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박선영, 국군포로 귀환용사 30여 명과 면담"北, 국군포로에 송환 방해… 저항하면 총살"
  • 박선영 전 의원이 생환 국군포로 귀환용사 30여 명과의 면담을 통해 "북한이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이에 저항하는 포로장교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했다"고 했다.

    특히 국군포로들의 소련 원동지역으로의 송출사실을 밝혀내 사실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07년 미국방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국군포로들이 소련의 극동지역으로 송출됐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정확한 장소와 연도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사단법인 물망초 주최로 열린 ‘국군포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박선영 전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뉴데일리(자료사진)
    ▲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사단법인 물망초 주최로 열린 ‘국군포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박선영 전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뉴데일리(자료사진)

    [박선영 전 의원 (동국대 교수,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
     "앞으로 생존해 계신 56분의 생환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을 모두 1대1로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비디오로 기록할 예정이다."
     "국회와 정부는 산 증인들인 생환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에게 요양원 건립 등을 통해 최고의 예우와 노후를 책임지는 한편, 지금까지 밝혀진 증언 등을 토대로 북한과 러시아 등에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국제법적으로 국군포로 송환대책을 세우며, 공개처형된 국군포로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루빨리 시작하라."

    #1. 북한은 정전 직전인 1953년 7월, 평안북도 벽동군 우시면에서 여순반란 가담자이자 남한출신인 이준희가 앞장 서서 ‘포로송환대상자에서 빠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라고 국군포로들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국군장교 김희갑(서울 출신) · 오삼준(충청도 출신) 씨가 이를 거부하자 수천 명의 국군포로가 보는 자리에서 공개처형했다. 이와 함께 남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국군병사는 때려죽였다.

    일부 포로들은 중립국 감시위원들이 실사를 나왔을 때 산으로 피신시켜 자유의사로 북한에 남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2. 휴전 후인 1958년 9월, 국군 전투기 비행사였던 안병현 공군 중위가 ‘북한이 개발한 폭격기가 미군의 폭격기보다 성능이 약하다’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함경북도 경원군(現 샛별군) 철도공장 앞 논바닥에서 공개 처형됐다.

    육군 장교 남상만·조환규(황해도 출신) 씨는 월남해 국군으로 입대했다는 이유로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1959년 2월 같은 장소에서 공개처형 됐다.

    부연대장이었던 이 준 중령(육군)과 김병호 대위는 1959년 8월 자강도 전천탄광에서 ‘조국에 반역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개 처형됐다. 그 당시 17명의 장교가 전천탄광에 더 있었다. 그 당시에 함경북도 고근탄광에는 650 여명의 국군포로가 배치돼 60년이 넘도록 지금도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

    #3. 1952년에 평안북도 벽동군 우시면에 있던 우시수용소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평양을 탈환했던 국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미처 남하하지 못 한 채 포로가 됐던 3사단과 6사단 소속 포로들이 있었다. 북한은 1952년 말에 이들을 전원 소련의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키주 등 원동지역으로 이송했다.

  • ▲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사단법인 물망초 주최로 열린 ‘국군포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박선영 전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뉴데일리(자료사진)

    ◆ '국군포로 소련 이송설' = 지난 2007년 4월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들이 소련으로 이송됐다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에 국방부는 사실 여부를 규명할 만한 실질적인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0년 6월 SBS TV가 이송된 국군포로 명단을 최초로 공개하며 논란이 됐다. 문건에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으로 끌려갔던 국군포로 명단이 적혀있다.

    SBS에 따르면 이들의 군인 신분이 표시되지 않은 채, 하바로프스크 제16 형무소에 있던 한국인 중범죄자라고만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국립 문서보존소 모 책임연구관'은 "일부러 범죄자처럼 보이려고 그런 것이며 한국군 포로들은 실제로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전했다.

    이 문건에 이름과 출생연도가 기록된 국군포로는 모두 286명, SBS 취재진은 국방부의 병적관리시스템에 조회한 결과 이들 가운데 18명이 한국전 당시 실종돼 사망처리된 장병의 신원과 일치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이 명단에는 성명과 출생 연도만 기재되어 있어 이들이 동일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실종 추정자가 수만명에 달하고 흔한 이름의 경우 여러 명이 검색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생년월일, 군번, 본적 등 추가적인 신상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