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노무현, 낮은 지지도에서 출발해 극적인 과정 거쳐 대통령돼"
  •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에서 사진자료들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8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에서 사진자료들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김한길 전 대표에게 흙세례! 안철수·천정배에게도 생수병 날아들어"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우산 펴들고 간신히 빠져나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면전서 육박전… '사람만 오면 개XX라 한다'"

    최근 2~3년간 주요 정치지도자의 봉하마을 참배와 관련해 일어난 일들이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던 안철수·김한길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물과 흙을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 이듬해 국민과 호남의 선택에 의해 38석 원내 제3교섭단체 지도자가 된 이들에게 봉하마을 군중들은 "양아X 새X" 등의 온갖 욕설과 조롱을 퍼부었다.

    노무현정권 때 당선돼 10년간 해외에서 헌신하다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배길 앞에는 청중들이 몰려 육박전이 벌어졌고 "민족의 반역자" "친일파" 등 갖은 막말이 쏟아졌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이 "여기는 사람만 오면 개XX라 한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이처럼 참배하러 오는 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모든 정치지도자를 '개XX'로 탈바꿈시키던 봉하마을,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질시와 반목을 보여주는 대표적 명소였던 봉하마을이었지만 8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참배를 맞이해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유승민 의원의 참배를 앞둔 이날의 봉하마을은 적막했다. 너럭바위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직매장·휴게소 등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환영이니 반대니 하는 펼침막 하나 없었다.

    너럭바위 쪽에서 울려퍼지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하나둘, 하나둘…"하는 소리만이 적막감을 깨뜨리고 있었다. 방송사에서 나온 ENG 2대와 정사진기자 두어 명만이 유승민 의원의 이날 참배를 예고하고 있었다.

    해도 구름에 가려 옅은 빛을 비추는 가운데, 조용하고 적막한 분위기는 엄숙감마저 자아냈다. 따지고보면 전직 대통령 묘역이 당연히 가져야 할 분위기였지만, 지금까지 정치지도자의 봉하마을행에서는 한 번도 감지할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착한 유승민 의원은 바른정당 유의동 의원, 이종훈·민현주 전 의원과 함께 기념관을 둘러보고 헌화·분향했다. 너럭바위 참배와 방명록 작성까지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이전의 정치지도자 참배 때 방명록으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수많은 경찰병력들이 군중들과 사투를 벌이던 기억이 아스라했다.

    권양숙 여사를 만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여기(봉하마을)는 오늘 처음 왔다"고 답한 유승민 의원은 이곳에서 벌어졌던 역대의 격전(?)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참배에 봉하마을은 왜 이리 조용했을까.

    유승민 의원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위협할만큼 아직 유의미한 수준에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날 알앤써치가 설문해 데일리안이 보도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4.9%의 지지율을 얻어,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명 고무적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36.9%를 기록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문재인 전 대표를 위협할 반문(반문재인) 단일 후보로서의 가능성이라도 공고히 하면 모르겠으되,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13.6%)이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8.7%)에 비해서도 열세다.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승민 의원을 향해 여전히 "문재인 전 대표와 일대일 대결 구도만 성립된다면, 가장 위협적일 수 있는 후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친문 성향의 군중들은 굳이 유승민 의원의 참배 때 소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손바닥을 마주쳐줘서'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끔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낮은 수준에서 정체돼 있는 지지율은 유승민 의원의 아킬레스건이다. 유승민 의원이 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은 상황에서 봉하마을을 다시 방문할 일이 있다면, 그 때는 친문 세력들도 이렇게 조용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데 이어, 이날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유승민 의원도 '낮은 지지율을 기적적으로 극복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는 듯 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은 서로 대척점에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돕는 여의도연구원장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상대 후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선·본선에서 기적적으로 지지율을 높여가는 것을 목도했고, 결국 자신이 돕던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대역전승을 일궈내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이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2002년 대선 과정은 나도 당시에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 여의도연구원장으로 대선을 치렀던 사람으로서 잘 알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 때 굉장히 극적인 경선 과정에 대해서 생각나는 바들이 많더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과정은 상당히 낮은 지지도에서 출발해서 굉장히 극적인 과정을 거쳐서 된 것"이라고, 자신 또한 현재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