인의 이야기는 이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정치권은 웹하드 업계를 “어린애들 코 묻은 돈 빼앗는, 푼돈이나 만지는 업계”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러다 2008년 광우병 촛불사태 이후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밝힌 재산이 수백억원대에 이르고, 2012년 3월 ‘나꼼수’의 서버 관리업체였던 ‘클루넷’ 대주주가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될 당시 거론된 금액이 역시 수백억원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새삼 웹하드 업계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동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단속이 심해지고, 대부분의 웹하드 업체가 사라지고 양 전 회장의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등이 업계를 장악했다. 이후 양 전 회장과 그 주변 사람들은 사법부와 행정부, 정치권에 엄청난 돈을 뿌렸다. 정치권에서는 이때부터 웹하드를 괜찮은 사업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지인의 설명이다. 정치자금의 흐름이 비교적 투명해지자 생각만큼 뒷돈을 챙기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언론의 눈에 덜 띄는 웹하드 업계를 노렸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2016년 11월까지만 해도 양 전 회장을 포함해 남아 있던 웹하드 업체들은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는 게 지인의 주장이다. 이때부터 양 전 회장 등으로부터 후원받은 정치권 인사들이 웹하드 업체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

    언론을 통해 알려진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매출은 2017년 기준으로 각각 201억원과 16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52억원과 98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웹하드 업계에서는 “실제 매출액은 그보다 훨씬 크다”고 지인은  귀띔했다. 지인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으로 보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사실상 조 단위 자산을 가진 기업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 ▲ '양진호 논란'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방한 때 양 전 회장의 로봇을 탄 것이 과연 우연일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관련영상 캡쳐.
    ▲ '양진호 논란'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가 방한 때 양 전 회장의 로봇을 탄 것이 과연 우연일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관련영상 캡쳐.
    웹하드 업체 장악하려는 세력, 누구인가?

    웹하드 업체들은 저작권사용료, 설비투자비용, 인건비 등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다. 영업이익이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웬만한 코스닥 제조업체 오너 부럽지 않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오너와 임원들의 생활비까지 회사 경비로 처리하는 곳이 많다. 
     
    지인은 “그런데 웹하드 업계를 노리던 정치권 세력들이 연매출보다도 적은 금액을 제시하며 업체를 넘기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업체를 운영하는 처지에서 권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들은 불만을 표하지 못하고 헐값에 업체를 넘기고 사라졌지만, 양 전 회장을 비롯해 몇몇 오너는 자신들이 그동안 해온  로비만 믿고 정치권 세력들에 정면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양 전 회장의 구속이라고 지인은 주장했다.

    지인은 “현재 상태로는 조만간 웹하드 업계 전체가 정치권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세력은 그저 권력만 있는 게 아니라 만만치 않은 후원자도 끼고 있다고 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재단법인 관계사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소리 없이 웹하드 업계를 평정해 나가는 사람들 또한 대중이 알 만한 유명인들이다.

    웹하드 업체들, 행정·입법·사법 전방위 로비

    지인은 로비 대상도 거명했다. 여기에는 경찰과 검찰, 법원은 물론 정부 중앙부처 관료와 지자체 관계자, 심지어 전직 청와대 인사까지 포함돼 있다. 지인에 따르면, 양 전 회장이 이들에게 갖다 바친 로비 자금이 각각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을 일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상을 로비에 쓴 양 전 회장은 돈을 건네거나 후원하는 상황을 사진과 녹음파일 등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병이 구속된 뒤 강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자 양 전 회장은 로비 장부를 앞세워 정치권·사법부와 협상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아랫사람들을 노예 다루듯 했던 상황이 문제돼 측근 가운데 일부가 로비 장부를 들고 나와 양심선언을 했다. 그 결과가 현재 양 전 회장의 모습이다.

  • ▲ 24일 첫 공판에 출석하는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4일 첫 공판에 출석하는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인은 “양 전 회장의 로비 장부 수십 권 가운데 일부를 현재 모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인은 “이 장부 내용이 알려지면 엄청난 게이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야와 전·현직을 막론하고 사회 곳곳에서 권력을 쥔 부패세력이 로비 장부가 폭로되도록 가만 놔둘 리 없다. 지인에 따르면 “그 때문에 내부폭로자도 지금 도피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양진호의 변호사, 왜 첫 공판 직전 사임했을까

    양 전 회장의 첫 공판이 언론의 관심을 끈 이유는 그의 로비 대상에 관한 정보가 드러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24일 오전 예정됐던 첫 공판은 양 전 회장의 변호사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2월21일로 늦춰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양 전 회장은 “변호인이 집안에 피치 못할 일이 생겨 사임했다”며 “속히 사설 변호인을 새로 구하겠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또한 사건기록에 변호인으로 돼 있는 이모 변호사를  “형사 담당 변호인이 아니다”라며 “향후 변론 방향은 변호인을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양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출석한 전 직원 등 5명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짓는 등 다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의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양 전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강간, 강요, 상습폭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언론의 관심을 끄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수뢰,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는 없다. 처벌이 무거운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미소 짓는 이유는 아닐까. 이것이 그가 정치권 세력과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