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병헌 ⓒ쇼박스 제공
    ▲ 이병헌 ⓒ쇼박스 제공

     

     

    이병헌이 갈 데까지, 끝까지 갔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을 돕는 정치깡패 ‘안상구’ 역을 맡아 그간 연기해온 와일드한 캐릭터의 정점을 찍는다. 연예기획사까지 차리며 호의호식하던 안상구는 더 큰 성공을 꿈꾸다 간계한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의 배신 때문에 손을 잃고 폐인으로 전락한다. 본지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이병헌과의 만남을 통해 ‘내부자들’ 속 그의 처절한 연기를 조명해봤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캐릭터 위주로 전개가 이뤄졌어요. 그런데 완성된 영화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계속 오가는 식으로 그려냈죠. 처음엔 시간을 넘나드는 점이 그려내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풍요롭게 살린 버전과 시간을 뒤섞은 버전 두 가지로 만들기도 했죠. 결과물을 보니 현재와 과거를 오간 버전이 잘 나왔구나 싶었어요. 힘이 있더라고요. 축약하면서 많은 장면이 잘렸지만 원래는 3시간 40분짜리 영화였어요. 아무래도 이야기가 세세하게 담긴 풀 버전이 풍성하고 좋더라고요. 편집된 신들 중에 재밌는 게 많아 1, 2편으로 나눌까에 대해서도 얘기가 있긴 했어요.”


    130분. 길다면 길수도 있는 러닝 타임이지만 ‘내부자들’은 후반에 다다를수록 캐릭터들 간에 숨통을 조여 오는 치열한 신경전과 흡입력 있는 전개로 지루함이란 단어를 감히 떠올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재미에 흠뻑 젖은 관객들이 영화가 벌써 끝났다는 약간의 아쉬움으로 ‘쩝’ 입맛을 다시게 만들 정도다. 이병헌이 살짝 귀띔해준 이강희와 독대하는 첫 장면, 안상구가 운영한 연예기획사 속 풍경, 바지의 선이 구겨질까봐 노심초사하는 패션센스 발휘 장면, 심지어 정신병원에 간 안상구까지 편집됐다는 사실에 취재 기자는 이병헌과 함께 3시간 40분짜리 감독판을 고대해본다.


    “딱히 도전, 변화 이런 걸 생각하고 찍은 작품은 아니에요. 재미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면 출연을 결정하기 때문에 ‘내부자들’도 그렇게 함께 작업하게 된 거죠.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이야기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을 통해 제가 처음으로 한국사회를 많이 반영하고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이야기를 선보이게 됐네요.”

     

     

  • ▲ 이병헌 ⓒ쇼박스 제공
    ▲ 이병헌 ⓒ쇼박스 제공


    “사투리 연기가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사실 안상구는 전라도가 고향이긴 해도 서울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표준어를 구사해도 됐지만, 캐릭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서울말을 하도록 설정했어요. 본토박이처럼 심하게 사투리를 쓰는 것도 아니라서 그 경계가 모호하긴 했지만 정도를 맞추는 건 전라도가 고향이신 동시녹음 기사님과 기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묵직하고 저돌적인 안상구 캐릭터에 색을 입히면서 영화의 무거운 주제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야기에 슬쩍슬쩍 관객들에게 쉴 수 있는 포인트를 주기 위해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은 과감히 변형을 시도했다. 이병헌이 구사하는 첫 전라도 사투리 연기는 의외로 상당히 구수하다. 섹시한 근육질의 ‘차도남’에게서 어떻게 저런 정도로 차진 사투리가 튀어나오는지 감탄스럽다.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펼치는 우장훈(조승우)과 어색함도 없이 화개장터 같은 뜻밖의 친근한 케미를 내뿜기도 한다. 현장 분위기 역시 웃음이 많았고 재밌었단다.


    “승우 씨와 정말 호흡이 좋았던 게, 제가 애드리브를 하면 순발력 있게 맞받아쳐요. 승우 씨 역시 애드리브를 할 때가 있으면 저도 거기에 맞게 연기를 했고요. 은근히 그런 장면이 많았어요. 둘이서 모텔에 있으면서 화장실 유리에 대해 언급하는 신도 애드리브의 연속이었어요. 백윤식 선배님은 도통 감 잡을 수 없는 리액션을 보이시는 분이에요. 항상 제가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리액션이 나오시니까 긴장을 하게 되더라고요. ‘와 역시 백윤식 선생님이다’라고 생각했죠. 툭툭 내뱉는 말 한 마디들이 힘이 있으세요. 오히려 평상시에는 화면처럼 마냥 무거운 분이 아니에요.”


    ‘내부자들’ 속 가장 유쾌한 장면을 꼽으라면 대다수 관객들은 이병헌과 조승우의 모텔 신을 언급할 것이다. 정의로운 아니, 정의의 편에 서려하는 안상구는 대한민국 내부자들을 향한 광란의 사투와 분노의 질주 과정에서 우장훈과 만날 때 유일하게 긴장의 끈을 놓는다. 그만큼 둘은 지금껏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검사와 깡패의 우정 비슷한 어떠한 감정을 가지는 사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안상구와 우장훈의 친밀도가 실제 두 사람의 진한 어울림이 담긴 촬영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 ▲ 이병헌 ⓒ쇼박스 제공
    ▲ 이병헌 ⓒ쇼박스 제공


    영화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병헌은 문득 할리우드 영화판에서의 경험담을 전했다. '지.아이.조' 시리즈, '레드: 더 레전드'와 더불어 올해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내년에는 '황야의 7인' '미스 컨덕트'의 개봉을 앞두고 그간 알 파치노, 안소니 홉킨스,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주연 자리로 함께 연기하며 이제는 ‘할리우드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


    “처음엔 역시 언어가 제일 힘들었죠.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한국에선 감독과 바로바로 상의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는데, 할리우드에선 영어가 부족하니 의견을 제시하려해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싶었어요. 용기내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상대방이 이해를 못해 난감했던 적도 있고요. 하지만 시스템 측면에서는 할리우드가 의외로 한국과 비슷한 점도 많았어요. 덴젤 워싱턴이나 알 파치노 같은 배우가 의견을 제시하면 영화 속 상황이 바뀌어 지기도 하더라고요. 감독마다 성향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황야의 7인’은 촬영 기간이 5개월이나 걸렸어요. 열악하고 습한 환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모두가 같이 고생하다보니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도 동지애가 생기더라고요. 그 때 배우들과 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미스 컨덕트’를 촬영하면서 특히 에단 호크, 크리스 프랫과 친해졌어요. 우리가 문학 소년이라 알고 있던 에단 호크는 실제로도 문학에 해박하더라고요. 촬영장에서 갑자기 시를 읊어주기도 했고요. 감독과 배우들이 책 얘기를 하다가 제목이 퍼뜩 떠오르지 않으면 에단호크가 지은이와 제목을 말해 줄 정도였어요. 가장 가슴이 뜨거웠던 순간은 알 파치노와 함께하던 때였어요.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과 몰입은 대단한 것 같아요. 대사를 바꾸면서 몇 시간이나 쉴 새 없이 연습하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 느꼈고 감동했어요. 일상에서도 실제 그 캐릭터가 된 것처럼 말을 하더라고요.”


    이와 함께 이병헌은 알 파치노와의 촬영장 연습 장면이 담긴 휴대폰 속 사진을 취재기자에게 직접 꺼내보였다. 이 때 그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던 것이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당시 그의 해맑은 표정을 통해 그간의 할리우드 도전은 단순히 명예를 위함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즐거워서’가 느껴졌다. 앞으로도 꾸준히 ‘할리우드 배우 이병헌’으로 소개가 되리라 기대되는 순간이다.


    “예전에 ‘스카 페이스’를 봤을 때부터 인생영화 속 인물로 존경했지만, 실제로 알 파치노의 작품에 임하는 열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꾸게 됐어요. 자기 일을 사랑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간 이병헌으로나 배우 이병헌, 어떤 측면에서든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새삼 이 시점에서 이병헌은 다짐을 한다. 모든 걸 일찍이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는 안주하지 않고 할리우드 진출을 거쳐 이제는 한 차원 진해진 페이소스로 국내 대중에게 재 인정받으려는 배우로서의 제 3막을 열고 있다. ‘내부자들’의 일반 시사회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일단 ‘성공적’이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이를 악물었구나’라고 생각이 들 거예요. 백윤식, 이경영, 조승우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 이 작품에서 각자의 최고치를 보여줬거든요. 기대해 주셨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