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비서실장이 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임명장을 받으며 대통령에게 절을 했다.

김기춘은 정말 글자 그대로 깎듯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정도가 아니고,
상체를 완전히 90도 각도로 꺾었다.

두팔은 가지런히 온 몸에 붙이고, 손가락도 얌전히 모았다.
온 정성을 다해 인사하는 그 자세가 저절로 느껴졌다.

만약 옛날 왕조시대였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무릎을 꿇고 온 몸을 땅바닥에 갖다 붙이는
부복(俯伏) 자세를 취했을 것 같다. 

김기춘은 과거 평검사 시절에 유신헌법의 초안을 기초했다고 한다.
(물론 상급자의 지시를 그저 따랐다고 한다.)
YS시절에는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다시 부각됐다.
동향 사람들이 모인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여론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유신헌법이든, 초원복집이든
40대 중반까지는
무슨 소리인지 거의 관심이 없을 것이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지금 나이가 73세이다.
옛날이면 한참 뒤로 물러설 할아버지겠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90세까지 살게 된 세상이니
나이를 가지고 뭐라 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 궁금한 것은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김기춘은 90도 각도로 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 일이 없어 헤매는 50대 퇴직자들이 넘쳐나는데,
공직을 다시 맡겨줘서 고맙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도 보통 공직이 아니라,
100만명의 공무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자리,
수천명의 피임명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쫑긋하는 그런 자리를 맡았다.

김기춘의 속마음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90도 절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인 그 공손한 자세와 깎듯하기 이를데 없는 그 행동이
무엇을 향하는지 관심이 절로 쏠린다.

가장 나쁘게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왕 같은 비서실장 행세]를 하는 일일 것이다.

벌써부터 그가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강창희 국회의장,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을
학교후배로 검사후배로 혹은 나이로
모조리 거느리게 된 것을 은근히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김기춘은
아마도 나 같은 사람도 나이 어린 여자 대통령에게
이렇게 순종복종하며 모시고 있으니,
너희들도 아뭇소리 말고 복종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절대 복종을 다짐하는 듯한 자세로 임명장을 받을 때,
임명장을 건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은 어땠을까?

대통령을 보면서 떠오르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김기춘 같은 고참 어른도 나에게 복종하는 것을 온 국민이 보고 있겠지?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든, 김기춘 비서실장이든,
그 두 사람이 절을 하고 임명장을 주고 받는
그 엄숙한 의식(儀式)의 목적은 따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진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Blessed are they 
who maintain justice
who constantly do what is right.

주고 받는 임명장을 사이에 놓고
두 사람은 과연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라면,
남녀노소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지방이나 이념을 떠나서
무릎을 꿇겠다는 진정성을 품었을까?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생각을 품었다면,
[아무개는 아무개를 임명한다]는 봉황무늬 임명장은
종이조각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은
시한부 권력일 뿐임을,

그저 낙엽처럼 떨어지는 휴지조각임을
비서실장은 깨닫고 있을까?

그러길 간곡하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