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다시 사회주의 체제로 가나?

한국 공교육 개혁의 과제⑤- 공교육 목적과 이념 혼란의 문제
한국 경제의 역사적 흐름 이해하기와 시장경제 부정하는 경제관과 모호한 '교육 목표'

문근찬 숭실사이버대학 교수 칼럼 | 최종편집 2018.10.09 16:11:40
▲ 시장경제 발전을 이룩한 서울 도심의 모습. ⓒ뉴시스

대한민국 헌법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다.1) 정치적 자유가 민주주의라면 경제적 자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둘 다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칙 안에서 작동된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라 제한된 민주주의라야 하고, 국가 권력은 헌법에 따라 제한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정의의 규칙이 지켜지는 한계 내에서 재산권을 중심으로 한 자유가 허용된다. 이렇게 일정한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공간에서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유롭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지난 회에서 공교육이 추구하는 이념과 교육목표가 모호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다음은 공교육에서 추구하는 경제관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바람직하기로는 공교육에서 학생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강조하는 교육이 되고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했는데 어떻게 한국이 지난 세월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취를 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한국은 반만년 역사에 처음 보는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일인당 연 소득 80달러로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에서 2번째였던 나라가 선두에서 10여 등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상식으로 다 알고 있다. 이런 성장을 이루기 전의 한국이 뒤떨어졌던 것은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얼마나 미개하고 야만스러웠던가는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젊은 세대에게는 거의 잊혀졌다. 그러므로 경제성장을 절대로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경제 성장은 사람을 더 도덕적이고 품위 있게 만든다. 

경제 문제는 진공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정치, 이념,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 경제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별로 몇 가지 인용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흔히 경제 문제는 이념이나 안보의 문제보다는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듯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다 같은 문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이념은 사회주의나 집산주의 경제를 하는데, 그 결과 사회는 집단주의, 전체주의 양상을 띠게 된다. 중국이나 북한의 농촌 사람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이 중세의 농노처럼 땅에 매여 있듯이, 결국, 경제는 사회주의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유를 구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상 전체주의 체제에서 노예적 삶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된다. 


▲ 노새를 타고 조선을 여행 중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사진 맨 오른쪽 남장을 한 인물). 비숍은 조선 관찰기를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기록으로 남겼다.

어느 강연을 통해 본 조선 말기의 경제상

우리나라가 근대화하기 이전인 조선 말의 사회상을 알아보는 것은 역사를 통해 한국인에 내재한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나라가 기울고 외세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대개는 들추어내기 싫은 시절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미래를 설계하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싫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취지로 아래의 강연 글을 인용한다. 이 글은 몇 년 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KBS의 보도로 시작된 반대 여론2) 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마저 나가지 못하고 사퇴한 문창극 전 언론인의 강연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글의 내용은 그가 기독교 교회의 장로로서 교회 내 신자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옮긴 것인데, 조선 말 이 땅의 경제 형편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의 1890년대는 선교사들이 처음 이 나라에 온 때입니다. 1890년 조선 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지만, 조선에 상륙은 못 했습니다. 배를 타고 있다 돌아가곤 했는데, 쇄국정책 때문에 그랬습니다. 1890년에 선교사들이 오게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됐습니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주신 다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중요 고비마다 길을 열어주셨어요.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으므로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굽이굽이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습니다. 그 기회가 돼서 지금 이 나라가 됐습니다. 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비숍 여사의 조선 여행기를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비숍 여사)이 한국여행을 했는데, 한 번은 양평을 갔습니다. 그곳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이런 것 있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렇게 볼기치는, 이런 이방이 800명이나 있었다는 겁니다. 이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을 누가 다 먹여 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 살리는 거지요.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들은 다 안대요. 이 사람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잘 알고 있대요.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조금 뭐가 생기잖아요? 농사 열심히 지어서 뭐가 좀 생기면 이방이 부른다는 겁니다. 불러서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예요. 곤장을 왜 치느냐 하면, 자기는 모르겠다는 거야, 왜 치는지. 그런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알렸다. 그러니 고백을 해라”, 그러면서 곤장을 쳤답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야. 그러니 조선사람들은 일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지는 겁니다. 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지는 겁니다.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가 보고 평양을 지나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 보아도 조선 상황은 다 똑같았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지금 블라디보스토크 있는 데를 둘러봤어요. 당시 북간도, 연해주에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느냐 봤더니, 비숍이 깜짝 놀란 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류,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 민족이, 연해주에서는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 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참 놀랍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이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 사니까 그렇게 잘 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 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이런 얘기를 한 걸 제가 책에서 읽었습니다』
▲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출범 축하행사. 이승만은 당시 남한 지식인 대부분이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된 상태에서 자유대한민국을 건립하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와 정서적으로 가까웠던 조선의 지식인들 

위 강연내용을 보면, 문 후보자는 영국 지리학자 비숍 여사의 ‘조선과 이웃 나라들(1897년)’을 인용해 조선사람들이 더럽고 게으르지만, 그 원인은 관리들이 수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한결같이 러시아인보다 더 깔끔하고 부지런한 것을 보면, 조선인은 원래는 아주 부지런한데, 착취하는 부패 관리들 때문에 일을 하지 않게 됐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3) 이 강연은 이렇게 이어진다. 

『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 사람은 안국동에 집이 백 칸짜리 집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영국 가서 뭘 했느냐? 문학을 했어요. 그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 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편지를 보내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를 보내라고 했답니다. 그 당시 아마 한 학기에 수업료와 생활비로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보내라고 한 거야. 그걸 보고 윤치호가 통탄을 했습니다.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영국 에든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하느냐며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때 지식인들이라는 게 다 똑같았어요. 

그런데 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조선 유학생들이 일하기를 싫어했다, 이거야. 그래서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이나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체질상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왜 그러냐 하면,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하는데, 이것이 유교전통의 조선과 공통점입니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자기 땀으로 일해야 하는데, 야!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의 것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그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 먹고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 버전의 볼셰비즘, 이것이 공산주의죠. 공산주의는 강도질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조선 말기에 우리 민족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서 변화를 시킨 거야. (중략) 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요.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광야에서 방황을 했으면 독립해서 잘 살아야 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그 당시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 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자동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자,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

남북 분단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했으나 아직 사람들의 의식상태가 조선 시대의 일 안 하고 남의 것에 기대어 먹고 살려는 나쁜 습성이 배어 있어서 정서적으로도 공산주의에 가깝고, 또 실제로도 남쪽 지역에 공산주의자가 많았던 상태였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만약 남북이 함께 독립되고 즉시 통일이 되었다면 공산주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 거의 틀림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북 분단이 된 것도 우리 민족의 시련이긴 하지만,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이다. 이 강연은 교회의 장로로서 교회 내에서 한 것으로서 기독교적 수사법으로 이야기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 즉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사에 빗대어 우리 민족의 수난을 하느님의 큰 뜻으로 본 것이다.
▲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역동적인 산업 현장의 모습. 사진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 ⓒ뉴시스

사회주의 체제로 가려는 관성이 남아 있는 한국 사회

이 인용 글을 보면 조선 말 나라가 피폐했을 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 수 없어서 북간도나 연해주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삶을 개척하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비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국가의 이념과 경제 제도에 의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 말은 주자학 전통 속에,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양반이 지배하던 사회로서, 백성이 잘살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보다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수탈하는 일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100여 년 전의 가까운 과거임에도, 전쟁 포로도 아닌 같은 동포 간에 인권 없는 노비가 제도화되어 있었던 것도 한국인으로서는 부끄러운 과거다. 이런 세월을 500년 살아왔으므로 해방 후에 맞은 자유주의 근대 국가라는 옷이 자연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강연 내용에서 보듯이 한국인의 전통으로 미루어 한국인은 사회주의 체제로 가려는 관성이 남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국가 권력이 ‘선의’를 내세워 최저임금 인상이니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지정해 국민 생활을 보살피려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자 이제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임대료 통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규제가 이어진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기업은 규제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기업들이 발목을 잡는 결과를 빚는다. 이 모든 ‘선의’는 하이에크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치명적 자만’이다. 

시장경제는 정확하게, 그리고 적시에 분업적 경제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유인을 산출하며, 분업화된 사회에서 열심히 혁신하고 일하며 저축할 때 자신의 삶이 개선되고 사회가 점차 문명화된다는 믿음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이므로 어느 한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냈다면, 그 기업이 다른 경쟁자보다 소비자에게 더 잘 봉사했다는 증거임을 안다. 사회주의 경제는 아니라 주장하지만 그리 향하는 중간 형태인 간섭주의는, 소비자 중심 원리를 무시하고 특정 이해자 집단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수많은 국가의 개입이 누적되어 사회는 점차 경제적 자유가 고갈되고, 사람들은 자조, 자립하기보다는 정부의 보조금에 기대는 의타심이 커져 점차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변하게 한다. 그 결과 나라 전체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는 가운데, 사회는 ‘지대추구형 사회’4)로 변한다. 

예시된 강연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언론 보도가 사람들의 여론과 사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에 의해 전달되는 역사관이나 경제 이념이 우리의 후대 학생들의 사고 형성에 역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제대로 전달하는 교과서, 그리고 한국이 지향해야 할 근대 국가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이 어떤 사회로 향할 것인지는 젊은 세대가 근대 국가를 향한 열망을 간직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각주

1) 대한민국 헌법 상의 자유민주주의 조항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12조~23조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재산권 보장의 보장 등

2)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6월 10일 문창극 전(前)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 날인 6월 11일 KBS가 보도한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 제목의 보도와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라는 제목의 보도 후 상당수 언론사와 정치권은 '문창극 죽이기'에 경쟁적으로 나섰고, 결국 문창극 전 주필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한 채 낙마했다. (펜앤드마이크 2018.09.11)

3) 조선말 관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전 국민이 산업화에 매진하던 당시의 국가 공무원은 나라의 근대화를 향한 리더십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런 모습은 다음 회의 사례에서 살펴볼 것이다. 

4) 시장경제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는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과도한 행정 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 등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한다. 지대 추구형 사회란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사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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