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회고록 출판기념회, 표지 1장에 모든 의미 담아경찰 총수 재임 중 ‘경찰 개혁’ 필요성과 방향 녹여 내
  • 왼쪽 눈엔 시퍼런 멍, 오른쪽 이마에는 반창고..

    그래도 웃는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완전히 망가졌다. 근엄한 표정으로 서릿발 같은 불호령을 내리던 경찰청장 시절을 떠올리면 좀처럼 매치가 되지 않는다.

    27일 조 전 청장이 출판기념회을 가진 회고록 <조현오>(부제: 도전과 혁신)’는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파본이 아니다. 바꿔달라고 하면 안 된다.”

    농담 한 번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경찰청장 직책을 벗어던진 것이 후련한 듯 조 전 청장은 기념회 내내 화통하게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자신도 나름대로 유머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지간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표지를 디자인 한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도 이 모습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장 조 전 청장을 대변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표지 속 조 전 청장은 상처투성이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확고한 의지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그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책 속의 내용은 표지만큼 쉽게 읽어 내려갈 내용이 아니다.

    “전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뭔가를 이뤄냈다고 한 것을 표현했다.”

    조 전 청장의 설명처럼 책 속에는 그가 경찰 총수로 일하면서 싸웠던 적들, 그가 벌였던 ‘경찰 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을 녹여 냈다.

    경찰을 ‘견찰’로 부르는 사회적 반감, 경찰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기 힘든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경찰의 역할 등 조 전 청장의 ‘경찰개론’이 그대로 담겨 있다.

  • 이날 조 전 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민국 경찰처럼 유능하고 헌신적인 경찰은 없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고 있는게 대한민국 경찰" 이라고 강조했다.

    "OECD 행복지수를 보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11개 지표가 있다. 그중에서 교육 분야(2위, 7.8)가 순위에서 가장 앞섰지만 치안 분야(11위, 9.0)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세계 주요 7개 국가와 인구 10만 명당 4대 범죄 발생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7개 국가 평균에 비해 1/4 수준이고, 강도는 1/12에 불과하다."

    "맥킨지코리아社에서 우리나라에서 5년 이상 산 외국인 100여명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대한민국이 가장 앞선다고 생각하는 분야 1위가 92점을 받은 IT분야였고 2위가 89점을 받은 우리 경찰이 하고 있는 치안이었다."

  • 그는 국민들이 경찰을 선뜻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부정부패, 가혹행위 등 몇가지 부정적 사건들을 꼽았다. 그러면서 "제가 이곳에 와서 경찰개혁을 추진했다" 고 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결과를 이뤄냈다. 우선 부정부패를 근절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확신한다. 지난 4월말 기준으로 7개월 간 단 한건의 금품비리수수 발생하지 않는 그런 기적을 일으킨 집단이 바로 대한민국 경찰이다."

    "우리 경찰 활동 방향도 국민중심의 경찰 활동으로 바꿨다. 국민을 규제와 단속의 대상이 아닌 우리 경찰 존재의 이유와 목적으로 인식하도록 많이 달라졌다."

    책을 출간한 이유도 경찰 개혁이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그만두고 나서 무엇보다 서둘러 이 책을 발간하려고 한 것은 지난 20개월동안 13만 경찰이 하나돼 함께 누렸던 성과가 결코 일장춘몽이 아닌, 정말 앞으로 계속돼야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조 전 청장은 "이제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분노하고 욕하기 보다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일까 한번쯤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고 덧붙였다.

    지난 4월 경기 수원에서 조선족 오원춘에 의한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 당시 피해여성의 신고전화에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게 주 원인으로 지목됐다. 게다가 최근 가정폭력 신고 전화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사실도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대한민국 경찰은 지난 2006년에서 2011년, 6년간을 비교해보면 5대범죄가 26.9% 증가했다. 112 신고건수는 98.5% 늘었다. 경찰관이 얼마나 늘어났나. 1%밖에 늘지 않았다.

    특히 경기도가 굉장히 심각하다. 경기 인구는 서울보다 1백만여명이 많은데 경찰은 1만8천여명 밖에 되질 않는다. 서울 경찰은 3만명 가까이 된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질책과 비난만 하면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경찰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강화할 때가 됐다는 설명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경찰 1인당 시민 수가 330명 정도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은 500명이다. 부담이 얼마나 크겠는가.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5개 국가는 GDP 대비 평균 0.93%를 치안위해 투자한다. 우린 0.41%를 투자한다."

    "경찰을 대폭 늘려야 한다. 교육도 강화시켜야 한다. 미국 경찰은 선발하면 8개월 교육시켜 일을 시키는데 우리는 발령받으면 바로 근무해야 한다."

    아울러 그는 "제가 무슨 일을 하건 대한민국 13만 경찰 총수를 지낸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겠다. 절대 이곳저곳 기웃거리지 않겠다. 다시 일할 기회가 온다면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안응모 前내무부 장관을 비롯해 허준영 前경찰청장,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 안양옥 교원단체총연합회장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허준영 前경찰청장은 축사에서 "앞으로 우리 조 前청장께서 철도공사 사장도 한 번 맡아주셨으면 한다. 우리나라 철도에 할 일이 정말 많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철도에 거의 투자가 안됐는데 2020년까지 88조란 엄청난 투자를 하게 돼 있다. 제 욕심같아서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안양옥 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조 前청장은 학교 폭력 뿐만 아니라 심오한 교육철학을 갖고 계신다. 앞으로 교육계에서 경찰 분야를 대표하는 훌륭한 고문님으로서 모시면서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드리겠다"고 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박철원 이사장은 "조 前청장이 청장직을 그만둔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고문으로 청소년 문제해결에 앞장서 주시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임직원들이 모두 쌍수 들고 환영했다.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박종준 前경찰청 차장은 "표지에서부터. 디자인에서부터. 성공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한국 경찰현대사를 편찬할 때 더없이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매우 진솔하게 쓰여있다. 시종일관 솔직하고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로 자신 삶의 역정과 취임 고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 조 前청장의 책에는 볼만한 부분들이 꽤 있다. 특히 2009년 경기청장 당시 쌍용차 불법점거 농성 당시 상황, 2007년부터 시작된 '룸살롱의 황제' 이경백 씨에 대한 추적과 루머, 수사과정 등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에게 경찰총수가 직접 쓴 경찰의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추천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