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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고향을 서울에서 찾다
'고바우' 김성환 화백의 고향은 개성이다. 38선이 그어지기 훨씬 전에 서울에 온 개성 부자집 아들은 경복고등학교를 다닐때부터 만화를 그렸다. 6.25남침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당시 일간신문인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라는 시사만화를 연재했고, 1955년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에 유명한 <고바우 영감>4컷짜리 시사만화를 매일 연재하다가 2000년 9월에 붓을 놓았다. 그해 11월1일엔 정부에서 '고바우 영감 50주년 기념우표(아래 사진)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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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수집가이기도 한 김화백에겐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때부터 만화에 이어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떠나 어느새 10년, 오늘(29일)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13번째 개인전에 내 놓은 그림은 고르고 고른 90점, 100평 남짓한 전시장에 빽빽하게 걸려있었다.구름처럼 몰려든 팬들 틈에서 한눈에 들어 온 그림은 바로 '다듬이질'이다. "어머니..." 그림을 본 순간 저절로 중얼거린 한마디, 어렸을 때 늘 보았던 고향의 어머니, 바로 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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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 의식주 모든 생활필수품들을 자가(自家)생산으로 자급자족하던 농경시대는 한국에서 언제쯤 끝났을까. 아마도 70년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새마을운동의 성공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갔을 것 같다.
도시를 제외한 농촌에서 옷감은 대개 세가지, 목화(木花=綿花)를 재배하여 만드는 면직물, 삼(大麻)를 심어 껍질을 쪄서 실로 다듬는 삼베, 누에를 쳐서 누에고치를 삶아내어 실을 뽑아내는 명주(明紬=실크)등이다.
가장 대중적인 옷감은 면직물, 일제시대 일본명 '광목(廣木)'으로 부른 면직물은 목화씨를 심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목화가 자라 꽃이 피고 꽃이 하얀 솜으로 변하면 이것을 따 모아 삶아서 실올을 뽑는다.
일일히 손으로 돌려 실뽑는 작은 나무 기계 이름은 '물레'다.
수많은 실뭉치('토리')를 '베틀'에 걸어 베를 짜면 비로소 폭 1미터 가량의 천이 생산되는 것이다.
이 천을 빨고 풀을 먹여서 말린뒤 마지막으로 손질하는 공정이 '다듬이질'이 된다.
화강암을 다듬은 길쭉한 돌 도마위에 천을 개어놓고 방망이 두개로 두드리는 다듬이질 소리....고요한 산골 밝은 달밤에 울려 퍼지는 다듬이질 소리, 둘이 마주앉아 박자에 맞추 듯 두드리는 리드미컬한 울림 메아리는 그야말로 달밤의 타악기 연주회다.
"너네 다듬이질 소리가 기중 듣기 좋지, 너두 크면 니 엄마처럼 길쌈 잘하는 색시 얻어야지, 응?"
어머니의 길쌈을 돕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심부름하는 열살배기 소년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길쌈'이란 옷감을 생산하는 일체의 공정을 통트는 단어, 삼베와 명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고단한가. 일년내내 김쌈하랴 농사지으랴, 농촌 어머니들은 남정네들보다 훨씬 바쁘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다. 이제는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물레, 베틀, 다듬이돌과 다듬이 방망이...농경문화의 유물인 그것들은 70년대 산업화가 가져온 '여성해방'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어머니.....김화백의 그림속 아낙네는 눈 내린 겨울 밤 등잔불 곁에서 다듬이질 하는 어머니 얼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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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일어나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방을 나선 어머니는 저녁 밥상을 차녀놓고서야
수건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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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쌍이 배고픈 듯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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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은 장바닥에서 떡이라도 팔러 가는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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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 밭이 얼마나 깨끗한가에 따라 그 집의 살림솜씨가 가늠되었고 생산성을 좌우하는 것이므로, 동네 사람들은 부족한 일손을 합쳐 교대로 품앗이를 해주는 것이 농촌의 전통적인 노동관습이었다. 농약이 나오기 전, 무공해 농작물 생산시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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