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0월 3일. 개천절. 하늘이 열리고 나라가 세워졌다는 날이다. 그러나 한국현대사는 이날을 "진보 시민운동 종결자가 등장한 날"로 기록한다.
     
    이 날 박원순은 최종 종합 점수에서 52.15%를 얻어,  민주당의 박영선을 6.58% 포인트 차이로 누르며 서울시장 야권 통합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 박원순은 민주당이 내놓은 야권 후보 단일화 방안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보면 매우 통큰 수용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은 대형할인점에 손님을 꼬이려고 만들었던  '통큰 치킨'보다 훨씬 더 치밀한 계산이었다.애초 민주당이 내놓았던 후보 단일화 방안 자체가 박원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여론 조사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여론 조사에서는 박원순이 훨씬 더 유리하다. 박원순  57.65%, 박영선 39.70%였다.
     
    둘째, TV 시청후 평가 역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이 평가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리 인터넷 등을 통해 신청했어야 되었다. 조직화된 자발적 인터넷 참여자의 수로 보면 박원순이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크다. 박원순 54.4%, 박영선 44.1%였다.
     
    셋째, 현장투표는 민주당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을 통해 미리 신청한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는 방식, 즉 오픈-프라이머리였다. 민주당의 조직세가 아무리 세다고 해도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하고  휴일에 장충체육관까지 찾아가서 투표할 수 있는 열성적 지능적 정예 멤버의 숫자에 있어서는많이 밀리지 않기 때문에 박원순이 박영선에게 지더라도 그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결과는, 박원순 46.31, 박영선 51.08%로서, 5%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같이 이번 경선 룰은 애초부터 민주당의 조직세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박원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다. 박원순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의 규칙을  '조건없이' 수용했던 셈이다.  나는 민주당 측에서 이번 경선 룰을 내놓을 때 이미 박원순으로 결정되었다고 봤다. 민주당에서 이 룰을 디자인하고 관철시킨 사람들은 박원순을 밀기로 작심했을 것이다.  이는 한가지만 보아도 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는 경우에는 'TV 시청 후 평가' 나 '여론 조사'가 없어야 마땅하다. 오픈-프라이머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여론 조사나 'TV 시청 후 평가' 따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일련의 치밀한 연출을 보면 박원순 및 그 지지세력이 참으로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의 간부들인가? 아니다. 이들보다 훨씬 더 깊고 강력한 커넥션이 작용했을 게다. 광우병 촛불, 천안함 루머, 유성기업 파업, 한진중공업, 곽노현구하기, 강정마을에 깊게 작용해온 세력이 작동하고 있다.
     
    지난해 6.2 지방교육선거를 대비해서 그 1년 전부터 '유권자희망연대 2010'을 만들어서, 온건 시민단체들을 모두 엮어서 종북단체들에게 고스란히 헌납했던 인물이 누구인가?  박원순이다. 이미 그 때 박원순은 우리사회를 쥐락펴락해 온 깊고 강력한 커넥션과 단단히 맺어져 있던 것이다.
     
    그래서 안풍이 불었을 때, "안철수가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고 예측하면서 박원순을 '종친초(종북, 친북, 촛불)의 보스' 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진보 진영의 시민운동은 경실련 시기가 황금기였다. 1990년 대 초의 경실련은 한편으로는 급진혁명 노선을 견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권의 개혁을 촉구했었다. 그것이 균형잡힌 시민운동의 영역이다. 그러나 지난 십여년 동안 진보 진영의 시민운동은 나날이 타락하여 마침내 2008년 광우병 촛불, 2010년 천안함 괴담, 같은해 6.2 지방선거에 이르러 죽고 말았다. 진보 시민운동은 위 세 개의 사건을 거치면서 사실상 죽었던 셈이다.
     

  • 이번 박원순의 서울시장 출마는 이미 죽어 나자빠진 진보 시민운동에 대해 최종적인 사망 선고를 내리고 그 시체를 담은 관뚜껑에 못을 박는 행위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서로 독립성을 가지고 공존해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이다. 시민사회의 지도자 및 운동 세력이 직접 정치판에 주인공으로서 뛰어들 때에는 마땅히 그에 걸맞는, '비상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원순은 어떤 상황에서 정통 야당을 깔아 뭉개고 있으며 그를 밀고 있는 시민세력 (혹은 종북, 친북 세력?)은 어떤 상황에서 정통 야당의 정당정치를 파괴하고 있는가?
     
    만약 정당정치를 파괴해야 한다면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세금급식에 대한 주민발의를 보이콧트했으며  8.24 주민투표를 사보타지 했었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외면하고 배신하고 짓밟았다. 시민사회가 정당정치를 응징한다면 보수 시민사회가 보수 정당을 응징해야 마땅하다.
     
    반면, 민주당은 어떤가? 진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거부한 적 있는가? 종북의 핵심 세력인 민노총과 전교조가 요구하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적 있는가? 심지어 북한의 3대 세습을 맹렬히 비판한 적 있는가? 광우병 촛불을 든 일이 잘못 된 일이었다는 자기반성을 한 적 있는가? 천안함 때 루머를 퍼뜨리는 데에 일조한 것에 대해 자기 반성을 한 적이 있는가? 북한인권법 통과를 저지한 자신의 행위가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떠벌이는 박지원을 비판한 적 있는가?
     
    민주당은 위와 같은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민주당은 종북, 친북이 쥐고 흔드는 진보 시민운동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어떠한 행위나 발언도 한 바 없다.
     
    그럼에도 이제 진보 시민운동 진영이 직접 민주당을 접수하러 나선것이다. 점령군 대장 박원순. 충성스러운 종의 터밭을 차지하러 나선 셈이다.
     
    이 '위대한' 점령 전쟁에 나서면서 박원순은 무엇이라 했나?
     
    "시민운동의 비정파성에 한계를 느껴서 직접 정치판에 나선다"고 했다.
     
    참으로 교만한 거짓말이다. 시민운동은 한계가 있든 없든 비정파성에 그 생명이 있다. 박원순은 정파성이 없는 시민운동을 해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지독하게 정파적인 운동을 해 왔다. 정파적 운동이 마치 비정파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것이 박원순의 재능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6.2 선거에서 전교조 교육감을 대거 당선시킨 '유권자희망연대2010'이 비정파적운동이라고 하면 졸던 개가 벌떡 일어나 웃을 일이다.  박원순은 시민운동을 정파 운동으로 만들어 목졸라 죽인 장본인이다. 이제 본인 자신이 정파 운동으로 타락시킨 시민운동에 대해서조차 "정파성이 없어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선언하며 서울시장 선거판에 뛰어드는 그의 행위는, 자신이 죽인 시체를 관에 담고 못질하는 행위에 다름없다.
     
    박원순, 그는 진보 시민운동의 종결자이다. 앞으로 진보 진영에서는 한동안 시민 운동이 자라 나오지 못한다.


  •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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