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의 대한민국을 적대시 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 정치체제와 법치주의를 지지하며, 세계시장을 받아들이는 ’비(非)전체주의적-민주적 좌파(democratic left)’의 출현을 대망한다.
  •  "치열하게 운동했던 사람은 늘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겁니다. 우리가 신봉한 이론(理論)은 가설이고, 현실에 부딪혀 검증되고 보완되거나 폐기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했던 민주화나 노동운동이 무얼 놓치고 착각했는지를 이제 깨닫게 됐습니다. 바다에 쟁기질을 한 것이지요."

     운동권이랄까, 좌파랄까, 진보랄까-이름이야 여하튼 그 진영에 속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조선일보 10/8일자)에서 한 말이다. 정직한 말이다.

     지식인 또는 지성인의 필수적인 자질은 지적(知的) 정직성이다. 그러려면 그는 진영이나 집단에 매여서는 안 된다. 스피노자는 유태인이었지만 유태교의 파문을 받았다. 유태교 집단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 개인으로서, 자유인으로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게 지식인, 지성인, 근대의식의 기본이다.

     한국 운동권은 권위주의, 즉 국가통제 일변도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했다. 이 투쟁엔 따라서 지적(知的) 자유에 대한 여망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이 운동이 미르크스주의를 지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로, 거기서 다시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삐끗한 이후로는, 운동권 노선에서 개인-자유-검증-지성이 축출되고 그 대신 사이비 종교 같은 집단계율이 우상처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집단주의, 권력화 된 사이비 신앙, 우상숭배는 오늘날 운동권을 완전히 또 하나의 억압권력이자 맹신(盲信)적 교단(敎團)으로 만들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외교도 대북정책도 통일도 온통 다 이 맹신의 처방대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면 불문곡직 수구꼴통이요 적폐다. 

     이런 와중에서 진보 좌파에 속하면서도 기성 운동권의 그런 지적(知的) 도덕적 문화적 타락을 제대로 알아보고 더 이상 이대로 가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우리는 바다에 쟁기질을 했다”고 고백하고 나섰다. 드물게 보는 용기였다. 누가 운동권 혁명 권력에 찍혀 ’적폐 청산 대상‘으로 숙청당하길 원하겠는가? 자칫하다간 자코뱅 당 로베스피에르의 공안위원회에 끌려가 작살 날 판이다. 

     그러나 진보 좌파가 진정으로 진보 좌파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같은 모습의 종족적 민족주의(ethno nationalism), 19~20세기 초의 제국주의론, 기계적이고 국가만능적인 평등주의, 광장정치, 선동정치는 우파 이전에 제대로 된 좌파 지성에 의해 스스로 청산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지금의 운동권은 기실 자적(知的)인 좌파도 아니다. 거기 무슨 지성과 정직성이 있는가? 그저 문화혁명일 뿐이고 기득권일 뿐이며, 몽매(蒙昧)주의일 뿐이고, 권모술수의 화신일 뿐이고, 적나라한 이익집단이자, 공포일뿐이다.

     1948년의 대한민국을 적대시 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 정치체제와 법치주의를 지지하며, 세계시장을 받아들이는 ’비(非)전체주의적-민주적 좌파(democratic left)’의 출현을 대망한다. 김대호 소장 같은 이들이 기성 운동권의 오류와 적폐를 청산할 새로운 대안적 운동권을 일으켜 세웠으면 한다. 꿈같은, 턱도 없는, 지나친 주문일까?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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