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은 예사… 출석 연기하면 "기피한다" 영장… 증거 압수해 놓고 "증거인멸 우려" 구속
  •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자살했다. 기무사령관 재직 시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 중이었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었는데도 그는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장기각 후 검찰은 “기각한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아마도 심적인 고통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외에도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수사 중 자살을 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구속되기 전 영장심사를 앞두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그것도 고위직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검찰은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수사과정에서 강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사과정에 변호사도 참여했기 때문에 강압적인 수사는 없었다고 반박을 한다. 

    그럼에도 조사를 받고나서, 혹은 조사를 받기 전에 피의자들의 자살이 이어진다. 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경찰과 군·검찰 그리고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피의자 조사과정에 많이 참여해본 필자는 피의자들이 자살하는 원인 대부분이 조사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죄인 취급

    먼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경우 조사를 받기 전부터 피의자는 죄인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 아니 여론에 의해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유죄로 확정이 되다시피 한다. 혐의 내용이 언론에 노출이 되고, 그로인해 가정, 직장, 사회에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한다. 유치장· 구치소에 감금만 되어 있지 않을 뿐 거의 감금상태나 마찬가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사 중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기자들을 피해 숨어 다닌다. 거기에 더해 조사 전에 집과 직장에 대한 압수수색과 직장 부하들에 대한 소환과 구속으로 피의자들이 겪는 심적인 고통이 말할 수가 없다. 압수수색은 당사자의 휴대폰·계좌내역까지 포함되고, 통화내역 등이 추적된다. 

    이 때문에 피의자는 어디 마음대로 통화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변호사와의 통화도 혹시 수사기관이 추적할까 겁이 난다고 한다. 카톡 같은 문자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출국금지까지 당해 여행도 출장도 할 수 없다.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위해 출국금지를 모르고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들은 감옥에 있는 것 보다 더 한 고통에 시달린다. 불면증·우울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수사기관에서 빨리 조사를 하면 좋은데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 당사자는 해명도 제대로 못하고 졸지에 죄인이 된다. 유명 연예인의 경우에는 방송은 물론 가정, 직장에서 거의 매장이 되다시피 한다.  

  • ‘공염불’에 불과한 무죄추정의 원칙

    헌법과 형사소송법 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사실상 ‘공염불’에 불과하다. 특히 오래된 사건일수록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더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사건 내용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기억을 떠올리려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면 수사기관에서는 증거인멸을 한다고 뒤집어씌우기 일쑤이기 때문에 구속사유가 될까봐서 연락도 못한다. 피의자를 아는 지인들도 증거인멸죄로 구속될까봐 연락이 와도 받지를 않는다. 

    수사기관에서 하는 소환통보도 거의 일방적이다. 압수수색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구속을 통해 혐의내용을 거의 특정을 한 후 마지막으로 소환한다. 이미 관련자들이 소환되어 당신의 혐의사실에 대해 진술했으니 부인해도 소용없다는 식이다. 

    관련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원하는 대로 답변을 하지 않으면 입건·구속될 수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사실이 아닌데도 경찰과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였다고 법정에서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후 소환하니 수사기관의 증거는 넘쳐나고 대신에 소환을 받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출석을 하게 된다. 

    해명자료와 변론준비를 위해 출석조사 기일을 연기해달라고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출석을 기피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청구의 구속사유로 삼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수사기관이 원하는 기일에 출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출석과정은 언론에 노출되면서 여론을 통해 피의자가 구속되어야 할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런 게 소위 여론몰이식 수사다. 

    밤샘 조사는 기본

    오전 9시에 출석하면 다음날 새벽에 조사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조사과정에서 긴급 체포되어 유치장에 수감되는 경우도 있다. 조사내용도 5년 전 심지어 10년 전의 일까지 들추어낸다. 피의자가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면 왜 거짓말 하느냐고 다그치기 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을 못하는데 어떻게 5년, 10년 전의 일을 기억하냐고 하소연해도 기억을 환기시켜려고 한다. 당신의 부하는 기억을 하는데 왜 당신만 못하느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 당사자가 경험한 사실, 목격한 사실, 실제 한 사실이 아닌 의견을 묻는 경우도 많다. 수사관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살에 대한 의견을 질문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떠냐”는 것이다. 이 말은 경우에 따라서 수사관이 이미 사건을 틀에 짜놓고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수사관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맞게 답변을 작성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수사 태도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나는 이미 당신의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니 혐의사실을 인정하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원래 수사원칙은 조사받는 사람에게 수사관의 의견이나 생각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질문은 짧으면서도 답변하는 사람이 알기 쉽게 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질문이 길고 용어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질문에 대해 장황한 답변을 하면 “자신이 묻는 말에만 답변하라”고 한다. 

  • 고위직에 대한 인격적인 모멸감

    고위공무원이 피의자가 되었을 경우 검·경 조사과정에서는 호칭이나 말투에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만난 많은 의뢰인들이 수사관으로부터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수사관의 이러한 말투나 언행에 대해 항의를 하면 수사에 방해가 되니 나가달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가만히 조사받는 의뢰인 옆에서 듣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는 의뢰인에게 제대로 조언을 해 줄 수 없다. 조사과정이 진술녹화실에서 녹화가 된다고 하지만 녹화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아니 분명히 진술을 했는데도 조서에 제대로 기재되지 않거나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사가 끝난 후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여 강압적인 조사가 없었다고 하지만 긴시간 조사를 마치면 지치고 힘이 들어 마지못해 조서에 서명날인(무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식사도 조사실에서 하고 장시간 조사 중 제대로 휴식시간을 가져보지도 못한다. 많은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를 한번 받으면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친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를 짧은 시간에 수차례에 걸쳐 받으면 웬만한 사람도 지치게 된다. 

    불구속 수사원칙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

    조사 후에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다. 구속·불구속 여부가 대부분 하루 만에 결정이 된다. 그것도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서류심사에 의해 결정이 된다. 수사기관에서 법원에 올리는 수사서류에는 당사자도 모르는 확인이 안 된 내용이 많이 기재되어 있다.

    법에 규정된 구속사유는 ‘도주와 증거인멸’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사기관의 출석요청에 순순히 응했고 이미 수차례에 걸친 압수수색과 관련자들의 구속으로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영장에 기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재범의 우려’라는 미래의 확인될 수도 없는 내용까지 기재하기도 한다.

    심사당일 구속영장 사본만 받고 영장심사에 응하는 당사자와 변호인과는 달리 수사기관은 많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한다. 판사는 영장에 기재된 내용과 기록에 의해 선입견을 가진 채 단지 영장혐의사실 확인만 한다. 혐의사실을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증거인멸 우려를 들어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도 있다. 

    구속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 변호사도 제대로 재판준비를 할 수 없다. 접견을 위해 구치소를 방문하면 수사기관이 소환하여 제대로 접견을 못하게 된다. 그러니 충분한 변론자료를 준비하지 못해 재판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수사의 원칙’은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겸손할 줄 모르는 수사관

    인권이 강조되는 시대에 이제는 수사기관의 수사의식부터 바뀌어져야 한다. 먼지털기식 수사, 구속성과주의 수사,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한 수사, 여론몰이식 수사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일부 수사관은 자신이 마치 큰 권한을 가진 것처럼 영웅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조사받는 사람을 매몰차게 몰아가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수사관의 모습이 마치 정의로운 모습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업가, 공직자를 상대로 하는 수사의 경우에 이런 현상이 심하다. 위에서는 이런 수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승진과 혜택을 많이 주니 속칭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이 몰린다. 특수부, 특수대하는 소위 ‘특’자가 들어가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수사관 중에는 심지어 “이곳이 어느 곳인 줄 알고 그렇게 답변하느냐”면서 피의자를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

    수사관이 겸손할 줄 모른다. 대부분 법규정과 판례를 들이대면서 몰아가기식 수사에 익숙하다. 이러한 수사과정을 수사감독자들이 모니터링을 해야하는 데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수사관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가 조사받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제대로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수사과정에 변호사참여, 진술녹화실시, 조사내용을 메모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내용만으로는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담보되지 않는다. 더구나 필자는 수사과정을 진술녹화한 내용이 실제 법정에서 현출되는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수사관들의 말과 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조사가 끝난 후에는 조사과정에서의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 한다. 차도 한잔 주면서(때로는 담배도 권하면서) 조사과정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 당사자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나아가 조사받는 사람의 해명과 진술에 대한 확인수사를 하는 배려도 있어야 한다. 수사관이 생각하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편견 속에서 왜곡된 진실에 사로잡혀 당사자에게 사실을 다그치는 조사를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조사를 받는 당사자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조사가 끝난 후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목숨을 끊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드시 물리적인 도구로 때리는 것만이 고문이 아니다. 조사할 때 던지는 한마디 말이 당사자의 가슴을 심하게 때릴 수 있다. 조사 중 혹은 조사 후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뭘 그런 것 가지고 자살을 하느냐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많은 수사관들이 실제로 피의자들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어 자살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총과 칼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글(조서)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현행 문답식 수사, 마구잡이식 압수수색, 무분별한 구속영장청구, 심야조사는 사라져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로 무죄추정의 원칙, 불구속수사의 원칙이 보장되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수사관들도 자신들도 조사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심정을 가지고 조사에 임했으면 한다. 그래서 필자는 경찰·검찰의 수사권조정 논의에 앞서 수사권은 정말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행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약용 선생님이 저술하신 흠흠신서의 서문이 생각난다. 흠흠(欽欽)이란 무엇인가! 조심조심 형(刑)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